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란 무엇인가 (5)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는 '누적의 시간'과 격차의 서막

by 으뉴아빠
중학교 2학년 무렵, 전국을 강타한 '스타크래프트'와
PC방 열풍에 나 역시 거침없이 휩쓸렸다.


모니터 속 유닛들을 컨트롤하는 가상 전장의 재미에 푹 빠져 지내던 그 시절, 당연하게도 내 성적표는 말 그대로 바닥을 쳤다.


하지만 그 처참한 점수들 사이에서도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고 상위권을 유지했던 과목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수학’이었다. 대단한 학구열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남들보다 암산과 계산이 조금 더 빠르다는 어린 시절의 하찮고 귀여운 우월감에서 시작된 흥미였다. 또한 복잡한 문제들을 마주하고, 여러 수식과 논리를 이리저리 조합해 기어코 하나의 정답으로 엮어내는 그 치열한 과정 자체가 내게는 '또 다른 형태의 짜릿한 게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함께 "다시 제대로 공부해 보자"라고 펜을 쥐었을 때, 나는 학문의 본질에 대한 아주 무서운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그동안 바닥을 쳤던 성적과 밀린 진도를 단기간에 무섭게 따라잡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가장 밑바탕이 되어야 할 수학의 기초가 이미 내 안에 단단하게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회나 역사 같은 암기 과목은 며칠 밤을 새워 순간적인 집중력을 발휘하면 어떻게든 벼락치기로 극복이 가능했다. 하지만 수학만큼은 달랐다. 수학은 이전 단계의 공식과 논리적 사고가 온전히 내재화되고 '누적'되어야만 다음 챕터로 단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지독히 정직한 학문이다. 중학교 시절 벼락치기로 곧잘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지만 수학의 기본기가 약했던 친구들은, 결국 고등학교 수학의 고차원적인 깊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최상위권의 문턱에서 뼈아프게 좌절하고 말았다.


1. AI의 스위치를 켠다는 것 : 누적된 사고력의 차이


최근 사내의 쉼 없는 AX(AI Transformation) 여정을 겪으며, 나는 불현듯 고등학교 시절에 느꼈던 그 서늘한 통찰을 매일같이 사무실 한복판에서 다시 마주하고 있다.

단언컨대, "지금 시대에 AI를 활용하는 일은, 수학을 공부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우리 회사처럼 클라우드 생태계를 기반으로 일하는 엔터프라이즈 환경에서 AX의 진화는 해가 아니라 '일'단위로 조직의 피부에 닿고 있다. 며칠 전, 전사 표준 협업 툴인 구글 워크스페이스에 '스튜디오(Studio)'라는 새로운 기능이 조용히 업데이트되었다. 기존의 Make나 n8n 같은 워크플로우(Workflow) 기반의 자동화 기능에 생성형 AI인 제미나이(Gemini)가 유기적으로 융합된 강력한 도구였다.


IT 전공자이자 매일 AI의 아키텍처를 고민하는 내 눈에는, 이 기능이 열어줄 압도적인 업무 생산성의 폭발과 무한한 응용 시나리오가 단숨에 보였다. 하지만 이 훌륭한 도구를 현업에 소개했을 때, 현장의 반응은 극명하게 두 갈래로 엇갈렸다.



평소 사내 생성형 AI를 곁에 두고 숨 쉬듯 만지작거리며 자신의 업무 방식을 조금씩이라도 바꿔온 사람들은, 이 새로운 도구를 보자마자 물 만난 고기처럼 자신의 업무에 접목할 워크플로우를 신나게 조립하기 시작했다.



반면, 과거의 고정된 업무 방식에 머물러 AI의 파도를 외면해 온 사람들은 이 직관적인 도구 앞에서도 짙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기능의 조작법이 어려워서가 아니었다. "AI를 써서 내 업무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지시하고 응용해야 할지" 그 상상력의 뼈대 자체가 아예 형성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얀 도화지와 최고의 붓을 쥐여 주었지만, 무엇을 그려야 할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인지적 마비 상태. 그들에게 이 도구는 극도의 막막함과 불편함 그 자체였다.


2. 1억 명의 게임 체인저, 그리고 서늘한 현실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문장이 하나 있었다. 불과 약 4년 전, OpenAI의 챗GPT가 세상에 처음 등장하며 단 두 달 만에 1억 명의 활성 사용자(MAU)를 달성하는 역사상 최고의 '게임 체인저'로 등극했을 때, 수많은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던졌던 예언이다.


