호모 스토리텔리우스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생각에 가시가 돋히는 사람


언제부터였을까? 이야기를 마음에 품어 온 것이.


고등학교 때 한 드라마를 엄청 좋아했다. 좋아함을 넘어서 감독님까지 존경하게 된 드라마. 그 드라마는 故 김종학 감독님의 작품, 태왕사신기였다.


대학에 들어가서 신방과를 복수전공하고 싶다는 생각엔 이 영향도 컸다. 아무튼 끝이 너무 아쉬워서 인터넷에 블로그를 만들고 거기에 내가 원했던 마지막 장면을 써넣었다.


드라마 공홈에도 올려보고, 드라마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모여서 오프라인 모임도 가졌다. 그러는 사이 내 안에서 나만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에 글을 적으며 품어왔던 나의 이야기. 그러는 사이 대학에 입학했고, 워낙에 글쓰는 걸 좋아해서 글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치기 어린 포부를 갖게 됐다.


벡터와 미분, 지구과학2를 배웠던 이과였는데 글쓰는 일을 놓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전문지 기자로 취업했고, 이래저래 회사에서 쓰라는 팩트만 겨우겨우 게워내서썼다.


퇴사 후 몇 년이 지났고, 자유를 만끽하며 생각에 여유를 갖게 됬다. 그리고 10년 동안이나 마음에 품어왔던 글들을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자유와 글쓰는 일. 이 두 개로 밥먹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첫 발단은 웹소설 공모전이었지만 짧은 시간 안에 그것도 101화라는 많은 분량은 써내려 간 건 내 안에 품어왔던 이야기여서가 아닐까?


너무나도 쓰고 싶었던 이야기. 10년 동안 힘들 때마다 머릿 속에서 계속 써왔던 이야기. 이 이야기는 그렇게 나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었다.


그래서 키보드에 손을 얹으면 입으로 흥얼거리듯 이야기가 술술 풀어져 나왔다. 머릿 속은 24시간 풀 가동되는 공장같았고, 하루에 2~3시간만 자면서도 눈만 뜨면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모 스토리텔리우스.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생각에 가시가 돋히는 사람. 첫 웹소설을 쓰면서 느꼈던 거다. 나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호모 스토리텔리우스라고.


내 모습을 투영한 여주. 얼굴은 굉장히 다릅니다만...


여주인공 연두에게는 나의 모습이 많이 투영되어 있다. 그녀는 내가 만들어 낸 나의 분신이자, 딸 같은 존재였다. 내가 만들어 낸, 실제 있지도 않은 존재에게 이런 애정과 마음을 쏟을 수 있다니!


작가님들이 자신이 만들어 낸 주인공들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끼는 다는 걸.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캐릭터성을 부여하고 행동, 마음 하나하나를 써내려갈 때마다 눈물이 나고, 웃음도 났다.


같이 울고, 같이 웃고. 3개월 동안 내 마음 속에 짧은 인생을 같이 살았다.


2020년 4월 4일에 발행한 1회 '첫단추'는 조회수가 2만이다. 물론, 더 유명하고 조회수 높은 작가님들이 계시지만 처음치고는 과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2020년 4월 말부터 7월 말까지 내가 썼던 공지들을 읽으면 그때의 추억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8월에는 베스트리그에 올라서 독자님들에게 감사하다는 공지도 올렸다. 그걸 읽으면 아직도 그때의 기억들이 난다.


많은 댓글들이 달렸고, 나와 연두와 함께 울고, 웃어주신 독자분들은 큰 힘이 되었다. 어떤 독자 분은 하루 빨리 일러스트가 시급하다며 직접 사진을 찾아서 댓글로 달아주시기도 했다.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지금 AI로 생성된 그림들과 함께 읽어보신다면 더 좋아하실까? 다시 네이버 베스트리그로 돌아가 브런치에 그림과 함께 올렸으니 다시 보시라고 공지를 올려도 되지만 5년이 지난 소설이다.


"왜 이렇게 아직도 이 소설을 욹어 먹고 있어!"


남편이 옆에서 고함을 지른다. 남편은 5년 전에도 나에게 "네 소설이 베스트리그에 오른 다면 그땐 한 번 읽어줄게." 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아직도 읽지 않고 있다.


