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SJ May 08. 2021

스페인어로 듣는 마케팅 수업이란

한국과는 조금 다른, 스페인 수업 분위기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마케팅 수업이 시작됐다. 올해 1월에 신청했던 이 수업은 2월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수업이 시작하기 며칠 전 '교육과정이 연기되었습니다'라는 메일이 왔고, 그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하며 수업은 하염없이 미뤄졌다


이미 인터뷰와 시험까지 보고 합격한 수업이 그저 계속 미뤄지는 건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처음 메일을 받았을 때는 "아, 코로나 때문에 조금 미뤄졌나 봐"하고 생각했지만 몇 번 반복되자 학교에서 메일이 오면 열어보기도 전에 화부터 났고, 나중에는 그냥 '그려려니' 모드가 되었다


그래서 2개월이 지연되고 곧 수업이 시작될 것이라는 안내 메일을 받았을 때는 학교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진짜 이 날짜에 시작되나요?" -"그럼요. 거의 확정이에요. 이제 수업을 시작할 수 있는 학생이 충분히 채워졌어요". '거의'라는 단어가 살짝 거슬렸지만 나는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고, 며칠 뒤 또다시 지연 안내 메일을 받았다. 뭐 어쩔 수 없지. 여긴 한국이 아니고 스페인이니깐....





그런 장황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마케팅 수업이 드디어 시작되는 것이었다. 기대되는 마음이 가득했지만 그만큼 걱정되는 마음도 있었다. '수업내용 잘 알아들을 수 있을까....' 스페인에 2년 넘게 살았지만, 스페인어 시험도 합격했지만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수업 내용을 알아듣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가끔 무슨 말을 했는지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했을 때도 있었지만 수업을 쫓아가는 데에 문제는 없었다. 사실 이건 내 스페인어 실력 덕분이라기보다는 수업 콘텐츠가 이미 내가 아는 기본적인 내용이기 때문일 것이다


수업 첫날에는 진도를 나가지 않고 오리엔테이션과 자기소개만 했는데-열명 남짓한 학생이 자기소개를 하는 데에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역시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스페인 사람들....!- 대부분의 학생들이 경력자였다. 디지털 마케팅에는 경험이 없을지라도 자기 사업을 했다던지, 오프라인 마케팅 영역에서 일을 했다던지, 광고영업을 했다던지.... 무튼 최소한 경력은 없더라도 이 분야를 대학에서 전공하거나 여러 교육을 들은 케이스였다 '와 대박.... 대박 좋아!' 산세바스티안에서 지인이 거의 없는 나에게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수업이 되었다. 그전에 가지고 있던 기대감보다 기대치도 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수업 이틀 차부터 그 기대치는 조금 낮아졌다. 수업 콘텐츠가 너무 베이식하다고 느꼈기 때문. 뭐,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한국어로 알고 있던 내용을 스페인어로 다시 듣는 건 꽤나 신선한 일이다. 무엇보다 마케팅 용어(주로 영어단어)를 스페인에서는 어떻게 발음하는지 알게 되는 경험은 매우 신선한다. 예를 들어 지아이에프(gif)를 /기프/로 발음한다던지, 배너(banner)를 /바네르/라고 발음한다던지, 이런 것들이다





비록 언덕길을 올라 학교 건물에 도착해, 또 4층에 있는 강의실까지 헉헉거리며 올라가야 하지만 강의실에서 보는 산세바스티안 뷰도 무척 멋지다. 수업과는 별개로 나를 즐겁게 만드는 요소.






오늘로 마케팅 수업이 시작된 지 딱 2주가 되었다. 수업을 들으며 한국의 강의와 굉장한 차이를 발견했는데 '학생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가'에 관한 것이다. (지금은 다를 수도 있지만)조용히 수업을 따라가고 열심히 필기를 하고, 교수나 선생이 얘기하는 소리만이 강의실을 채우는 한국의 수업과는 다르게 이곳의 수업은 학생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그게 어느 정도냐하면 수업시간이 2시간이면 1시간은(혹은 그 이상) 거의 학생들이 의견을 내고, 서로 질문을 하고 답을 하는 시간이다. 교수가 '자, 그룹별로 이 주제에 대해 얘기해보세요'라고 한 것도 아니다. 그저 교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고, 한 학생이 그 내용과 관련해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여기저기서 본인의 의견이나 경험을 얘기한다. 한 명씩 차례를 기다리며 얘기하는 것도 아니다. 두세명 이상이 동시에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하고, 그럼 강의실은 카오스가 된다. 정확히는 나만 '카오스'라고 느낄 뿐 그들에게는 다분히 일반적인 일이다 -여러 명이 여기저기서 얘기를 하게 되면 나는 단 한 명의 말소리도 제대로 들을 수 없게 되어서 카오스라고 느끼게 된다-


새로운 일상, 익숙한 내용, 하지만 신기한 경험. 남은 두 달간의 여정이 기대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3월, 봄이 오다. 꽃이 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