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의 의미
나에게만 없는 너의 따듯한 영혼들
떡볶이는 맛있는 음식이 아니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맛있는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떡볶이는 항상 맛있다는 주변인들의 예찬을 가만히 듣게 되고, 나는 그것을 들을 때마다 '떡볶이 맛없는데..'라며 말끝을 흐리고. 그럴 때면 절뚝거리는 사바나의 얼룩말에게 하이에나 떼가 덮치듯 수많은 비난과 야유가 쏟아진다.
그럴 때마다 내가 혼란을 멈춰 세우고 차분히 건네는 말은.
'잘 생각해봐, 살면서 먹어본 음식이 수천, 수만 가지가 있을 거잖아?. 그걸 일렬로 주욱 나열하고 순위를 매긴다고 해봐. 그럼 떡볶이가 TOP 100, 혹은 상위 10%에 들어올 수 있어?'라고 말하면 'TOP 100은 무슨 TOP10에도 들 수 있다'라고 다시 하이에나 떼에게 나는 침략당한다. 서두에 미리 말해두겠는데, 나는 떡볶이가 맛있는 음식이 아니므로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천하게 여기고자 쓰는 글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둔다. 이 장황할 이야기는 논리적인 말이 아니라 나의 개인적인 말이다.
떡볶이 싫으당 가입 어떻게 할 수 있나요
황교익이라는 분이 치킨, 떡볶이 맛없다고 말했을 때 나는 굉장히 공감이 갔다. 그것이 정치적이건 사상적이건 여론을 떠나서 정말 맛으로만 따졌을 때 공감이 갔다. 정말 나에게는 TOP 100은 무슨 TOP 1000에도 떡볶이는 없을 것이다. 달고 짜고 맵고 쫄깃하고. 온갖 자극적인 느낌이 있어서 생각나는 것이지, 나에게 만 원을 아니 2만 원을 주면서 맛있는 거 사 먹고 오라고 하면 난 절대 떡볶이를 쳐다도 보지 않을 텐데. 그런데 어떤 누나는 2만 원을 주면 떡볶이 먹으러 가서 사리 추가해 먹을 거라고 하더라. 도대체 2만 원으로 떡볶이에 사리를 얼마나 시켜야 그 돈에 맞춰 먹을 수 있는 거야. 사람이 먹을 수 있긴 한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정말 2만 원짜리 떡볶이가 있었다. 종로 '보름' 출처 : 여기 어때
그럼 너는 대체 입이 얼마나 고급 지시고 잘나셔서 떡볶이는 맛이 없다고 하느냐. 귀한 집 도련님으로 자라셔서 스테이크라도 취미로 드시나?라고 하면 전혀 그렇지 않은 게, 현재 내가 좋아하는 음식 TOP 1은 '잔치국수'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다. 이게 뭔가 싶은 영화도 배경 좀 알고 보면 달라 보일 여지가 있는 것처럼, 이건 설명이 조금 필요하겠다.
나에게 어떤 '음식' TOP을 꼽으라면 사실 그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치찌개를 예로 든다면 그냥 김치찌개를 좋아한다? 그 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음식을 특정하려면 그 음식의 특징이나 출처 등의 최소한의 부가 정보가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새*을 식당의 7분 김치찌개라든지, ㅇㅇ식당의 꽁치김치찌개라던지. 그런 어디 가서 정확히 먹을 수 있는. 그런 음식을 말한다. 엄마 김치찌개, 내가 만든 김치찌개. 이런 건 논외로 하고.
그래서 특정 메뉴를 꼽는 그 판에 내가 말하는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려면, 지금 내가 사는 도시에서, 어딜 가도 비슷한 수준의 맛을 내며, 어딜 가도 대개 비슷한 모양이 나는 음식이어야 한다. 즉 내가 객관적이라기보다 개인적으로 납득 가능한 '표준화'가 나에게 필요하다. 맞다. 이쯤 되면 까탈스럽다고 사람들이 말을 잘 안 섞어 준다.