"미래의 경쟁은 'AI vs 인간'의 구도가 아니다. 'AI를 잘 활용하는 인간'이 '그렇지 않은 인간'을 도태시키는 경쟁이 될 것이다."


그때는 그저 위기감을 조성하기 위한 먼 미래의 경고나 자극적인 마케팅 문구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변화관리를 이끄는 내 눈앞에서, 저 예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잔혹하고 완벽한 현실이 되어 작동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 낯설고 두렵다고 해서, 혹은 당장 지금의 업무 방식이 더 편하다며 멈춰 있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거대한 시대의 해일은 개인의 관성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변화의 파도를 끝내 외면하는 이들은 단순히 제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가속하는 시스템 속에서 점차 소통과 협업이 불가능한 생태계의 '부적응자'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


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AI와 대화하며 그 한계와 가능성을 몸으로 익히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금의 격변은 축복이다. 이들은 무한 경쟁의 궤도 속에서 자신의 압도적인 가치와 잉여 생산성을 증명해 내는 최고의 기회장을 맞이하고 있다.


3. 당신에게는 일상어, 누군가에게는 외계어


요즘 타 부서 리더들이나 현업 담당자들과 시스템을 기획하거나 대화를 나누다 종종 혼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나에게는 이제 너무나 일상적이고 숨을 쉬듯 편안한 용어들


AI에게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에 대한 프롬프트(Prompt),

대화의 맥락을 유지하는 컨텍스트(Context),

방대한 문서를 AI가 소화하기 좋게 잘게 쪼개는 청킹(Chunking),

환각을 막고 팩트 기반의 근거를 부여하는 그라운딩(Grounding)

어찌 보면 너무나 기본적인 이 개념들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전혀 해독할 수 없는 낯선 '외계어'라는 사실을 마주할 때다. 누군가는 나중에 AI 기술이 훨씬 더 쉬워지고 완벽해지면, 그때 가서 한 번에 배워서 쓰겠다고 다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내가 AI를 '수학'에 비유한 핵심 이유다.


덧셈과 뺄셈의 개념을 몸으로 익히지 않은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강의 한 번 듣는다고 미적분을 풀 수 없듯, AI 역량 역시 트렌드 특강을 듣거나 비싼 솔루션을 도입한다고 벼락치기로 생겨나는 요술 지팡이가 아니다.

AI에게 어떤 뉘앙스의 질문(Prompt)을 던져야 예리한 답이 나오는지 고민해 본 시간, 흩어진 맥락(Context)을 좁히고 구조화해 본 경험, 오답을 받아보는 숱한 시행착오들이 몸에 내재화되고 차곡차곡 '누적'되어야만 한다. 어차피 처음부터 손을 더럽히며 이 기초적인 공식들을 쌓아둔 사람만이, 훗날 더 고도화되고 지능화된 에이전트 AI를 우아하고 통찰력 있게 지휘할 수 있다. 미래의 언어는 결코 하룻밤의 벼락치기로 얻어지지 않는다.


맺음말 : 당신의 일상에 첫 번째 수식을 쓸 시간



이 거대한 격변의 시대 한가운데서, 기업의 AX 본질은 단순히 비싼 시스템을 열어주는 것에 있지 않다. 구성원 개개인이 AI라는 새로운 시대의 '수학 공식'을 매일의 업무 속에서 조금씩, 꾸준히 풀어내며 기초 체급을 누적시켜 나가는 데 있다.


"나중에 완벽해지면 써야지"라는 핑계는 접어두자. 수학 문제를 풀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틀릴 것을 알면서도 일단 빈 종이 위에 첫 번째 수식을 끄적여 보는 용기다. AI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 눈앞의 AI 창을 열고, 내 업무의 아주 사소하고 귀찮은 부분부터 대화를 시작해 보라. 완벽한 프롬프트를 고민하느라 주저할 필요가 없다. 틀린 답을 내면 구조를 바꿔 다시 물어보는 그 소소한 '수식 조립의 게임'을 지금 당장 시작하면 된다.


세상은 이미 '누적된 시간'의 격차를 무서운 속도로 벌리기 시작했다. 오늘 당신이 낯섦을 이겨내고 대수롭지 않게 축적한 그 작고 단단한 시간들이 모여, 어느 순간 당신을 대체 불가능한 'AI 시대의 최상위권'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누적된 시간과 경험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중학교 시절의 내가 수학을 놓지 않아 결국 다음 챕터로 폭발적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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