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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뎁씨 Jan 05. 2020

헌정#1 : 지미 헨드릭스 (Jimi Hendrix)

기타리스트 명예의 전당 1위 영구결번, 기타의 신


음악가라는 매거진을 따로 떼어 놓고, 이곳에는 내가 가진 음악에 대해서 써 내려가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음악 이야기를 쓸까 고민을 많이 했다. 쓰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많기 때문에, 내가 들었던 것들을 당신에게 너무나 들려주고 싶기 때문에. 클래식, 재즈, 블루스, 락, 대중가요, 일렉트로닉, 힙합 등. 어디서든 일단 시작을 해야 하는데, 그 많은 귀를 스쳐간 시간 중 한순간을 꼽는 것은 너무 힘들다. 다른 섹션에는 별생각 없이 그때 집힌 주제를 써 내려갔지만, 이것만큼은 느낌이 많이 달랐다. 


좋은 노래와 음악가를 추천하고 소개할 기회는 앞으로도 계속 있겠지만, 내가 첫 번째로 썼을 때 두고두고 후회 없이 남겨둘 한치의 망설임 없는 주제와 아티스트를 잡아야겠다 하고 오래오래 고민한 결과. 이 매거진에서는 계속 다양한 음악 콘텐츠를 다루겠지만, 첫 번째 콘텐츠는 '헌정 : Tribute to' 로 정하기로 했다. 


음악의 역사에 획을 긋고 떠나신 분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누굴 선정해도 좋겠지만, 그래도 그 누구 앞에서도, 어떠한 반박 앞에서도 가슴을 펴고 '아니다, 의심과 반론의 여지없이 최선이다'라고 고집을 부리더라도 부끄럼 없는 내 최고의 아티스트를 첫 번째로 헌정한다. 


내가 헌정을 올리는 첫 번째 음악가, 기타의 신.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그의 모든 아이덴티티가 담긴 사진. 아프로 곱슬머리, 반다나, 화려한 히피 옷과 액세서리, 왼손잡이라 거꾸로 든 펜더 기타


혹시 악기를 하나쯤 다루는지 묻고 싶다. 나는 오랫동안 기타를 쳤다면 쳤고, 치지 않았다면 치지 않았다. 다루는 악기가 있다면 대개 그 악기의 뮤즈를 하나씩 간직하고 살 텐데, 바이올린이라면 파가니니. 피아노라면 베토벤, 쇼팽, 모차르트 등.  


기타도 각자에게 수많은 뮤즈가 있다. 특히 기타는 미디어 시대 이후에 밴드를 통해 이름을 알린 경우가 많기 때문에 1950년-1980년 사이 굉장히 짧은 기간에 전설적인 기타리스트들이 쏟아져 내렸다. 그래서 가신 분도, 남아계신 분들도 전 세계-국내외에 많이 이름을 남기고 있지만, 그중 '3대 기타리스트'를 꼽으라면 이때 또 사람들의 의견이 강력하게 분분하다. 


일단 3명 중, 에릭 클랩톤(Eric Clapton, 대표곡 Tears in heaven, Layla), 지미 페이지(Jimmy Page, 밴드 Led Zeppelin, 대표곡 Stairways to heaven) 이 두 사람으로 좁혀지는 데는 큰 논란이나 불화가 없다만 나머지 1명에 대해서는 진흙탕이 벌어진다. 


좌 에릭 클랩톤, 흑백 지미 페이지


위 두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에서 제프 벡, BB 킹, 척 베리 등 아주 진흙탕이 벌어진다. 그런데 이중 오늘 헌정의 주인공, 지미 헨드릭스의 이름은 불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묻는다. '지미 헨드릭스는요.?'. 그러면 돌아오는 답변은 이렇다. '그분은 논외지'. 기타를 좀 치는 사람들이라면 대개 그렇게 진흙탕 싸움을 하다가도 지미 헨드릭스 앞에서는 모두가 경의를 표한다. 마치 예전 축구선수 디디에 드로그바가 코트디부아르의 내전을 말 한마디로 멈춘 것처럼.


그에게는 황제라는 이름도 무례하다. 기타의 '신'. 그의 영상을 보고 싶다면 잠시 아래의 링크로.

https://www.youtube.com/watch?v=xPx-cL2t9TE




악기를 얼마나 정확하게 잘 다루느냐, 얼마나 정확한 연주를 하는가 등의 '음학'적 기준으로 평가를 한다면 위의 언급된 기타리스트들은 축에 끼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 기타리스트들은 롤링스톤즈에서 선정한 세계 100대 기타리스트 중 70위 즈음에서 찾으면 정말 완벽한 연주자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기타리스트라는 상징은 그저 연주 실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상징 이 중요한 것.


그가 기타리스트로서 남긴 업적. Purple Haze, Foxy Lady, Little Wing, Voodoo Child 등 미국 의회 도서관에 영구 보관되고 있는 그의 명반들도 명반이지만, 그에게는 크게 아래 3가지의 위대한 업적이 있다.


1. 전자기타 / 이펙터의 가능성 실험  

기타를 치면, 사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난다. 하지만 록음악이나 팝 음악을 듣다 보면 기타 소리인데 자글자글 거리거나 어떨 땐 찌이잉!! 하며 아주 초음파 같은 초고음의 파열음이 속이 다 시원하게 뻗어가는 전자기타의 소리가 나지 않는가. 그중 많은 부분이 태초의 이 지미 헨드릭스의 전자기타 한계 실험에서 비롯된 결과물 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이크와 스피커를 가까이 두면 귀가 찢어지는 하울링이 들리는데, 그 조차도 이용하여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등의 당시 정직하고 정직했던 순수한 음악인들의 세계를 뒤흔들어 버렸던 전기적 실험정신. 그리고 그는 기타의 몸체를 힘으로 강하게 휘어서 물리적으로 휘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줄을 늘어뜨리거나 조이면서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냈다. 정말 기타와 물아일체가 되었던 지미 헨드릭스.