예를 들면 제육볶음, 갈비탕 이런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떡볶이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차돌 떡볶이, 닭 떡볶이와 같이 '형용사'나 'ㅇㅇ떡볶이' 등 이런 상호가 추가된 이런 특별한 경우라면 모를까. 그냥 '떡볶이'라고 걸어놓고 파는 곳을 가면 그 기본 떡볶이조차 너무나 간격이 크다. 밀떡을 쓰는 집, 쌀떡을 쓰는 집, 혼합 떡을 쓰는 집, 가래떡을 쓰는 집. 양념도 고추장을 쓰는지, 고추장이 안 들어간 고춧가루로 만 하는지, 물엿을 넣는지 안 넣는지. 정말 모양과 맛에 큰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아서 이것은 이렇다고 말할 수가 없다. 표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국물 떡볶이면서 국물 떡볶이라고 표기 안 하고 그냥 떡볶이라고 파는 것에 나는 찍먹파가 탕수육을 시켰을 때 탕수육에 소스가 부어 나온 만큼의 혼란을 느낀다. 나는 탕수육 부먹이다.
다시 내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잔치국수로 돌아가 보자.
고명 정도야 다르겠지만 근본적인 면과 육수는 다른 게 떠오르지 않는 정말 표준적인 잔치국수
잔치국수의 경우는 소면 중면 정도의 차이는 그저 보편적으로 두께 정도의 차이, 그리고 그것은 원재료의 큰 차이를 두지는 않는다. 쌀면이냐 밀면이냐 고민할 거리도 없다. 육수 또한 원재료의 차이를 크게 체감하기 어렵다. 디포리 혹은 비슷한 계열의 멸치나 생선 육수. 요리도 납득할 만하게 표준화가 가능하고 그리고 그것이 입맛에 너무 맛있다(사실 그냥 맛있다고 하면 그만일 것인데). 육수가 옅거나 짙은 정도는 다르겠지만, 먹을 때 아무런 부담도 없고 고추/파 등으로 양념한 간장과 너무나 잘 어울리고 김치를 싫어하지만 이때만큼은 김치도 나쁘지 않다. 입이 짧은 편이라 밥도 어떨 땐 반 공기만 먹고 일어나는 사람이지만, 잔치국수는 크게 배고프지 않아도 일반 식사로 준다면 막 세 그릇씩 도 먹는다.
'밀면'이라는 음식도 좋아하는데 밀면을 TOP에 올릴 수 없는 이유가 지금 내 환경에서 접하기 어려운 메뉴이기 때문이다. 내 입맛 기준으로 본다면 경주의 '부산 가야밀면'집 밀면을 정말 인생 최고로 꼽을 수 있는데, 서울에서는 그 맛을 볼 수 없으니까. 그러니 경주나 부산이 아니고서야 밀면을 떠올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만큼 표준화와 지역의 보편성은 나에게 몹시 중요하다. 전라도에서 상경한 친구들이 서울의 보편적 기사식당이나 백반을 기쁘게 먹지 못하는 것처럼.
그래서 그대가 나에게 묻는 맛있는 음식이란, 지금 내가 먹을 수 있는 보편적인 환경에서 마음에 드는 음식 TOP을 꼽아 보는 데에 의의가 있다. 내가 제주도에 살고 있으면 아마 단순한 돼지수육이 몹시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사실 내가 TOP 100을 꼽던, 떡볶이가 맛이 없는 음식이라고 하던, 그것을 상대가 어째서 발끈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잔치국수를 좋아하는데 누가 '잔치국수 그걸 무슨 맛으로 먹냐 잔치국수 맛없는 음식이다!'라고 말하면 나는 '난 맛있는데ㅎ' 하고 말 텐데. 그걸 굳이 달려들지 않아도 되는데. 하지만 각자에겐 각자가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으니까. 최근 한국에서 활동 중인(이제아닌) 가나 출신 모 연예인이 Black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어떤 고등학교의 오랜 전통 코스프레에 검은 얼굴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하는 것처럼. 불가침의 영역은 있을 수 있으니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이해하지 않기로 한다.
