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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SJ Jun 21. 2020

어학연수 1년, 스페인어 얼마나 늘 수 있을까?

거의 알파벳만 아는 수준으로 재시작했던 스페인어



스페인에 온 지 만 2년이 됐다. 10대 이후로 인생에 이렇게 긴 방학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알차다면 알차게 부족하다면 부족하게 보낸 2년이었다


“어학연수를 떠날 때 6개월은 부족하다. 1년은 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해서 영어 학습을 위해 많은 학생들이 1년간 어학연수를 떠나곤 하는데, 영어보다 열 배는 생소한 스페인어는 사실 1년으로는 다소 부족하다. -물론 이미 스페인어를 공부했거나 전공생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어떤 시점에 도달했을 때 내 스페인 실력은 어땠었는지, 지난 2년간을 기억할 겸 어학연수를 고민하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나의 스페인어 이야기 오늘은 처음부터 1년까지의 이야기



첫 수업 날




처음 스페인어 수업에 간 날을 기억한다. 수업이 시작되기 4일 전에 입국해 새로운 환경에 조금씩 적응해가던 날이었다. 집에서 어학원까지는 도어 투 도어로 걸어서 약 15분 거리. 조금 속도를 내 걸어가면 10분 거리로 무척 가까운 곳이었다


첫날은 절대 지각하면 안 된다며 일치감치 나왔더니 20분이나 일찍 도착해버렸다. 바디랭귀지 소통으로 찾아간 교실은 텅 비어 있었다. 의지가 화르륵 불타오르던 날이었으나 수업 시작 5  되지 않아 찬물 맞은  사그라들었다



늘 일찍 교실에 와서 그림을 그리던 라이언



7년 전에 종로의 한 스페인 어학원에서 그래도 3개월 정도 수업을 들은 덕에 얼핏 기억이 나는 단어들이 칠판을 채웠다. 지금 어떤 걸 가르치고 있는지는 대략 짐작이 됐다. 문제는 그걸 설명하는 선생님의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스페인어를 ‘한글로’ 배워서 “이건 스페인어로 뭐라고 하나요?”, “다시 한번 얘기해주실래요?” 이런 기본적인 말도 스페인어로 할 줄 몰랐다


결국 5명의 이탈리아 친구들과 함께하는 수업에서 나는 늘 카오스 상태였다. 내 얼굴이 점점 굳어갈 때면 친구들이 영어로 살짝 귀띔을 해주곤 했지만, 때로는 영어로 설명을 해 줘도 못 알아 들었다


학원마다, 그리고 강사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스페인에서의 스페인어 수업은 거진 ‘스페인어’로 진행된다. 알파벳부터 시작하는 학생들에게는 다소 당황스럽겠지만 선생님들은 각종 시각 자료와 경험을 활용하여 어떻게든 학습을 시켜 나간다. 이 때는 이 체제가 그저 힘들기만 했는데, 반년 정도 지나니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보는 것보다 스페인어로 설명을 듣는 게 더 이해가 잘 되기 시작했었다


나의 텅 비어있는 스페인어 실력 때문에 선생님들이 어떻게 알려줘야 하나 당황한 적도 제법 있었는데, 그럴 때는 역시 친구들이 우리를 살려줬고, 친구들마저 없을 때는 구글이 우릴 살려줬다



수업 첫 달



참 열심히 공부했다. 사실 수업이 끝나고 내용을 복습하고 추가로 공부하지 않으면 도저히 수업을 따라갈 수 없었기에, 열심히 공부를  수밖에 없었다. 처음 1주는 수업 내용의 10% 정도나 알아들을까 말까 했는데 꾸준히 공부를 하니 월말에는 30% 정도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몇몇 학생들이 복사하거나 사진을 찍어갔던 나의 필기물



그래도 주어에 따라 동사 구조가 바뀌는 건 도저히 익숙해지지도 외워지지도 않았다. 시제도 너무 많고 불규칙하게 변하는 동사도 많았다


Indefinido(스페인어 동사에는 과거 시점을 얘기하기 위한 동사 구조가 네 가지나 있다. 이건 그중 특정 시점 과거 액션을 표현하기 위한 동사 형태이다)를 배운 날은 정말 최악이었다. 이제 스페인어가 조금 익숙해지려고 하니 다시 저 앞으로 달아나 버렸다


결국 하루는 마음을 다잡고 카페에 앉아 동사 유형을 총정리해봤다. 3pt 정도 될까 싶은 크기로 글씨를 적으니 겨우 한 장에 다 들어갔다. 이제 수업 중에 헷갈릴 때는 이 한 장만 보면 된다고 생각하니 뿌듯했다. 이후 반여년동안 이 종이는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그리고 그쯤 또 다른 동사 변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7주 차
이 정도 내용을 완벽히 해석하고 이해하려면 2-3시간이 걸렸다



스페인어를 비롯해 유럽에서는 보통 언어 레벨이 A1부터 C2까지 6개 레벨로 나눠진다. A1는 알파벳부터 배우는 입문 레벨, C2는 전문 분야에의 대화도 문제없이 가능한 네이티브 레벨이다


