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X란 무엇인가 (6)

그라운드의 슈퍼스타가 아닌 '감독', 그리고 스폰서십

by 으뉴아빠

최근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쏟아지는 기술의 변화들을 접하면, 생성형 AI의 패러다임이 또 한 번 중대한 변곡점을 지났음을 체감하게 된다.


단순히 프롬프트 창에 질문을 입력하고 답변을 기다리던 시대를 지나, 이제 AI는 주어진 목표를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는 '에이전틱 AI(Agentic AI)' 생태계로 진입했다. 터미널 환경에 상주하며 개발자의 코드를 읽고 스스로 수정 내역을 반영하는 클로드 코드(Claude Code), 화면의 UI를 사람처럼 인식하고 마우스를 직접 조작하는 오픈클로(OpenClaw)나 컴퓨터 유즈(Computer Use) 같은 기술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개인의 업무 생산성 관점에서 이 도구들은 혁신 그 자체다. 하지만 거대 조직의 시스템과 거버넌스를 설계해야 하는 엔터프라이즈 리더의 시각에서 보면, 이러한 최신 기술은 종종 '통제 범위를 벗어난 자동화가 가져올 보안 리스크'라는 중대한 과제를 동반한다.


스스로 외부와 통신하고 행동하는 에이전트 AI에게 사내망의 접근 권한을 온전히 내어주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매우 신중해야 할 문제다. 만약 현업 직원이 무심코 열어본 외부 문서나 웹페이지에 악의적인 프롬프트 인젝션이 교묘하게 숨겨져 있다면, 에이전트 AI는 '정상적인 직원의 권한'으로 사내 데이터를 요약해 외부 API로 전송할 위험이 있다. 개인에게는 혁신적인 도구가, 기업 환경에서는 기존의 보안 방어막을 우회하는 새로운 형태의 '섀도우 AI'가 될 수 있는 것이다.



1. 기술과 비즈니스의 간극, AX는 '경계 횡단(Boundary Spanning)'이다


이러한 구조적 딜레마를 마주할 때마다, 기업 내에서 AX를 이끄는 조직의 진짜 역할이 무엇인지 명확해진다.

흔히 사람들은 AX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AI 코딩을 직접 수행하고, 딥러닝 알고리즘을 이해하며 하이퍼파라미터를 튜닝하는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AX의 진짜 과제는 '순수 기술의 논리' vs '사용자의 현실'이라는, 전혀 다른 두 세계 사이의 간극을 조율하는 데 있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조직의 경계를 넘어 소통과 혁신을 이끌어내는 '경계 횡단자(Boundary Spanner)'라고 부른다.


최근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의 에단 몰릭(Ethan Mollick) 교수를 비롯한 AI 전략가들은 현재의 AI를 '들쭉날쭉한 기술의 최전선(Jagged Technological Frontier)'이라 묘사한다. 어떤 업무에서는 인간을 압도하지만, 비슷해 보이는 다른 업무에서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는 의미다.




더 중요한 사실은 엔터프라이즈 AI 도입의 가장 큰 병목이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조직의 '변화 수용력'에 있다는 점이다. 코어 개발자들은 아키텍처의 성능 고도화에 집중하느라 현장의 보안 리스크나 구성원들의 심리적 장벽을 간과하기 쉽다. 반면 일반 사용자는 당장의 업무 편의성에 몰두할 뿐, 그 이면에 쌓이는 기술 부채나 거버넌스의 붕괴를 인지하기 어렵다. AX 전문가는 이 두 극단 사이에서 리스크를 객관적으로 필터링하고, 조직이 안전하게 기술을 소화할 수 있는 가드레일을 세우는 '경계선의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2. 그라운드의 슈퍼스타가 아닌, 전체를 조망하는 '감독'


이 역할을 스포츠에 비유해 보자. 그라운드 위에는 압도적인 피지컬과 개인기로 매 경기 화려한 골을 넣는 '슈퍼스타' 플레이어가 있다. IT 생태계로 치면 새로운 파운데이션 모델을 튜닝하고 알고리즘의 한계를 돌파하는 훌륭한 코어 AI 엔지니어들이다.




하지만 수천 명의 임직원이 뛰고 있는 기업이라는 거대한 구단에서 '전사적 비즈니스 혁신'이라는 긴 시즌을 우승으로 이끌어야 하는 AX 리더의 진짜 포지션은 화려한 득점왕이 아니다. 전체 경기의 흐름을 읽고 팀의 밸런스를 맞추는 '감독'에 가깝다.

조직을 이끄는 감독에게 요구되는 핵심 역량은 본인의 개인기가 아니다. 탄탄한 실력을 뒷받침한 노련함이다.


. 위험 감지 능력 : 클로드 코드나 오픈클로 같은 최신 기술의 화려함에 맹목적으로 열광하기보다, 그것이 내부망에 도입되었을 때 기존 시스템과 충돌하며 발생할 취약점을 한 발 앞서 파악하는 객관적 시야


. 연결하는 지식 : 특정 분야의 깊이에 매몰되기보다, AI 트렌드, 클라우드 인프라, 전사 보안망, 그리고 비즈니스의 수익 구조 전반을 폭넓게 조망하며 점과 점을 연결하는 제너럴리스트의 역량


. 시스템적 사고 :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었을 때, 부서 간의 역할(R&R)이 어떻게 재편되고 구성원들의 업무 동기가 어떻게 변화할지 입체적으로 예측하는 사고방식.