떡볶이를 많은 분들께서 '소울푸드'라고 여긴다고 한다. 내 주위에도 내가 떡볶이가 맛없다고 할 때마다 발끈하는 친구들은 떡볶이가 그들에게 소울푸드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떡볶이의 가치와 추억을 폄하하는 게 아니고 음식으로서 나에게 맛이 없다는 것이다. '소울푸드'와 '음식'은 다른 것이다. 음식이라는 범주로만 다뤄야 할 부분이 아닌, 단어와 형용사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합성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시간과 마음과 추억과 때로는 아픔 이런 것들이 다 같이 있는 푸드보다는 소울에 더 가까운 단어이기 때문이다.
소울푸드에는 특징이 있다. 첫째는 어릴 때부터 흔히 주어졌던 음식이며, 둘째는 흔히 주어졌어도 싫지 않았다는 것 정도에 의미를 두고 싶다. 그런 의미의 나에게 환경을 다 떠나 제일 맛있는 음식을 꼽자면, '소울푸드'를 꼽자면 아무래도 나어릴 적 거의 매일 먹던 인도네시아의 나시고렝을 들지 않을까.
코팅된 기름종이에 바나나 잎을 얹어서 손에 올려두고 길바닥 플라스틱 의자에 걸터앉아 먹던 길거리의 나시고렝
떡볶이의 플레이팅은 초록색 마블링 접시여야 한다는 그런 클래식함. 나시고렝은 저런 기름종이에 싸서 줘야 한다는 클래식함이 있다. 사진의 바나나 잎은 정-말 나어릴 때나 그랬고, 적당히 어릴 때는 바나나 잎 뒤의 그 종이에만 싸줬다. 요즘은 스티로폼 용기에 싸주더라.
아무튼 당시(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환율로 한국 돈 5백 원선의 비단 비싼 음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저 유년기의 나에게 흔하게 주어졌고, 먹고 자라났던 그런 음식이기 때문에. 그래도 나는 누가 나시고렝을 욕하면 발끈하지는 않는데 사람마다 태도는 다르니까. 아까부터 발끈에 자꾸 단어를 집중하는데, 지금도 글을 쓰는 순간에도 조금 두렵기 때문이다. 부디 떡볶이를 믿지 못하는 아득한 이교도를 박해하지 마소서.
어쨌든 우리가 흔히 쏘울푸드라 부르는 떡볶이, 치킨 등이 있는데 치킨도 떡볶이 못지않게 나에게 맛있는 음식으로 떠올려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의아하게도 얼마 전 나는 '치킨이 먹고 싶다'라는 말을 했다. 속으로 은연중에 많이 놀랐다. 내가 '치느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 치킨을 소울푸드라고 해서 맞장구를 쳐주는 언어일 뿐이라서.(떡볶이도 그렇게 했어야 하는데), (아니다 떡볶이는 결이 많이 다르다).
내가 치킨을 먹는 일은 식사를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돈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 사람이고, 그런데 고기는 좋아해서. 그런데 직접 구워 먹는 그런 구이집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그래서 고기를 먹고 싶을 때 나에게 대체재처럼 쉽게 주어지고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인 것이지, 집 근처에 스테이크나 갈비찜 같은 걸 치킨과 비슷한 가격에 파는 식당이 있으면 난 치킨 먹을 일이 평생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나는 얼마 전 '치킨이 먹고 싶다'라는 말을 했다. (이 와중에도 떡볶이가 먹고 싶다는 말은 한 번도 안 했다)
나는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라는 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곳에 살면서 김치는 싫어하고 피클과 향신료는 좋아하는 검은 머리(사실 검은 머리도 아닌) 외국인으로 지냈다. 어린 시절 내가 좋아서 자주 먹었던 음식들을 떠올려 보면 위의 언급한 나시고렝(인도네시아식 볶음밥), 스시(그곳은 한식당보다 일식당이 더 보편적이었다), 스테이크(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여느 아케이드나 쇼핑몰 푸드코트에서 보편적으로 팔듯 저렴했다), 그리고 치킨. 치킨? 맞다 사실 나는 원래 치킨을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치킨 프랜차이즈에는 VIP 카드를 발급받아 연회비까지 내면서 할인받아먹었다. 그러던 내가 어느새 치킨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입맛이 바뀌어 어릴 적 좋아하던 음식을 다 싫어하는가 그것도 아닌데. 나는 메뉴가 아닌 '맛'에 대한 추억에 잠겨있는 중인듯하다.
