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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맛탄산수 Dec 28. 2022

적당한 선

안녕, 2학년

    2학년 2학기는 공직을 준비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겐 '그나마' 쉬어갈 수 있는 학기라 불린다. 정장 재킷 안으로 뜨거운 땀방울을 수차례 흘려보내야 했던 여름 인턴도 끝이 났고, 그래서 더 이상 어딘가에 제출하기 위한 성적을 만들어내야 할 부담도 사라졌으며, 대체로 민법보다는 관심이 적은 형법 위주의 학기인 데다가, 1년 내내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려야 하는 3학년을 맞이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학기이기 때문이다. 뭐, 써놓고 보니 역시 놀 핑계는 많다 싶다.


    그래서 6학점 짜리 정도로 열심히 놀았다. 수업 째고 술 마시고 안 째고도 술 마시고. 도저히 공부가 손에 안 잡혀 번개도 치고. 늦여름 캠핑도 가고. 사주도 보고. 부케도 받고. 내게 사진 촬영은 이게 인생의 마지막인양 헤메코 플렉스해서 졸업 사진도 찍고. 새벽에 삼삼오오 모여 축구도 보고. 다른 조와 쪼인트로 술도 마시고. 캘린더에 각 잡고 등록할 만큼 특별한 일정은 아니지만, 별거 아닌 일들로 웃고 떠들고 마시고 먹으며 보통의 일상으로 채워내 여느 학기보다 20% 정도 높은 텐션으로 지냈던 하루하루들까지. 지난 학기의 진한 힘듦을 중화시켜서,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좀 더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적당한 농도였다. 


    그래도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살아야 하니 짬짬이 해야 할 일들을 했다. 다시 면접을 보았고, 졸업요건으로 필요해 이번 학기의 최대 숙원사업이었던 과제를 끝냈으며, 몇백 페이지가 되는 기록들을 뒤적거리고 메모를 하며 기록형 시험에 익숙해져 갔고, 완벽하게 끝내진 못했지만 그간 배워온 형법의 퍼즐들을 하나씩 맞춰나갔으며, 전국단위 시험 일정이 이어져 유난히 길었던 기말고사 기간을 어떻게든 버텨내었다. 공부량이 적었던 터라 시험이 임박할수록 더 힘들었던 것도 솔직한 사실이지만 처음으로 전국단위 석차를 매기는 시험인 만큼 유난히 긴장됐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3학년이란 이런 걸까? 막연한 두려움은 종강 이후에도 며칠을 악몽으로 나를 괴롭혔다. 사서 걱정하는 사람이 이래서 피곤한 거지. 


    나름 힘들었던 1학기와 나름 즐거웠던 2학기가 모두 끝났다. 가까이서 보면 들쭉날쭉 했던 내 하루하루가, 모여서 한 주가 되고, 모여서 한 달이 되고, 모여서 일 년이 됐다. 양손으로 일 년의 시작과 끝을 잡고 두 팔을 앞으로 쭈욱 내밀어 조금 멀리서 나의 일 년을 바라본다. 나는 올 한 해도, 나름, 적당한 선에서 2학년을 살아낸 것 같다. 많이 힘들었던 날, 많이 행복했던 날, 멀어진 사람들, 가까워진 사람들,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 누군가로부터 받은 응원, 누군가에게 되돌려준 격려, 누군가를 향한 날카로운 말, 함께한 시간, 혼자만의 시간, 터지는 웃음, 흐르는 눈물, 같이 뜨거워진 눈시울, 나를 가르쳐준 사람, 내가 가르쳐준 사람, 앞서 걷는 때, 뒤따라 가는 때, 뜨거웠던 나날, 차가웠던 순간, 무거웠던 어깨, 가벼웠던 발걸음, 여전한 위경련, 따뜻했던 핫팩, 그보다 더 따스했던 온정, 출석 스터디, 퇴근 메이트, 반짝반짝 나와 함께 빛나준 친구들,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친구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친구들, 나를 과분하게 아껴주는 친구들, 한 발짝 다가서기, 두 발짝 거리두기, 멀리서 바라보기, 조심스레 털어놓은 속마음, 척하면 척 알아주는 겉마음, 앞자리, 옆자리, 너만큼 너를 알고, 나만큼 나를 아는, 관계, 사이, 접점, 공존. 모든 순간들이 점점이 모여 적당한 선을 이루고 있었다. 


    홀린 듯이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끝냈다. 희도가 말했지. '나를 믿는 너를 믿어, 나는 당신들을 믿고 간다.' 내년은 분명 더 힘들 거고, 더 지칠 테고, 더 두려울 테다. 나의 일상은 들쭉날쭉 상상 이상의 진폭으로 널뛰기를 할 것이리라. 하지만 괜찮다. 지난 1년간 내 인생의 적당한 선을 이루며 나보다 나를 더 믿어준 사람들이 내 옆에 있어줄 것이고 나도 그들의 옆에 있어줄 것이니까. 너무 힘든 만큼 너무 행복한 순간이, 너무 지친 만큼 너무 힘이 나는 순간이, 그래서 내년 한 해도 적당히 잘 살아냈다는 뿌듯함이 분명 뒤따를 테니까. 


    잘가 2학년, 어서 와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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