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휘둘리는 상태
풍요 속 빈곤이라는 말을 달고 산 적이 있다.
부르면 나올 사람도 많고, 연락하는 사람도 많고,
다다음주면 한국을 떠서 아주 흥미로운 여행을 갈 준비도 되어있다.
이번 달은 삶이 꽉 채워져 있다. 사람도 경험도 풍요로운 한 달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외롭다.
마치 빽빽하게 짜놓은 스케줄을 피곤에 쫓겨 소화하는 연예인처럼,
내가 세운 계획들이 벅차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 전혀 의미를 찾지 못하겠다.
기간제 베스트프렌드(남자 친구)를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다수의 인물을 삶에 등장시킨 것이
아무래도 맞지 않는 모양이다.
하나의 인물이 담당했던 진하고 깊은 감정의 안식처가 분산되었다.
분산된 감정의 굴들은 안식처가 아니라 그저 일시적인 도피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정작 의지하고 속이야기를 털어놓을 곳은 이곳이다.
문득 생각이 많아지는 밤에는 이렇게 글을 쓴다.
외로움? 공허함? 허탈함? 그리움?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어떤 단어로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으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렇게라도 털어놓을 공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내 감정에 관한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의 순기능은 정리가 된다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이 찝찝함을 어떠한 것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감정의 근원은 정리가 됐다.
꽉 찬 삶에서 나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단 것,
타인의 관심과 연락에 취해 정작 내가 해야 할 일에 소홀했던 것.
외유내유, 속도 겉도 다 물렁해진 상태에서는 감정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