내가 주 1회는 최소 먹었을 A&W 치킨
최근 나는 그 이유를 하나씩 추적해가고 있다. 그것은 서울에서 맛볼 수 없는 내가 어릴 때 먹던 '치킨의 맛'에 있는 듯하다. 나에게 치킨이 변질된 것이다. 왜 그럴까. 나는 그것이 환경, 혹은 조금 허술했던 유통이 만들어낸 '냄새'가 아닐까 생각했다.
회나 해산물을 좋아하는지? 나는 회 중에서도 방어를 참 좋아하는 편이다. 외가가 제주도인지라 겨울철만 되면 방어를 통째로 보내주시기도 한다. 때로 그것을 필레로 손질을 해서 보내주시기도 하는데, 붉은 살이나 배 쪽에서 비린내가 나서 마저 키친타월로 핏대를 제거하고- 붉은 살과 껍질이 붙은 것들을 마저 제거하고, 민물에 한 번 더 씻어내는 등 몇 번의 손질을 직접 더 해서 다시 보관/숙성을 해서 먹는데 같이 드시는 부모님은 내가 유별나다고 한다. 생선에서 바다 냄새가 나야 하는데 너가 손질하면 바다 냄새가 안 난다고. 생선이 원래 비린내가 나는 거 아니냐고. 그러면 나는 조금 정색을 하며 말한다. 손질을 잘못해서 비린 거지 원래 비린 게 어딨냐고.
단언컨대, 신선하고 잘 손질된 신선한 생선에서 비린내는 나지 않는다. 그 비리다는 고등어도 물에서 바로 건져서 회를 처먹으면 산뜻하다. 부모님이 말하는 바다 냄새는 껍질이나 내장, 피가 덜 제거되거나 보관을 잘하지 못하여 나는 산패. 비린내가 맞다.
엄마는 가난했던 제주 시골 사람이다. 근처 바다에서 생선을 잡으면 그걸 손질할 생각도 안 하고 언니 오빠 엄마 아빠 밥때에 맞춰서 한 짐에 둘러메고 동네를 넘고 넘어 집에 오고, 그때야 생선을 꺼내 대충 내장 꺼내고 비늘 긁어서 회로 먹거나, 요리하면 당연 비린내가 날 수밖에. 그때는 위생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었을 테니까. 박테리아니, 균이니. 그런 걱정이 없었을 테니까. 아직도 어릴 적 엄마가 자카르타 동네 길가에 열려있는 망가(망고)나 잠부(구아바)를 툭툭 따서 먹던 게 기억이 난다. 나는 '매연 때문에 중금속이 있을지도 몰라 엄마 내려놔, 약 치지 않아서 이상한 풍토 병원균들이 있을지도 몰라. 저기 저 저 도마뱀 있다. 살모넬라균!' 그래도 엄마는 이런 게 재미라면서 그 작은 키로 나에게 망고를 따게 저 끝에 가지 좀 잡아보라던 것들이 생각난다. 생각해보니 엄마와의 추억은 그런 것들이네 난.
얼마 전 어디서 듣게 된 이야기인데, 과거 80년대 90년 초만 하더라도 정육 유통과 축산업의 환경이 좋지 않아서 그때의 고기에는 누린내가 많이 났다고 했다. 그때 내가 떠오른 것은 인도네시아에서 매년 있었던 이슬람 축제 'Idul Adha'가 떠올랐다. 신에게 산 제물을 바치는 종교 제사에서 기원한 기복 축제인데, 1년에 1번 때가 되면 동네마다 소, 염소 등의 가축을 마을회관/공원 같은 곳에서 도축하여 사람들에게 나누고 노래를 틀고 축제를 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어릴 때 매년 뜬금없이 아침에 뽕짝이 울려 퍼지면 '하는구나!' 싶어서 후다닥 동네 중앙 공원으로 가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도축 현장을 보고 있고, 주변에서는 뽕짝에 맞춰서 블루스를 추는 사람들이 있었다. 음식도 제법 차려져서 뷔페처럼 해놓고- 동네 사람들 아이들이 와서 하나씩 먹고 놀고 그랬다. 아직도 인상 깊었던 놀이는 두 사람이 마주 보고 테니스 공을 이마에 맞대고 둘이 블루스를 노래에 맞춰서 추는 놀이인데, 누가누가 오랫동안 공을 놓치지 않느냐 하는 놀이였던 것 같다.
