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은 사랑을 한다

백석 - 사슴

by 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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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시집을 추천을 하느냐 마느냐에서. 이 시를 읽다보면. 누구에게는 너무나 재미없고 또 무슨 말인지 모를수도 있겠다. 다만 슬프게. 자꾸 나에게 오고있는 시집이라.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사명, 운명, 그 외의 나를 연관짓는 단어들로 하여금 이것을 여태 가지고 있다.


얼마전 시를 필사 한 적이 있다. 눈으로 읽어가는 속도 보다, 소리내어 읽어가는 속도 보다,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느린 속도로 한 글자씩 써 내려가면, 단어와 단어에서 떠오르는 마음들이 있다. 사실 이 사슴을 다시 보고 싶지 않았는데. 그나마 읽어졌던 몇편 조차, 그 조금만으로도 마음은 너무 무너지고 있어서. 그 아래로 빠져버리게 되면 일상은 고통스러우니까. 그렇지만 천천히 걸으면 볼 수 있는 것처럼, 이해하기 싫었던 것들이 읽어지기 시작한, 오래 된 이 책. 사슴.


시라는 것을 소설마냥 대략의 스토리를 들려줄 수 가 없다. 특히 이 백석의 시는 더 고민이 된다.


시를 이야기 할때 내 입으로 이 시집은 표현이 예뻐요. 좋아요. 문단에서 문학계에서 주목하고 있어요. 이런 외적인 것들을 늘어 놓다 보면 어느새 '그게 뭐라고' 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은 시집에서 가장 중요한 본인의 마음이 결여된, 가장 무책임하며 성의 없는 말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시집을 어떻게 읽어가면 좋을지. 이 시집은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어떤 그림이 그려질수 있는지. 어떤 마음이 있는지를 말해보고 싶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까지. 어차피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준다 해도 당신에게 닿지 않으면 증발하고야 마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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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학생사진과 영어교사를 할때 당신의 사진



백석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수가 없다. 1930년대를 풍미했던 '시인의 시인' 이라는 타이틀. 우리가 최고의 시인이라고 평하는 윤동주가 초기에 백석을 너무 좋아해서, 시집을 사다가 필사하면서 수많은 현타를 겪었다는 소문도 있다.


백석은 평안북도 정주의 이북사람으로, 김소월과 같은 오산학교의 선후배 사이이다. 물론 김소월이 10여년 선배이기 때문에 같이 수학을 한 일은 없다. 졸업후 일본에 유학을 갔다 조선일보사에서 일하게 되고, 그렇게 남으로 내려와서 살게 된다. 그렇게 타지에 살면서- 살아가며 적어낸, 그가 남긴 유일한 시집. 사슴.


시집이 6챕터로 나누어져있다. 그렇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과 테마로 마음대로 나누어 본다면 크게 3등분을 할 수 있을것 같다. 나는 그런 방향으로 느껴졌다.


1) 자연. 사람들. 당시 30년대의 자연과 사람사는 이미지들을 순수하게 토속적, 한국적으로 표현해낸 초반부


2) 중간 이 시집의 6-7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낭만의 순애보 모던보이 백석이 여행을 하고, 또 그가 홀로 아프고 뜨겁게 사랑했던 '난'을 그리는 슬픈 사랑의 노래. 상사와 이방인으로서의 쓸쓸한 백석을 스스로 기록했고


3) 마지막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챕터에서 엄청난 마음을 짊어진 거장 '백석'이라 할만한 묵직하고 철학적이며, 문학적 모더니즘 적 재능과 기교, 산문시의 형태의 표현과 감정을 층층이 쌓아가는 감정의 표현, 입벌어지는 시적 완성도. 윤동주가 신인때 현타가 왔을법한 백석이 소위 각을 잡고 적어낸 시들이 있다.


시의 전반부에 특히 이거 뭔가 싶은. 정말 아무말인가 싶은 시들이 있는데, 사람들이 간혹 시에 대해 '감정 혹은 사연이 있어야 한다' 혹은 어떤 시들은 '이게 대체 왜 있고 왜 쓴거야' 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시의 존재 목적은 시인이기 때문에 남기게 되었던 글일 뿐이다.


시에는 사연이 없을수도 있고, 그저 보이는 것을 적었을 뿐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시가 아닐지도 모르고, 시인도 어쩌면 스스로 시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머리에 떠오른 단어들을 종이에 널어두는, 바닷가 작은섬에 잠시 다녀간 외로운 사람처럼.


노루

노루산골에는 집터를 츠고 달궤를 닦고
보름달 아래에서 노루고기를 먹었다


백석의 시 중 '노루' 라는 시. 그저 산골집을 좀 치우고, 달뜬날 노루고기 먹었다는 시. 별거 없지만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하면 나무 울창한 숲에 초가집 한채 있고, 보름달이 떠 밤이 밝고, 바베큐파티 마냥 사람이 몇이나 있는 줄은 모르겠으나 고기를 구어먹는 혹은 쪄먹는 그 연기 올라가는 밤산 풍경.