2. 새로운 주법과 화음, 스케일(음계)의 실험

음악에는 고유의 화음, 스케일(음계)이 있다. 그 화음과 음계가 만들어진 이유는 특정음을 기준으로 시작했을 때 가장 듣기 좋은 간격의 음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피아노 흰건반 도에서부터 다음 도까지 '도레미파솔라시도' 이것이 다장조의 스케일이다. 그 중간중간 검은건반이 있지만 그것을 치지 않음으로써 도레미파솔라시도라는 굉장히 안정적이고 듣기 편안한 음계가 완성된다. 


하지만 지미 헨드릭스는 그 기존의 듣기 좋은 음계를 파괴하며 새로운 음계에 도전하면서 기존 음악인들이 생각했던 음계의 한계가 땅부터 하늘까지였다면, 그것을 아주 우주 끝자락으로 날려 보냈다. 불협화음. 악기를 연주하다가 악보의 일부분을 틀려도 사람들이 모르거나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는 때가 있고, 단 한음만 틀려도 귀가 찌릿하면서 미간이 찌푸려질 때가 있다. 그것이 바로 불협화음이다. 그만큼 기존의 잘 조화를 이루는 음악에 찬물을 끼얹는다. 


예를 들어 늘 먹던 집에서 떡볶이를 시켜 먹는데, 모짜렐라 치즈가 정말 딱 한가닥 얹어져 나오면 우리는 이것을 뭐라 할까. 주인에게 말하겠지. '사장님, 여기 뭐 잘못 들어갔는데요?'. 그런데 늘 먹던 떡볶이에 치즈를 그냥 때려 부어서 떡을 찍으니 치즈가 쭈욱 늘어나 버리면 그때부터는 막 사진 찍고 인스타 올라가고 난리가 난다.  지미 헨드릭스는 사회의 치즈떡볶이 같은 사람이었다. 


음악에서 한 음의 불협은 용서되지 않지만, 연속되는 불협을 기가 막히게 이끌어가면, 때로는 화음보다 짜릿한 순간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재즈나 블루스 음악을 듣다 보면 난데없이 이 무슨 주법 화음이지? 그런데 묘하게 빠져드네? 이런 느낌이 들었다면 제대로 듣고 있다.



3. 새로운 소리와 퍼포먼스, 실험적 공연의 실험

그의 공연은 늘 새롭고 다이내믹한 퍼포먼스의 연속이었다. 이빨로 기타를 뜯는 등, 머리 뒤로 기타를 돌려 메고 눈을 감고 연주하는 등, 기타를 불에 태우는 등. 


그가 선보인 당시 충격적이고 놀라웠던 퍼포먼스. 지금은 웬만한 기타리스트나 락밴드에서 흔히 하는 퍼포먼스이지만


특히 사회적 이슈에 대한 실험-비판적 연주를 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월남전의 잔혹성에 반대하며 미국 최고의 록 페스티벌인 우드스탁에서 미국 애국가 변주곡을 연주했는데, 마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폭음이 터지는 그 전쟁터를 연상케 하는 실험적 연주를 선보였다.

Jimi Hendrix National Anthem at Woodstock :  https://www.youtube.com/watch?v=MwIymq0iTsw&t=45s


그 외 그저 한 가지를 더 들자면, 어쩌면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백인으로 수렴하는 락과 팝의 문화에 흑인으로서 페스티벌의 '신'의 자리에 올랐다는 것. 


지미 헨드릭스, 우드스탁 페스티벌 (1969)



그의 Woodstock live 콘서트를 담은 DVD는 정말 마그네틱 시그널이 나갈 정도로 돌려봤다. 그래서 확실해졌다. 음악이란, 악기란 정말 진심을 담아 맛깔나게 만져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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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 올라오는 클래식 피아노 콩쿠르 영상을 가끔 본다. 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아서 늘 싫어요를 누르는데도 자꾸 추천해준다. 싫어요를 누르는 이유는 피아노 콩쿠르의 평가에 퍼포먼스나 표현력도 점수에 포함된다고 하지만, 어디서 본건 있어서 과도하게 어깨와 손목을 흐느적거리는, 선생님에게 배운 안무를 추는 모습이 어릴 때부터 혐오스럽게 싫었다. 영혼도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가식이 너무 싫었다.


지미에게 진심과 가식을 너무 일찍 배워 버려서, 그래서 일상에서도 가식보다는 영혼 없음이 더 맑아 보여서 때때로 영혼 없이 말하고 영혼 없이 답했다. 하지만 이러다 정말 영혼이 없어지겠지, 그렇게 사라지기 전에, 영혼이 통하는 사람들을 찾아 더 많이 만나고 더 걸어야지. 그래서 곡이 조금 난해하고 기괴하더라도 한 번쯤은 같이 이어폰을 나누어 끼우고 지미의 소리를 들어야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라며 왼손을 건네고 눈을 바라보며 진심으로 활짝 웃어야지.





지미 헨드릭스 : Jimi Hendrix (James Marshall Hendrix)

1942년 11월 27일 - 1970년 9월 18일 (27세) 

천재는 요절한다. 신이 부르시기 때문에.



'Shake my left hand, man, it's closer to my heart'
'왼손으로 악수합시다, 그쪽이 내 심장과 더 가까우니까'


영원한 나의 뮤즈.

헌정, Tribute to Jimi Hendr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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