나는 A2부터 반을 시작했는데 한 달간 열심히 한 덕분인지 한 달 뒤 B1 반으로 올라갔다. B1로 올라가니 공부해야 할 내용도 배로 많아졌지만, 그저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매일 서너 시간은 공부했다. 내용을 거의 상상해가며 읽은 지문은 수업 후 집에서 천천히 단어를 찾아가며 다시 해석해보면 완전히 다른 내용이었다






수업과 관련한 공부 외에도 뭔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림을 그리면서 한글과 스페인어를 함께 적었다. 물론 지금 다시 보면 틀린 단어나 문법을 쓴 경우가 잦다 (웃음)



나의 또 다른 선생님들




수업에서 몇 번을 들어도 이해가 안 되는 표현이 있을 때는 같이 사는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가끔은 학원 선생님보다 룸메이트들이 해주는 설명이 더 명쾌하고 쉬웠다. 특히 Agustin은 정말 깔끔하게 내용을 알려주곤 해서 한 번은 “야... 네가 진짜 선생보다 설명 잘해. 스페인어 선생 해도 될 거 같아!”라고 말했다


Agustin과 Jose는 영어도 잘해서 초반에는 스페인어보다 영어로 얘기를 할 때가 더 많았다. 반면 루마니아에서 온 Olga는 영어 소통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스페인어로 얘기를 해야 했다. ‘공동물품 구입을 위해 주기적으로 돈을 걷는다는 것’을 전하기 위해 하루는 Olga가 같은 문장을 네 번이나 천천히, 또박또박 얘기해 줬다. 물론 바디랭귀지도 함께 말이다. 구글 번역기로 쉽게 얘기할 수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내가 스페인어를 습득할 수 있게 Olga는 늘 나에게 쉬운 단어로 천천히 말을 걸어줬다. 반년 정도 지난 어느 날, 보통 속도로 말을 해도 알아듣고 대답하는 나를 보며 Olga는 진심 어린 표정으로 감탄하고 칭찬해줬다. 정말이지 그 날을 잊을 수가 없다. -물론 그날도 그녀는 쉬운 문장으로 말을 걸어주긴 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고
다 한께 모여 크리스마스 파티


내 첫 어학원은 선생도 학생도 많지 않은 소규모 학원이었다. 그에 따른 장점도 단점도 있지만, 나는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특히 사람들과 더 친근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게 최고의 장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이건 어떤 선생과 학생들을 만나느냐에 따라 엄청 달라지지만- 특히 이 어학원은 쉬는 시간에도 ‘스페인어로 얘기하는 것’을 엄청 권유했은데 그 덕분에 학생들과도 조금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모국어나 영어로 자유롭게 떠드는 분위기가 되면 결국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몰려다니게 된다-


그렇게 이 어학원에서 다양한 국가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보통 유럽에서 온 아이들은 2-3주 정도 짧게 스페인어를 배우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내 친구들은 대부분 6개월 이상 장기로 거주하는 케이스였어서 더없이 좋았다


한국인 친구도 한 명 사귀었다. 미아와 나는 취향도 비슷한 부분이 많고 나이도 상황도 비슷한 면이 많아서 금세 친해졌다. 둘만 있을 때도 가능한 스페인어로만 대화하는 우리를 보며 선생님들이 대견스러워할 때도, 그저 신기해할 때도 있었다. 처음에는 둘 다 더듬더듬 헤매며 대화를 했던 때를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어학연수를 가면 한국 사람은 마주치지도 말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난다면 꼭 대화해보라고, 그 사람은 아주 귀한 사람일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우르르 놀러 다니는 것은 비추천한다-



금방 찾아온 일 년



그 뒤 5개월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처음 6개월이 -제로에서 시작한 덕분에- 매주 조금씩 성장이 느껴졌다면 후반전은 ‘이거 왜 해도 해도 모르겠지. 나 바본가’라는 생각이 들 때다. 특히 딸리는 어휘력과 같은 단어를 백번을 봐도 까먹는 자신의 뇌를 자책하게 된다. 여기서 그저 좌절하지 말고 꾸준히 공부를 하면 스페인어 실력은 모르는 새에 조금씩 쌓여갈 것이다



요약해보자면


-제로에서 시작한다는 상황을 사정할 때- ‘한달살이’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스페인 한달살이를 하면서 어학원도 다니는 케이스를 가끔 보았다.  이면 아마 슈퍼에서 장 보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등의 활동이 가능해지는 레벨이 아닐까 싶다


일상 회화가 어느 정도 가능하려면 최소한 6개월은 연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왜냐면 6개월이면 문법은 다 뗄 수 있다) 이때부터의 레벨 차이는 결국 어휘와의 싸움이지 않나 싶다. 참고로 나는 지금도 어휘는 딸린다. 문법은.... 한국 사람은 정말 문법은 기가 막히게 빨리 익힌다


1이 되어도 어휘력에는 문제가 있지만, 1년간 스페인에 살면서 들은 단어들, 문장들이 있기에 기본적인 어휘들은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 특히 특정 분야에 대한 경험이 있다면 그 분야의 어휘는 더욱 익숙해진다. 예를 들면 나는 병원, 외상과 관련된 단어는 매우 친숙해져 버렸다. -다시는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다음 글에서는 1년에서 2년까지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기록할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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