아무튼 그때 도축 현장에서 맡았던 냄새인데. 고기 누린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그 특유의 냄새가 진동을 했다. 피 냄새, 내장, 이물질의 냄새가 아니라 살과 가죽 사이의 근막에서 나는 듯한 묘한 구릿한 냄새가 있었다. 후에 염소 도축할 때 한번 거들어 본 적이 있는데, 그때 살과 가죽 사이를 칼로 발라낼 때 귤껍질을 깔 때 파바밧 튀는 귤향처럼 누린내가 툭툭 터지던 기억이 난다.
그래. 맞아. 나에게는 이런 기억이 있는 걸 보면 어른들에게도 이런 기억이 있었을 거 같아, 요즘의 나는 매일 신선하고 붉은 고기를 먹고살지만, 과거 어렵던 80년대 시절의 서민들에게 고기라는 것은 연에 한두 번 잔치 때 잡는 염소나 돼지고기를 먹었을 텐데, 그때 그 누린내를 맡으며 한 점 먹던 행복한 고기 맛은 그런 맛이었을 것이다. 피 냄새도, 누린내도 조금 있고, 털도 드문드문 묻은 그런 맛.
김치도 그렇다. 나는 김치도 싫어한다. 어떤 아이는 나를 '김치 싫어하는' 형용사를 붙여 부르기도 한다. 어릴 때 나는 젓갈도 고춧가루도, 배추도 잘 없어서 양배추 비슷한 중국 배추를 절여서 현지 고춧가루를 대충 뿌려서 절여서 먹었던, 겉절이나 피클에 가까운 듯한 것들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1년에 한 번쯤 한국에 친척들 뵈러 갔다 오면서 한 통씩 몰래 싸오던 '진짜' 김치가 있었는데, 그것은 '냄새나!' 하면서 입에도 안 대고- 부모님들은 자식들 눈치 보면서 몰래몰래 꺼내 먹고, 나와 동생은 물에 씻어서 먹거나 찌개로 끓였을 때나 먹거나 그랬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나는 젓갈 냄새가 나는 김치를 먹지 못한다. 군대 김치가 제일 맛있었다.
치킨도 나에게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 감각이 더 예민해진 탓인지, 내가 언제든 만 원짜리 몇 장으로 먹을 수 있는 요즘 서울의 치킨은 너무나 '깨끗한' 맛이 난다. 닭고기의 육향이라고 해야 할까. 황교익 아저씨는 그것이 닭이 작아서 그렇다, 더 키우면 육향이 더 올라온다.라고 했지만, 나는 그런 느낌보다 좀 막 키운 환경의 좀 덜떨어진 유통에서 비롯된 약간의 누린내가 나의 소울이지 않았을까. 그 누린내를 잡으려고 동남아 후추도 팍팍 치고, 칠리소스도 팍팍 묻혀서 먹고. 나는 그런 것에게 소울이 있지 않았을까. 엄마가 말하는 바다 냄새는 이런 게 아닐까.
그렇게 나는 김치 냄새를 좋아하는 어른의 고향의 맛을 이해하게 되고, 비린내 나는 생선을 좋아하는 부모님의 바다 냄새를 이해하게 되고, 떡볶이를 좋아하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의 영혼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떡볶이가 왜 맛이 없는지를 짚어 가면서.
