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영양사협회 주최 '영양사시대' 일기형 에세이 공모글
“저도 영양사가 될래요.”
2년 전, EBS ‘귀하신 몸’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건강에 관한 다양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송으로 내가 출연한 편은 다이어트와 섬유질, 장건강에 관한 내용이었다.
비만 판정을 받은 두 분의 의뢰인에게 의사 선생님께서 진단을 내려주셨고, 나는 간편하게 챙길 수 있는 건강식만 알려드리면 되는 거였다.
촬영날, 키친 스튜디오에는 의뢰인 분들과 동행한 가족분들도 보였고, 그 중엔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도 있었다. 비만과 당뇨로 고생하는 엄마가 건강한 식습관을 가졌으면 좋겠다면서 나의 레시피를 열심히도 배워갔다.
팽이버섯으로 만든 파스타, 토종콩을 이용한 샐러드, 바나나와 견과류를 갈아 만든 샐러드 드레싱 등 여러 레시피를 함께 해보고 여학생은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저도 영양사가 되고 싶어요.”
무엇이 이 학생에게 영양사라는 ‘꿈’을 갖게 했을까?
초롱초롱한 눈으로 오로지 엄마의 건강만을 걱정하던 마음. 그리고 나는 그날밤, 집에 돌아와 브런치에 써놨던 글들을 찬찬히 돌아봤다.
처음에는 당뇨를 앓고 계시는 시어머니를 위해 무언가 해보겠다고 반찬을 해다 드리면서 올렸던 레시피들이었는데. 어느새 차곡차곡 쌓여 이제 487개의 글이 되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PD님께서도 여기서 나의 글을 보고 연락을 주셨던거다. 제작진과 통했던 마음, 그리고 여학생의 꿈을 영양사로 만들어 놓은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비만과 당뇨로 힘들어하는 가족이 건강해지길 바라는 마음. 만약 누군가가 아프고 힘들다면 거창한 레시피가 아니어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 이 작은 시작이 돌고돌아 EBS 출연이라는 좋은 기회로 되돌아온 건 아닐까?
어쩌면 AI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은 현란한 요리솜씨나 지식에서 오는 게 아닌 것 같다.
신문방송학을 복수전공하면서 많은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배웠지만 소통은 이론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기자로 근무하며 출입처를 돌아다닐 때도 진정한 소통은 경청과 겸손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걸.
안성재 셰프님를 인터뷰 할 때도 그 분에게서 감명을 받은 건 손놀림이나 맛을 내는 기술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인종차별을 당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을 때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꿈. ‘셰프’라는 꿈을 이루게 해주었던 건, 가족과의 끈끈한 사랑과 아내, 아이들을 지켜내겠다는 책임감이었다.
내가 인터뷰할 당시만 해도 셰프님은 한국에 들어오신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말은 약간 어눌했고 자신의 속내를 잘 들어내지 않으려는 마음도 읽혔다. 하지만 난 셰프님 곁을 지키면서 겸손한 마음으로 그의 말을 계속 경청했다.
음식이 나오고, 왜 이런 메뉴를 선택했는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뭔지? 찬찬히 물어보다가 어느새 고향 풍경을 접시 위에 그려내는 셰프님의 추억을 들을 수 있었다.
AI에게 지식과 정보는 쌓여도 추억, 감정, 공감은 쌓일 수 없다.
나는 공감하는 영양사가 되고 싶다. 4년 전부터는 나의 레시피를 쉽게 전해보려고 영상 편집 기술을 배워 유투브에 올리고 있다. 구독자 수는 1500명 정도. 확실히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자극적인 먹방이 대세여서 노력을 들인만큼은 쉽게 구독자 수는 늘지 않는다.
그래도 구독자 분들 중 간호사나 의사, 영양사 분들이 가끔 댓글을 달아 주시는데 주로 간편해서 먹기 좋고, 저염저당 건강식이라 아이들도 해주기 좋다고 말씀해 주신다.
이제 내 직업은 영양사 크리에이터다.
조금 서툴렀던 칼질은 방송 출연을 계기로 요리학원에 다니며 익숙해졌고, 학계의 지식과 정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대한영양사협회의 온라인 강의도 꾸준히 듣고 있다.
영양사의 역할은 AI시대를 맞아 크게 변할 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급식실 대신 카메라 앞에 서고, 상담실 대신 영상 너머의 사람들과 만난다.
그렇지만 팩트가 잘 전해질 수 있도록 항상 질문하고, 검증하고, 책임 있게 설명하려는 태도만큼은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의 이 역할이, 새로운 영양사시대를 만드는 작은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