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시절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만 하는 착한 아이 말고, 반항도 해보고 일탈도 해보는 아이였다면, 내 인생은 조금 달라졌을까?
무엇이든 불평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하는 아이. 그래야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고 행복할 것이라 믿었다.
마흔 가까이 되었을 때야 알았다. 꾹꾹 누르기만하며 살았던 마음들이 상자 안에 가득 차 더 이상 닫히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참는 것을 그만하기로 하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처음 입 밖으로 내뱉던 날. 목소리는 부들부들 떨렸고 목 뒤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내가 이런 말을 해서 관계가 더 악화되면 어쩌지? 괜히 말하는 건 아닐까? 그냥 나만 참으면 되는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익숙지 않은 말들이 어색했다. 그럼에도 나는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했다. 살기 위해서.
그저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누군가의 자식으로, 아내로, 며느리로, 부모로서가 아니라 나로 말이다. 여러 가지 역할을 하면서 나라는 사람이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원래 나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하는 허망함이 밀려왔다. 나의 꿈은 무엇이었던가, 내가 좋아하던 것이 있었던가, 나는 언제 행복했던가.
이렇게 중얼거리면 누군가는 '다들 그렇게 살아. 어떻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살겠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다들 그렇게 산다. 순간 내가 너무 호들갑 떠는 거 아닌가 생각도 했지만, 그렇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고, 나는 나니까.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거라 하더라도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워킹맘에 독박 육아였기에 숨 쉴 시간 없이 바쁘게 살았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면 행복한지 생각할 겨를 없이 하루하루가 벅찼다.
눈을 뜨면 아침밥을 차려 두 아이를 먹이고, 씻겨서 유치원에 보냈다. 그리고 곧바로 나도 유치원으로 갔다. 내가 일하는 유치원으로. 일을 마치면 아이들을 데리고 와 씻기고, 청소와 빨래를 하고, 밥을 차려 먹이고, 책을 읽어주며 재웠다. 아이들이 잠들면 그 틈을 타 새벽까지 교구를 만들며 다음 날 수업을 준비했다. 남편은 도와줄 생각이 없었고, 매일 숨 막히는 일과에 언제쯤 숨구멍이 열릴까 하는 생각조차 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나갔다. 왜 바보같이 아무말도 하지 못했을까?지금 생각해보면 참 답답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자랐고, 나에게는 사십춘기가 왔다. 모든 것이 흔들리던 순간이었다. 결국 벅찼던 일을 그만두고 나는 나를 다시 살포시 꺼냈다. 다행히도 먼지를 툴툴 털어내고 보니 나는 여전히 변함없는 나였다. 나를 정성스레 닦아주고 자세히 마주 보며, 나와 이야기를 해보니 예전보다 더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살기만 했다고 생각한 그동안의 시간이 그냥 흐른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나를 어루만져주고 잘했다고 칭찬도 해주고 사랑해주었다. 그렇게 나를 아껴주었다.
이 년 정도 지나고 나니 내 안의 평화가 찾아왔다. 누구에게나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서로 적절한 해결점을 찾는 것.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래서인지 그 전에는 그냥 참고 지나간 일들도 이제는 참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이들의 마음을 만져줄 수 있게 되었고, 힘든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나에게 사십춘기는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평생 종이딱지의 앞면으로 살 줄 알았는데 한 번의 강한 내리침으로 인해 뒷면으로 바뀌었다. 너무 세게 아팠지만 그래서 뒷면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