떡볶이 말고 좋은 거 먹으면서 곱게 자라서 그래, 라는 말을 하고 싶겠지만 내 말 듣고 보니 아닌 거 알지? 나도 파리 날리는 아스팔트 길 돌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바나나 잎에 싼 밥 먹고 비닐봉지에 담아주는 콜라를 마시고 살았어. 오히려 나는 너희가 좋아하는 떡볶이 먹어 보지도 못하고, 짜장면 제대로 먹어보지 않고 살아서 함께 살아가는데 나는 한참 모르고 어렵게 사는걸. 그리고 너희가 한편으로 그래도 부럽다고 말하는 그것들을 나는 당장 날아가서 먹을 수도 없는걸.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의 맛을 내어주는 그런 음식점들이 있고. 그것이 떡볶이집이고 그것이 거기에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조금 더 지금 행복한 사람들이 많이 부럽다.
** 지금부터 본론
'맛집'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싫은 단어들 있지 않은가 사람마다? 그냥 싫은 단어인데 굳이 그 단어를 써야만 하는 그런 단어들이 싫다. 대표적으로 '맛집' 혹은 '버스킹'. 버스킹은 구걸이 어원임에도 그것을 자랑하듯 태그 하는 그런 것들이 맘에 안 들고, 맛집은 맛만 따라다니는 천박함이 느껴져서 그냥 싫다. 천박이라는 말도 싫어하는데 그 싫은 단어가 느껴지는 단어라서 더 싫다.
맛집은 누군가 추천해 주는 것으로, 나의 기준이 결여되어 있음으로부터 시작되어서 싫다. 그냥 감자탕 잘하는데 추천해 줄게. 맛있었던 곳 추천해 줄게. 이렇게 말하지 나는 맛집 알려줄게, 맛집이야?라는 말을 일체 쓰지 않는다. 당신이 나에 대해서 뭘 알아. 함부로 '맛'이라는 단어 꺼내지 마. 그런데도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단어라서 때에 따라 써야 하는 것들이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떡볶이집 하나 추천해보는데 길게도 썼다. 사실 이런 집은 어디에도 소개해 주고 싶지 않다. 나는 이 글이 어디에 소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만 알고 나만 가서 편하게 먹고 싶다. 그런데 나를 깨워준 감사에 돈으로 혼내주자는 생각과, '나를 물어뜯는 하이에나들은 과연 얼마나 떡볶이 같은 떡볶이를 먹고 있었니'를 묻고 싶은 마음에. 소개한다. 구로디지털단지역 인근의 떡볶이집. '입춘'. 봄을 좋아한다면, 떡볶이를 먹고 봄이 오는 듯한 기분이다.
이제 드디어 말한다. 나는 왜 떡볶이를 맛없는 음식이라고 했을까. 분명 맛있게 먹은 기억도 있는데. 왜 나는 돈 주고 사 먹지를 않지 이 소울푸드라고 하는 것을? 물론 내가 유년기 때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대학을 다닐 때 친구들과 어울리면 서 몇 번 먹었었는데. 그때의 맛이 좋지 않았던가. 맞다 좋지 않았다. 떡볶이가 항상 맛이 없었다. 내 입맛이 이상한 걸지도. 그래도 나에게 좋았던, 맛있게 소스까지 긁어먹었던 떡볶이의 특징을 몇 가지 떠올렸고, 그 기억을 따라서 몇 가지 정리를 해 보았다.
첫 번째. '국물 떡볶이'라 명시한 것이 아니라면
떡볶이 접시를 흔들었을 때 국물이 찰랑찰랑 흔들려선 아니 되며,
둘째. 떡볶이 양념 색이 주황색이 아닌 고추장처럼 짙은 검 붉은색이어야 하며,
셋째. 떡을 들었을 때 떡의 흰 살이 보여서는 아니 되며,
넷째. 양 끝을 어슷 썬 듯한 새끼손가락만 한 싸구려 떡은 밀/쌀을 불문하고 사용해선 아니 된다. 떡볶이의 주인공은 '떡'이어야 한다. (이건 대학교 4년 등교 내내 거의 종로 3가 떡을 사 먹어서 떡에 대한 기준이 높아서 그런 건 같다)
이런 기준을 가지고 나는 '떡볶이 맛집' 이 아닌 인터넷에 '떡볶이'라는 이미지만 검색하여 수만 장의 사진 속에 저 조건에 부합해 보이는 떡볶이를 찾아냈다. 변태스럽고 재수 없지만 이것이 나의 '맛집'이라는 것을 찾는 방법이다. 그 단어에만 의존하며 뭘 먹을지 필사적 의지도 없으면서,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어디 어디 맛집'이라는 몇 글자로 찾아지고 구전되는데, 나는 그것이 주방의 오랜 정성과 노력이 담긴 작품을 한 단어로 퉁치는 것 같아서 괘씸하다. 마음에 안 든다. 노력 없는 한탕.