3. 의사결정권자의 언어 : 기술을 '위기와 기회'로 통역하라


감독의 이러한 넓은 시야가 가장 빛을 발해야 하는 순간은, 바로 구단주에 해당하는 최고 의사결정권자(C-Level)와의 소통이다. 수많은 사내 IT 프로젝트가 경영진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이유는, 실무진이 "새로운 모델의 처리 속도가 15% 개선되었고, 컨텍스트 윈도우가 크게 확장되었습니다"라는 기술적 지표만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영진의 의사결정은 기술 스펙 자체보다 '잠재적 리스크'와 '비즈니스 가치 창출(ROI)'이라는 두 축으로 움직인다. 뛰어난 AX 전략가는 기술의 변화를 비즈니스의 언어로 통역한다. "대표님, 이 에이전트 AI를 테스트 환경이 없이 현업에 방치하면 향후 사내 데이터 외부 유출이라는 중대한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선제적으로 중앙화된 AI 게이트웨이를 구축해 이 기술을 내재화한다면, 단순 반복 업무를 상당 부분 자동화하여 운영 비용을 최적화하고, 직원들이 더 전략적인 기획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습니다. 관련된 전체 과정의 프로토타입 데모와 자세한 성과 지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러한 명확한 통역 과정이 수반될 때, 비로소 기술은 기업의 핵심 전략으로 채택되고 강력한 실행 동력을 얻게 된다.


4. 변화관리의 심리학 : '정체성 위협'을 넘어서는 스폰서십


경영진을 설득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단 하나, 흔들림 없는 스폰서십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MIT 슬론 매니지먼트 리뷰 등은 AI 혁신의 성공 요인을 설명할 때 "알고리즘과 인프라는 30%에 불과하며, 나머지 70%는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변화관리에 달려 있다"라고 강조한다. 강력한 스폰서십이 결여된 AX는 부서 단위의 단기 캠페인으로 끝날 확률이 높다.


왜 스폰서십이 그토록 중요할까? 구성원들이 새로운 기술 도입에 저항하는 근본적인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 사람들이 AI를 거부하는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툴을 배우기 귀찮아서가 아니다. 조직 행동론 전문가들은 이를 '정체성 위협'으로 설명한다. 자신이 오랜 시간 땀 흘려 쌓아 온 '기존 업무 방식에서의 유능함'이 일순간에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상실감과 두려움 때문이다.


수년간 복잡한 엑셀 수식과 사내 매뉴얼을 완벽하게 숙지하여 부서의 에이스로 인정받던 직원을 떠올려 보자. 어느 날 프롬프트 몇 줄로 AI가 완벽한 데이터 분석 리포트를 쏟아내는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이 직원에게 AI는 혁신이라기보다 자신의 직무 정체성과 존재 가치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느껴질 수 있다. 방어 기제가 발동하여 "AI는 아직 오류가 많아 실무에 적용하기 어렵다"며 과거의 익숙한 방식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심리적 현상이다.


또한, 조직에 AI를 처음 도입할 때는 기존 업무 방식의 해체와 새로운 학습 비용으로 인해 오히려 일시적으로 생산성이 하락하는 '생산성의 J커브(Productivity J-Curve)' 구간을 반드시 거치게 된다.



이러한 심리적 장벽과 생산성의 계곡은 실무진 선에서의 툴 교육만으로는 허물 수 없다. 이때 과거의 관성을 극복하고 조직을 다음 단계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바로,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 교수가 강조한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다. 그리고 이를 조직 전체에 부여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가 바로 최고 경영진이다.


경영진은 예산을 승인하는 것을 넘어, 전사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회사가 진정으로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엑셀 작성 속도가 아니라,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는 여러분의 '도메인 지식과 통찰력'입니다. 수작업은 AI에게 맡기고, 여러분은 더 높은 차원의 전략에 집중하십시오. 이 과도기에서 발생하는 일시적인 생산성 저하와 시행착오는 회사가 온전히 감당하겠습니다."


변화의 최전선에서 기존 관행과 부딪히며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감독(AX 리더)들에게, 경영진의 이러한 스폰서십은 그 어떤 최신 인프라보다 든든한 기반이 된다.


맺음말 : 무대 밖에서 미래의 지형을 그리는 사람들


AX 여정의 여섯 번째 챕터를 지나며, 조직 내에서 혁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결국 기술이 아닌 '사람'을 향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세상은 매일같이 스스로 코드를 짜고 화면을 제어하는 AI의 놀라운 성능에 환호한다. 하지만 기업의 굳게 닫힌 문 안에서, 기술은 결코 스스로 비즈니스를 혁신하지 않는다. 결국 누군가가 그 시스템을 우리 환경에 맞게 조율하고, 안전한 거버넌스를 설계하며, 변화에 불안해하는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만 비로소 기술이 온전히 뿌리내릴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의 리스크를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결정권자와 실무자의 언어적 간극을 메우며, 구성원들이 두려움 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도록 이끄는 역할.


비록 무대 위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그라운드의 슈퍼스타는 아닐지라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팀 전체의 조화와 승리를 설계하는 이 '감독'들이야말로 AI 시대 기업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열어가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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