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치고 장구치고 다하는 중, 아는만큼 보이고 아는만큼 이해한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줄 곧 무대 위에 오르는 퍼포먼서였다.
무용수로서, 배우로서, MC로서 무대에 오르는 것은 익숙한 일이다.
그랬던 내가 올해 3월부터는 문화예술기획자로서 사업자를 내고 일을 하고 있다.
올해 5월, 사업자를 내고 만났던 협력업체들이 어린이 오페라 공연 기획소식을 접했고 그들은 내게 해설 역할을 부탁했다.
8월 말 공연이기에 시간이 아직 있었고, 무대에서는건 너무 익숙하니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수락했다.
어랏 근데, 5월이 지나고, 6월이 지나고 7월이 지났는데 공연에 대한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 기간 동안 음악편집, 성악가 선생님들의 합 등을 연습하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D-10
나는 광복절 즈음, 대본을 전달받고 부랴부랴 첫 연습을 참여했다.
공연까지는 한 10일정도가 남아 있었다.
연출님은 어린이극인만큼 내게 구연동화식의 해설을 부탁했다.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현재 초등학교에 출강을 나가서 구연동화급의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고,
5살 6살 조카들 놀아주는 것도 어느정도 익숙하기에.
오, 그런데? 첫 연습에서 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고난1. 내가 대본을 읽은 텐션이 연출이 느끼기에 턱없이 낮았다.
억텐(억지텐션)을 끌어올려봤지만,
처음보는 성악가선생님들과 낯선환경에서 텐션이 끌어올려지지가 않았다. 속상했다.
고난2. 이미 짜여진 음악들에 내 대사를 끼워맞추는 작업이기에, 시간의 오차가 허용되지 않았다.
즉 나는 반드시 그 시간 안에 대사를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오페라 음악이며, 대사며, 숙지가 덜 된 상태에서 그것이 가능할리가 없었다.
더욱 멘붕인 것은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연습이 끝나있던 것이다. NG는 나만내고 있던 것.
무용수, 배우생활을 하면서 단 한번도 NG로 스텝들 속 썩인 적이 없었는데, 자괴감이 밀려왔다.
게다가, 고난3. 무대위에서 동화의 요정으로서 5분이 넘는 시간을 애드립으로 끌어야 한다는 것.
요술봉을 들고 춤을 춰야 하나, 대사를 더 넣어 연기를 해야 하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연습이 끝나있었기에,
공연 D-10일 시점에서 연습은 하루에 2시간씩 띄엄띄엄 4일간 이뤄졌다.
D-1
드레스 리허설, 드레스가 상당히 길고 무거워 계속 밟히고 신경이 쓰였다.
공연하면서 별의별 옷을 다입어봤는데,
이런 거추장스러운 옷을 너무 오랜만에 입어봐서 그런지 잘 적응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연습때 피아노로 듣다가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무대 위에서 듣는 음악은 더욱 낯설어 타이밍을 놓치기 일수였다.
리허설에서도 NG를 내가며 무대위에서 표정이 썩어가는 나,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연출님, 대표님의 속이 타들어갔다.
연출님은 답답하셨는지 무대 위에서 잔뜩 긴장하고 쫄아있는 나를 향해 혼내듯 소리치셨다.
한편으로는 공연관계자들이 원망스럽기도했다. ('아니 그럴거면~~~' 이라고 속으로 마구 생각했지만 입밖으로 내뱉지 못하게 나를 말린 나의 이성 칭찬한다.) 근데 또 한편으로 제작진 입장에서 생각이 드니 이해 못할 것도 아니었다.
리허설이 끝나고 연출님이 나를 찾았다. 잔뜩 속상하지만 티를 내지 않고 있지만 그것이 티가 안날리가 없었던 나를 향해 연출님은 “너무 갇혀있지 말고 너 맘대로 해. 틀려도 좋아 자신감만 있게 해.”라고 말씀하셨다. 뿌뿌뿌. 나는 그 말을 좋아한다. "너 마음대로 해"
무언가 나를 가둔다는 느낌이 들면 갑자기 몸이 굳는 느낌이다.
그 요구에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면서 긴장으로 마구 몸이 뻣뻣해진다.
연출님의 마법같은 그 말은 정말로 내 긴장을 사라지게 했다.
리허설이 끝나고 집에가니 11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도무지 더 대본을 보고 연습할 힘은 없어서,
다음날 10시 분장콜에 맞춰가기 위해 대략적인 짐을 싸고 잠들었다.
