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를 은퇴하고 10년이 지났다

롤 프로팀 Prime에서 개발자가 되기까지

by 김상욱
Gemini_Generated_Image_u1cgowu1cgowu1cg.png 나노바나나2 생성 이미지

새벽 2시.

모니터 두 대 앞에 앉아 있다.


왼쪽 화면에는 Claude Code.

오른쪽에는 이슈 문서.


교사 200명이 쓰고 있는 서비스의

버그를 잡고 있다.


작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서비스다.

다른 프로젝트는 다 망했다.

이것만 남았다.


새벽에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다만 그때는 코드가 아니라 게임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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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휴학서에 도장을 찍었다.


컴퓨터공학과 3학년.

취미로 하던 리그 오브 레전드 랭킹이

1000위권이었다.


수업 시간에 앉아 있으면

"이건 내가 잘하는 게 아니다"

라는 생각만 들었다.

게임에서만큼은 달랐다.


휴학하고 게임에만 집중했다.

랭킹이 올라갔다.


100위권까지 올렸을 때쯤,

스타크래프트2 프로구단 Prime에서

롤 신생팀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달간의 테스트가 시작됐다.


지원한 포지션 별로 팀을 나누고

팀원을 바꿔가며 경기를 계속한다.


운이 따라줘서

좋은 성적을 냈고

그 성적을 바탕으로

나는 프로게이머가 되었다.


숙소


입단 첫날.

5인 1실 방에 들어갔다.


내가 제일 먼저 왔다.

빈 방에 짐을 풀었다.

하나둘씩 팀원들이 입단하기 시작했다.


다들 나보다 다섯,

여섯 살은 어렸다.


숙소에는 밥해주시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그 전까지 맨날 PC방에서 라면만 먹고 살았는데,

따뜻한 밥을 먹으니까 참 맛이 좋았다.

그게 사소하지만 선명한 기억이다.


아침 7시에 눈을 떴다.

씻고 나오면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면 게임을 켰다.

상대 팀과의 연습 경기가 잡혀 있으면

스크림을 돌렸다.


끝나면 피드백.

뭐가 문제였는지,

다음엔 어떻게 할 건지


코치님에게 혼나기도 하고

칭찬 받기도 하고


그 외 시간은 전부 개인 연습이었다.

솔로 랭크를 돌리거나,

팀원들끼리 듀오를 잡았다.


다음 스크림이 잡힐 때까지 그걸 반복했다.


밤11시, 밤12시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할 사람들은 남아서 더 했다.


하루종일 게임만 하니까

시간 개념이 없었다.


아침인지 밤인지,

평일인지 주말인지,


모니터 앞에 앉으면

그냥 흘러갔다.


내 랭킹이 팀에서 가장 높았다.

자연스럽게 내가

중심을 잡아야 하는

분위기가 됐다.


하지만 신생팀이었고,

다른 팀과의 격차는 분명했다.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이끌 수 없다는 막막함이 동시에 왔다.


대회에 나갔다.

아마추어 팀이랑 붙었는데,

상대 팀에 챌린저가 세 명 있었다.


50등 안에 드는 사람들.

아마추어 팀이지만

강팀이었다.


패배해서 떨어졌고,

너무 아쉬웠다.


1승 2패

프로게이머로서의

첫 대회,

첫 전적,

그리고 마지막 전적이다.


게임이 좋아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게임을 켤 때마다 무거워졌다.

나는 왜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었던 걸까.

좋은 성적을 내고 싶었던 건지,

단지 그 세계에 들어가 보고 싶었던 건지.


막상 안에 들어오니, 분명한 목표가 없었다.


오히려 나보다 어린 팀원들이

더 단단해 보였다.


졌을 때 스트레스받고,

이겼을 때 기뻐하면서도,

게임 자체를 즐기는 건

나보다 그들이었다.


넉 달이 지났을 때 짐을 쌌다.

학교로 돌아왔다.


그건 실패였을까


학교로 돌아온 뒤 한동안 이 질문을 했다.

지금도 가끔 한다.


당시 나는 프로게이머 씬에서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더 잘해질 자신보다,

점점 꺾일 거라는 두려움이 더 컸다.

계속 가는 것보다 멈추는 쪽을 택했다.


롤 프로게이머 했었다고 하면

다들 신기해하긴 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성적을 못 냈으니까,

대부분은 "그랬구나" 정도였다.


그게 맞는 반응이었다.


요즘 페이커를 본다.

그는 당시 나보다 여섯 살 어렸다.

내가 그만둔 나이까지도 꺾이지 않았다.

힘들었을 시기를 버텨 다시 정상에 섰다.


나도 조금 더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가끔 그때 팀원들 소식을 듣는다.

한 명은 롤드컵에 나가서 2위까지 했다.

또 한 명은 코치가 되어 역시 2위까지 해봤다.

내가 떠난 뒤에도 그들은 계속 갔다.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복잡하다.

대단하다는 생각과,


내가 빠진 자리에서

그들이 더 멀리 갔다는 사실이

동시에 온다.


모르겠다.

확실한 건 하나다.


그 결정은 도망이기도 했고,

동시에 선택이기도 했다.


10년


그 뒤로 여섯 곳의 회사를 거쳤다.


중소기업에서 시작해

넥슨까지 갔다가,

퇴사하고,

임금체불도 당하고,

다시 스타트업에 들어갔다가,

또 나왔다.


지금은 혼자 서비스를 만든다.

교사 200명이 쓰고 있다.

매출은 아직 없다.


여러 개 만들었는데

다 망하고,

이것만 살아남았다.


프로게이머 시절,

새벽까지 모니터 앞에 앉아서

같은 걸 반복하던 습관.


그게 지금은 코드를 치는 데 쓰이고 있다.

랭킹을 올리던 집요함이

버그를 잡는 집요함이 됐다.


팀원을 이끌지 못해

막막하던 감각이,

혼자 서비스를 만들며 느끼는

막막함과 닮아 있다.


돌아보면 프로게이머 시절에 배운 건

게임 실력이 아니었다.


지고 있을 때

모니터 앞에

계속 앉아 있는 법이었다.


요즘은 게임을 안 한 지도 꽤 됐다.

롤드컵도 안 본다.


그런데 안 봐도 들린다.

타임라인에 올라오고,

뉴스에 뜨고,

영상이 올라온다.


그럴 때면 문득 검색창에

prime hanlabong을 검색한다.


그 자리에 남아

더 열심히 노력해서

롤드컵 2위까지 간

동생이 있기에


내 기록이 지워지지 않았다.


모니터 앞에 다섯 명이

나란히 앉아 있던 그 방

10년이 지났지만 그 장면은 생생하다.


새벽 3시. 버그를 하나 잡았다.

커밋을 푸시하고 모니터를 끈다.


10년 전의 나에게 말해줄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넌 실패한 게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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