그리하여 찾게 된 이 집. 나의 모든 기준에 합격 또 합격 이상이며, 나의 기준이 오히려 사소해 보였다.
구로 디지털단지역 인근 '입춘'
깔 수 있는 게 없다. 맛. 재료. 위생. 가격. 구성. 메뉴. 나는 무엇 하나 이 떡볶이 가게에 평가를 할 수 없다. 무엇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다. 그저 조금 아쉽다면 맥주를 테라만 판다는 점 정도. 그건 내 취향이니까. 하*트진* 주류회사를 다니는 한 주당 친구가 있는데, 그의 취향은 맥주의 최고 안주는 떡볶이 x 튀김이라고 했는데, 그 말에 나는 몹시 공감한다. 맥주나 하이볼과도 몹시 잘 어울린다. 정말 말 그대로 '마리아주'가 훌륭하다. 너무나도 한국스러운 메뉴인 떡볶이 앞에 마리아쥬라는 단어까지 쓸 줄은 몰랐다.
가게의 떡과 재료가 모두 소진되면 그날 장사는 끝나니, 인스타그램을 꼭 확인해보고 방문하자!
이곳이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세상은 넓고 넓으니까. 그저 나는 이 가게에 대한 평가를 감히 할 수 없다는 정도. 유튜브/커뮤니티 사이트에 서울 3대 떡볶이 몇 대 떡볶이 이런 말들이 그저 우습다. 이곳을 맛보고 나니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우습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 글을 씀으로써 이 집에 줄이 길어질까 봐 나는 아직도 고민이지만. 나에게 '떡볶이가 맛이 없다고? Try Try!'를 외치던 친구들이 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써본다.
이 글을 장황하게 쓰고도, 저 훌륭한 떡볶이 가게를 소개하고도, 여전히 나에게 떡볶이는 맛없는 음식이다.
내 주변에서는 여전히 말 그대로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 근본의 근본도 없는 맛없는(개인적으로) 떡볶이를 팔고 있으며, 시장 떡볶이가 아닌 이상 쓸데없이 비싸며, 떡'볶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아이들이 넘친다. (예전 떡국에 관해서 포스팅할 때 말했지만, 대다수의 떡볶이는 떡국에 가깝다). 그래서 어찌 봐도 정이 가지를 않는다. 이건 아마 오래오래 변치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특정한 가게나 특징을 가진 떡볶이가 아닌 이상 떡볶이는 입맛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그저 싫어하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 떡볶이는 분명한 '소울푸드'이니까. 그 소울은 이곳의 사람들이 만들었으니까. 잠시 있다 갈 것만 같은 나는 이곳을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해야 할 텐데. 하고 싶은데. 이곳에는 각자가 사랑하는 각자의 소중한 시간들이 만들어낸 떡볶이들이 있을 테니까. 너에게 떡볶이는 무슨 의미였던 건지. 넌 왜 끝끝내 그 떡볶이집을 말해주지 않았는지.
나도 이곳에 추억과 사랑이 쌓여서 떡볶이를 사랑하고 싶다.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다. 떡볶이의 재료와 형태 그런 것들을 떠나서,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어떤 모양이라도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모습이라도 내가 사랑하는 것처럼. 언제든 서울 한복판 어디에서도 감동적인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구해줘.
떡볶이를 싫어하는 이런 사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