D-DAY.
물러날 곳은 없다. 이젠 살기 혹은 죽음뿐이다라는 비장한 각오였다.
분장받으면서도 마이크를 차면서도 대본과 요술봉을 놓치 않았다. 너네는 나와 한 몸이다. 공연이 어땠냐고? 실수 없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비결을 공유하자면 나의 실수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아니고 그것)을 본 음악코치님과 성악가 선생님들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대사 칠 타이밍을 돌아가면서 내게 알려주셨다. 공연이 끝나고 진짜 얼마나 많은 소주와 맥주를 마셨는지 모르겠다. 후련함에 들이붓는 소맥은 언제나 맛있달까☆
공연이 끝나고 느꼈던 바를 간단하게 정리하려 한다.
첫째, 가끔은 단체생활도 좋다. 개인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혼자 일하는게 익숙했던 나는 정말 오랜만에 협업의 즐거움을 맛봤다. 공연 자체가 혼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작업이다. 무대 위 크루들, 무대 아래 스텝들, 심지어 제작진들과도 호흡이 맞아야 공연이 굴러갈 수가 있다. 나는 이번 공연끝까지 음악을 정확히 숙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사 타이밍을 맞출 수 있었 던 것은 성악가 선생님들과 음악코치님의 케어덕분이다. 나도 뭔가 도움을 드릴 수 있으면 좋았으련만 내가 어떤 도움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공연이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감사를 드릴 수 있어서 좋았고, 서로 잘했다며 다독이는 분위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단체로 일하는 것의 장점을 마구 흡수하고 온 날이다.
둘째, 커튼 콜보다, 공연 후의 포토타임의 울림이 더욱 셌다. 이건 개인적인 느낌이다. 무대에 오랜만에 선 탓인지, 지금 내 위치가 바뀐 탓인지 예전과는 다른 울림이 전해졌다. 원래 나는 공연 후 커튼콜에서 관객들의 박수를 받을 때 가장 기쁘고 웅장한 마음을 느꼈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커튼콜보다는 공연 후 포토존에 섰을 때 더욱 뿌듯하고 엔돌핀이 돌았다. 이 극은 어린이극이기에 포토존에는 당연히 부모님의 손을 잡고 길게 늘어선 아이들의 줄이 있었다. 그들의 눈망울은 정말 빛났다. 곧장 우리에게 달려와 안기는 아이부터 우리와 사진을 찍으려 한시간 가까이를 기다린 아이까지 그들의 설렘과 기대를 어느정도 충족시켜줬다는 사실이 기뻤다. 무엇보다 문화예술콘텐츠 기획자로서 그런 눈빛을 보고 있자니, 아 이 맛에 공연기획하는구나 라는 것을 온 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실은 그동안 몇개의 공연을 기획하면서 내가 이걸 왜하고 있지, 이 콘텐츠가 세상에 나와서 무슨 쓸모를 가질까 등 철학적인 고민을 계속 해왔다. 그러나 그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고 있자니 그런 고민에 대한 답이 차올랐달까.
셋째, 조조형 연출vs유비형 연출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자존심도 많이 상하고, 속상한 것이 많아 속으로 '엎을까, 공연 가지말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아마 군무나 연극, 뮤지컬 등의 무대에 올랐던 사람들은 한두번쯤 저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가 무대를 준비할때마다 속상한 게 너무 많았기에,,,대략 추측해본다)
그동안 내 말대로 해, 하기 싫으면 하지마 라고 말했던 조조형 연출도 겪었고,
개개인의 성향을 존중해주는 유비형 연출도 겪었다.
성향에 따라 선호하는 연출 스타일은 다르겠지만, 이번 공연은 성악가 선생님들도 나도 신인이 아니었기에 후자(유비형연출)이 맞았던 것 같다.
공연기획을 하면 수많은 아티스트를 만나게 된다. 예술가들은 그 개성이 너무 강해서 때로는 그들의 합을 이끌어내야 할 제작진을 지치게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그들 성향에 맞게 우쭈쭈 해주는 것이 연출가가 가져야 할 리더십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산을 넘은 것일 뿐, 아직 공연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
공연을 수행하는 퍼포먼서로서 무대에 오르지만 공연을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공연을 대하니 시각이 확 달라진 것을 느끼며, 다음 공연들에서는 또 어떤 것을 느낄 수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