그러니 그저 무언가를 표현한 시에서 꼭 무언가를 찾지 못해도, 그저 감정 혹은 이미지를 떠오르는 대로 적어둔 것들에 대하여. 이게 무엇인가. 내가 모자란 사람인가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각자의 삶이-마음이 걷는 걸음과 방향은 다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우주를 찾아가기를.




통영2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가깝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북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서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이라는 이 같고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골에 산다든데
명정골은 산을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서 오신 듯한데 동백꽃이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듯 울듯 한산도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이제 이 책의 핵심은 2파트, 상사와 이방인으로서의 백석이 등장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그리고 이방인으로서의 아픈 마음이 너무나 잘 그려져 있다.


이방인들은 누구보다 잘 지낸다. 타지에서 와서 신기한 얘기도 곧잘한다. 생김새나 옷이나 물건들이 신기하다. 저멀리 유랑하는 서커스 극단처럼. 백석도 몹시 성격 좋고, 두루두루 잘 지내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제국의 모던보이.


필사적으로 사랑받기 위해 간절한 존재.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기도 하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잘 지내는 듯 하고, 여러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도 생각 외로 잘한다. 그렇게 살아가야할 밝디 밝아보이는 모습은 어떻게든 웃어야 옆에 사람처럼 앉을수 있는 이방인이 이겨내야만 하는 현실이기 때문. 이방인은 자신의 처지 혹은 주제를 스스로 너무 잘 알지만. 또 그것을 슬퍼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한가지 치명적인 약점은 어느날 문득. 마음에 들어온 것들에 대해서. 그것들에게 숨이 멎어버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중한것이 생겨버리면 그제서 이방인이고 싶지 않아지기 때문이므로.


자꾸 어색하고, 잘하던 말도 머뭇머뭇, 불필요한 말도 가득. 그리워 통영까지 여러번 찾아갔으면서도, 막상 통영에 와서 신이난듯한 모습이지만, 난이라는 여자는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저 멀리 돌계단에 앉아서 그리워나 하는 모습. 그런 이방인의 슬픈 모습이 시에 너무나 잘 그려져 있다. 그래서 이방인인 나는 자꾸만 통영에 가고 싶다.


주변에. 타지역에서 온 친구들이 있다면. 잘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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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많이 서툴러서, 그래서 정작 소중한 사람보다 개의치않는 사람들에게 더 친근하고, 그래서 어떤 면으로 상처를 주면서도 또 몹시 뻔뻔하지만. 상대방의 상처가 나는 가장 두렵기때문에. 오랫동안 생각해 왔던 내가 유서를 쓰게 된다면 항상. '미안해. 그러려던게 아닌데'.


나는 사실 이 시가 아직 완벽히 다 읽어지지 않는다. 내가 가진 여타의 다른 시들도 그렇다. 나는 나의 속도가 있고. 그래서 여기에 저기에 생기는 간격들을 내가 어쩔수가 없는 것들 뿐이라서. 가만히 있는 점들과 단어를 내가 억지로 뜯어갈수는 없다.


시를 읽어나가면. 나에게 너무 어려운 글이 있고 그것들 때문에 너무 어려운 시간들이 있고,때로는 몹시 초조할테지만, 지금은 시간마다 어깨가 내려앉게 되겠지마는.


그래도 희망이라는 것은 종결되기 이전까지 기쁜일을 생각하기 위해 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웃으면서 다시 찾아왔다가도, 울면서 또 돌아갔다가도, 마지막에는 손잡고 작은 점 하나까지 같이 흠뻑 젖어 갈 수 있도록. 나아가는 그 속도를 온전히 견뎌내면서,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면서 나중에 다시 또 보면 오히려 반가워하고 싶다.


그런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

많고 푸른 밤을 지나서 다시 마주쳐 보기를.



작별인사를 할줄 몰라 쓸데없는 별볼일 없는 나의 이야기만 자꾸 말했다. 잘 일어났는지, 전철은 잘 탔는지, 밥은 잘 먹었는지. 밤을 뒤척이지는 않았는지 꿈은 어떤걸 꾸었는지. 사소하지만, 가장 지금의 당신을 묻는 방법을 몰랐으므로. 항상 작별은 쓸쓸한 당신의 몫으로 남겨졌었던.


나도 내가 좀 더 나일수 있게. 상대방을 너무 배려해버리면. 너무 생각해버리면. 생각보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서로의 과정과 작고 선명한 선들을 지나쳐 버리게 되니까. 그러니 배려라는 이름으로 너무 쓸쓸해하지 않게. 그렇다고 초조하거나 과하지 않게. 중요한것들을 좀 더 나은 모습으로, 항상 조금씩. 단단하게 잡아갔으면 좋겠다.



서툴러서 미안해.

자꾸만 떠나가는 너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