그래, 모두들 잊고 있을거다.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 하는 건 미련과 애정이 듬뿍 실려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쓸 때, 그리고 쓰고 나서도 너무 행복했다. 하지만 처음 완결했을 때보다 2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유료화를 했다. 웹소설을 모르던 내가, 처음 쓴 부족한 글이라는 생각에서. 좋아해주셨던 분들이 모두 다 읽어주시고 글이 마르고 닳은 후에야 유료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거다.


완결했을 때 남편은 옆에서 하루 빨리 유료화를 하라며 재촉했지만 그 과정도 만만치 않았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2년이 지난 후에야 유료화를 천천히 힘들게 진행했다.


그 후에도 가끔씩 순위에 오르락 내리락하고 유료라 돈이 조금씩 들어올 때도 있다. 하지만 처음치고 베스트리그에 올랐다는 점. 그리고 그때는 지금과도 기준이 너무 달라서 엄격했는데 그걸 뚫고 막판에 눈의 피로도가 엄청 쌓인 후에야 베스트리그에 입성했다는 점.


난 그래서 이 글에 대한 애틋함으로 항상 가슴이 뭉클하다.



잘생긴 고 상무. 그의 표정, 얼굴, 행동 하나하나를 디테일하게 뽑아내기 위해서 AI와 얼마나 많은 씨름을 했는지 모른다. 밤을 뜬눈으로 새워도 원하는 그림은 단 한 장도 얻지 못한다. 비전공자의 한계다.



'불륜 스캔들'을 끝내고 기세를 몰아 야심차게 두번째 소설을 쓸 때였다. 몇 화 쓰지 않고 첫 도입부분을 쓸 때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계약을 하고 싶다고. 담당자 분과 여러번 메일을 주고 받았고 나를 도와주시려 엄청 애쓰고 계신단 것도 느껴졌다. 하지만 결국, 계약은 성사되지 못 했다.


출판사에서 제시한 계약서에 내가 서명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많은 부분을 내가 원하는대로 수정도 해주셨고, 꼭 작가로 데뷔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남겨주셨다.


하지만 난 계약서에 서명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가끔 후회할 때가 있다.



"그때 그냥 계약할 걸 그랬나?"


"너 그럼 엄청 고생했을껄?"


첫 소설을 쓸 때 눈이 아파서 한동안 눈의 초점이 맞지 않는 기이한 현상을 겪기도 했다. 병원에 가야하나? 놀라기도 했지만 며칠 푹 쉬면서 노트북을 멀리하니 금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좋아졌다.


"계약서 쓰고 나서도 엄청 고생했을거야. 그건 내가 알아."



'행복했을까?' 그때의 계약 불발은 안도감이자 아쉬움, 미련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난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하다. 남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되게 재밌게 큭큭대고 있더라?"


노트북 앞에 앉아 웹소설을 쓸 때였다. 내가 큭큭대며 얼굴에 미소를 띄고 글을 쓴 건 그게 마지막이었다. 두번째 웹소설을 중도에 급하게 마무리할 때 쯤. 그 이후엔 어깨를 들썩거리며 킥킥대고 글을 써본 적이 없다.



"우선 영양사로 글을 쓴 다음 웹소설을 써보는 게 어때? 일단 전문적인 글이니까 진입장벽은 높을 거 아냐?"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2021년 10월에 시작해서 거의 3년이 넘어간다. 그 덕분에 EBS도 출연하고, 휴롬 광고. 내 인생에서 있을 수 없는 기적같은 일들이 수없이 반복됐다. 영광이었다.


만약 웹소설 계약을 했으면 이 일들은 없었을 거다. 모든 일은 양면성이 있기 마련이다. 아직 오지 않은 웹소설계의 러브콜을 바라면서 오늘도 결심한다.


'계약만하면 내 영혼을 불살라서 역작을 남겨볼테다!'


그런데 언제그러려나? 머릿 속으로 구상해놓은 작품이 있긴한데 AI의 역습으로 그냥저냥 비슷비슷한 글을 쓸 바엔 아예 안 쓰는 게 좋을 거란 생각이 든다.


#계약결혼 #당돌여주 #재벌 #아이돌 키워드로 반복되는 웹소설들을 보면서 내 소설도 그중 하나라는 생각에 부끄럽기 짝이 없다. 진짜 새로운 걸 써야지. 이 세상엔 없는.


AI가 죽었다 깨어나도 못 쓰는 소설,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 사람이라 쓸 수 있는 글. 호모 스토리텔리우스가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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