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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ne Sep 17. 2019

너와 나의 나이는 의미 없다.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 옛 말에 따르면

조선 전기 문신 박세무와 민제인이 아동의 학습을 위해 저술한 『동몽선습』에 보면 이러한 구절이 있다.

'나이가 열 살이 많으면 형을 섬기는 도리로 섬기고, 나이가 다섯 살이 많으면 어깨 폭만큼 뒤쳐져 따라가니...'

위로 다섯은 친구다.


'망년지우[忘年之友]'란 사자성어가 있는데 그 뜻은 나이에 거리끼지 않고 허물없이 사귄 벗을 일컫는다.

망년지우가 성립하는 나이를 재일작가 윤학준 교수는 본인의 저서『양반』에서 상팔하팔(上八下八)이라 말했다. 위로 여덟, 아래로 여덟은 친구다.


조선시대 최고의 베스트 프렌드 '오성과 한음'의 이항복과 이덕형은 22세, 17세 때 만나 우정을 나누었다. 임진왜란의 영웅 류성룡과 이순신은 세 살 차이였으나 오랜 우정을 나눈 사이다. 더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라 시대의 김유신과 김춘추는 일곱 살이나 차이가 났었다.


■ 그런데... 왜..?

(출처 : SBS)

한국의 나이에 따른 서열 문화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있다.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은 '학령제' 도입이라고 본다. 특정한 나이에 학교에 입학하며 또래 집단을 형성하는 것이 서열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해외는 대체적으로 혼합 연령 집단이 많이 형성된다. 정식 학교에 입학 전 유치원 때 5세~7세가 함께 교육받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항상 나이를 구분하여 교육한다. 실제로 5세~7세의 아동을 모아두면 이미 '나이'로 구분된 아동들은 동일하게 나이로 서열을 나눈다. 그 외에도 군사정권의 폐해, 6.25 피난 당시, 신분제 폐지에 따른 영향 등 다양한 의견이 있다.


우리는 사회에서 나이를 통해서 서로를 구분 짓는다. 

나이가 많으면 형이고, 적으면 동생이고.

형은 윗사람이고, 동생은 아랫사람이고.

심지어, '빠른 년생'이라는 복잡한 변수까지 더해진다.


※인터넷에서 본 빠른 년생의 경험담

- 군대에서 빠른 XX년생이라고 했더니 네가 그렇게 빠르냐며 연병장 돌인 선임이 생각난다.

- 소개팅 때 빠른 년생이라 원래 나이를 이야기했더니 어려 보이고 싶냐고..

- 나이 이야기하기 싫어서 학번으로 이야기했더니 언니 혹은 형 취급받으려고 한다고...


이러한 나이에 따른 서열문화가 가져오는 폐단은 다양할 것이다. 허나, 가장 아쉬운 것은 세상에 다양한 '친구 후보'들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나이가 어렸던 나는 경험에서 배웠다.

실제로 나는 나이가 많은 친구가 여럿 있다. 그들에게 이름을 부른다. 존대하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한다. 정말 그냥 친구처럼.


또, 나는 낯선 사람에게 존대가 편하다. 나보다 나이가 많건 적건 존대하는 게 습관이다. 쉽게 말을 편하게 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누가 나를 어리다는 이유로 편하게 대하는 게 그냥 불편했으니까.


관계에서 나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은 군대에 있을 때 배웠던 것 같다. 군에서 운이 좋게 꽤나 좋은 부대에서 근무를 했었다. 그 부대는 전국에 '똑똑이'들만 모아놓은 부대였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 출신들을 비롯해서 석사는 기본이요, 해외 유학파도 정말 많았다. 


딱히 뒷 배경이 있던 건 아닌데 정말 운이 좋게 그 부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부대에 똑똑이들은 나이가 많았다. 석사를 마치고 온 병사들은 서른에 가까웠고, 평균적으로 스물다섯에 수렴했다. 당시 나는 스물한 살,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바로 입대했었다. 

나는 군대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내 위로 선임들은 당연히 윗사람이고, 내 동기들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함께 많은 고통을 공유하며 가족처럼 끈끈했다. 또 아래로 들어오는 후임들도 당연히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런데, 군대라는 조직이 정말 묘하게도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또, 그들이 사회에서 무엇을 했고 얼마나 똑똑한지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단언컨대, 아마 사회에서 가장 평등한 집단이 군 내 사병조직일 것이다. 


그들의 위계는 단순히 '먼저 왔는가'로 정해진다. 소위 말하는 군번인데 몇 년도 몇 월에 입대했는지로 구분 지어진다. (해병대는 기수가 있고, 월 단위가 아니라 주 단위로 구분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얼마나 평등한가? 가장 단순한 기준으로 평등을 실현했다. 


자연스럽게 '나이'가 크게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으며 군 생활을 마쳤다. 그리고 나는 군에서 선임과 후임들 몇 명과 친구를 맺었다. 그리고 그 우정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한 명은 대학 교수가 되었고, 한 명은 해외에서 유명한 기업 사냥꾼이다.) 우정의 원천은 '서로 배우고, 서로 좋아하는 것이 같으니 어찌 친구라 부르지 못하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국방부의 시계는 느리지만 흘러갔다.

나도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그들도 나에게 배웠다. 같은 관심사, 취미를 공유하며 시간이 멈춘 부대에서 많은 의견을 나눴다. 그리고 우리의 시간이 다시 흐를 무렵 우리는 서로에게 친구가 되었다.


전역 후 대학에 복학하면 모든 복학생이 느꼈던 '어색함'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2년 간 사회에 벗어난 사람이 적응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적응기를 올바르게 보내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타인에 대한 존중'이었다. 누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존대하며, 낯선 이를 존중했다. 

복학생에게 학교와 관계는 정~말 어렵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 익숙해지고 나서도 버릇이 남아 몇몇 후배들이 '편하게 반말 좀 하세요.'라고 이야기해도 존대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걔 중에 몇몇은 내 입에서 반말이 나오기를 유도하는 내기를 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휴학 없이 칼 같이 복학하고, 졸업하기 전에 운이 좋게 직장을 잡게 되었다. 처음 연수원에 들어가 보니 다들 '군대는 다녀왔냐.', '남자 신입치고 너무 어리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당시에도 스물다섯의 남자 신입사원은 쉽게 볼 수 없는 존재였다. 


신입 시절이야 전부 선배고, 상사니 크게 불편함이 없었는데 문제는 후배들이 항상 나이가 많았다. 심지어 지금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신입사원 입사하곤 한다. (요즘 남자의 경우 30~31살도 흔하게 보인다.)


대학에서 단련된 존대와 군대에서 배운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직급은 나보다 낮고, 함께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을 불편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거창하지만, 단순하다. 존중하는 것.) 통해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많건 적건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에 나와는 나이가 다른, 그러나 나와 '딱 맞는 친구'를 사귀어 보는 것은 어떨까?


+ 요즘은 계산하면 형이라던데.

+ 나이를 뛰어넘어 친구는 사귀지만 이성 간 친구에 관한 문제는 아직 모르겠다. 연애가 아닌 이성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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