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서귀포를 뱅그르르
10; 협재 해변(한림) ▶ 만선식당(서귀포) ▶ 아뜰리에 안(서귀포)
11; 본태 박물관(서귀포) ▶ 방주 교회(서귀포) ▶ 오설록 티뮤지엄(서귀포)
_사진을 아무리 찍어도, 눈 앞의 분위기와 낭만을 다 담을 수 없어 만족스럽지 못한 순간이 있다. 날씨가 매우 흐리고 습했던 토요일이 딱 그랬다. 우울하고 쳐지는 날씨에 연하게 배어있는 운치라도 담아볼까 싶었지만. 보잘것 없는 갤럭시로는 역부족임을 깨닫고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무언가 찍고, 공유하고 싶다는 부담 아닌 부담에서 잠시 벗어나 눈 앞의 풍경을 온전히 즐기려고 노력했던 날.
_날씨 때문인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던 협재 해변. 그나마 시선을 끌었던 건 먼 하늘을 응시하는 넉넉한 해녀상이었다. 카페에서 잠깐 커피를 마시며 노닥거리다가 점심으로 고등어 회를 먹으러 만선 식당에 갔다. 제주도에 오기 전부터 사수님과 팀원 분의 칭찬이 자자했던 집이라 기대가 컸는데, 첫(!) 고등어 회를 여기서 먹을 수 있어 영광이다 싶을 만큼 깔끔하고 맛있었다. 고등어 하면 따라붙는 비린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만큼, 만선 식당의 고등어 회는 비린내가 하나도 나지 않는다. 기본 찬으로 나오는 전복도 훌륭했고 고등어 구이도 통통하니 맛있었다. 맛에 대해 민감한 편이 아니라 표현력의 한계가 있는게 아쉬울 따름.
_이 날의 소소한 목표는 <코뿔소를 보여주마> 라는 소설 읽기. 서귀포의 <아뜰리에 안>이라는 카페에서 책을 읽었다. 인테리어가 독특한 카페였는데, 안타깝게도 사진은 없다. 각기 다른 테마로 꾸며진 3개의 공간이 있고, 뒤 뜰에는 야외 좌석과 곱게 핀 수국이 있다. 수국 필때 가면 가장 좋을 듯 하다. 원래 제주의 수국은 5월 말 ~ 6월 초면 다 핀다는데, 올해는 아직도 덜 피었다. 종달리 수국 길을 꼭 가보고 싶은데, 갈 수 있으려나. 무튼 카페 분위기도 좋고 음료도 대만족. 외부 테이블에 사람들이 계속 들락거리기는 했지만, 정작 내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느긋하게 할 일을 즐길 수 있었다.
_6·10 민주항쟁 30주기를 맞은 이 날, 시의적절하게 <코뿔소를 보여주마>라는 소설을 읽었다. 1986년, '샛별회'라는 조작된 공안 사건의 피해자들이 당시 조작을 주도했던 사람들에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죄값을 묻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이 소설을 읽고 그알까지 보고나니 마음이 무겁고 무기력해졌다. 그러라고 만든 소설과 방송은 아닐테지만. 한 개인으로서 민주 사회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필요한 실천은 뭘까, 하는 답없는 고민을 하며 잠에 들었더랬다.
_분명 비가 온다고 했었는데, 무슨 영문인지 어제와 다름없이 내리쬐는 햇살에 잠을 깼다. 후다닥, 그린 카를 예매했다. 언제 또 흐려질지 모르는데 이 기회를 놓칠수야 없지. 점심으로 마파두부를 해먹고 (어제 혹시나해서 봐두었던) 본태박물관으로 향했다.
_본태 박물관은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박물관으로, '전통과 현대의 공예품을 통해 인류 공통의 아름다움을 탐색'하고자 하는 정신으로 만들어졌다. 전통과 현대가 서로 조화롭게 융화될 수 있도록 고심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모던한 건축물 사이에 석탑이라든지, 형형색색의 나비 조형물 뒤에 연꽃이 떠있는 잔잔한 호수라든가, 현대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전시물의 끝에 동양의 다다미 방을 만나게 된다든가. 전통과 현대가 그저 공존하는 것을 넘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게. 박물관 내부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별도의 기록을 남길 수 없었지만, 그 덕에 좀더 몰입해서 전시를 봤다. 서울의 미술관이나 전시관은 항상 사람이 붐비기 때문에 등떠밀려 감상하는 기분이 들곤 했는데. 여기서는 내가 보고싶은 만큼 그 앞을 서성거려도 누구 하나 눈치 볼 것이 없어 참 좋았다. 우리가 전시를 다 보고 기웃거릴 즈음엔 엄청난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오긴 했지만. 나이스 타이밍-
_1관은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녹아있는 전통 소품들(각종 가구, 그릇, 신발, 의류 등)이 있고, 2관은 포스트모던하면서 미니멀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2관에서는 백남준의 미디어 아트 작품도 여럿 만날 수 있고, 본태 박물관을 설계했던 안도 타다오의 각종 자료들을 엿볼 수 있다. 3관은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과 무한 거울 방, 4관은 전통 장례 풍습에서 사용됐던 꽃상여와 꼭두들을 만날 수 있다. 관람 시간은 넉넉히 1시간 반~2시간 정도. 다음엔 안도 다다오의 지니어스로사이에 가봐야겠다.
_본태 박물관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방주교회가 있다. 방주교회는 말그대로 노아의 방주를 본따 만들어진 건축물. 이 역시 재일동포 출신의 건축가 이타미 준이라는 사람이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찾아보니 '흙, 돌, 나무 등을 이용하여 자연친화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가미한 디자인이 특징이며,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한국적인 전통미와 자연미를 살린' 것이 특징이라고. 제주의 다양한 빛을 반영하기 위해 지붕을 불규칙적인 유리 타일로 만들었다고 한다. 마치 물고기 비늘 같기도 하고, 일렁이는 파도 같기도 하고, 성스러운 느낌을 물씬 더하는 지붕이 인상깊었다. 주말에는 예배가 있어 출입이 금지되고, 평일에도 신청한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_저녁은 서귀포의 기억나는 집 어게인. 두 번 먹으니 세 번 찾고 싶은 그런 집. 오분자기와 오이 김치가 참 맛있는 곳이다. 이렇게 또 제주의 주말이 가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