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을 바라고 행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다. 세상은 주는 만큼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많이 주었다고 해서 상대가 다 알아주고 그만큼 돌려주지도 않지만, 의외로 내가 별로 준 것이 없음에도 나에게 퍼주는 이도 있다.
20대 초반에는 내가 이만큼 해주면 사람인데 당연히 상대도 이만큼 해주겠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내 바람은 바람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해주었는데,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안 해주니?라고 따지는 것도 웃긴다. 누가 그렇게 해달라고 했던가? 내가 좋아서 한 일인 것을.
내가 100을 주면 100을 그대로 주는 사람이 있고, 절반인 50도 안 주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주는 것을 배로 돌려주기도 한다. 받을 것을 생각하며 상대에게 무언가 해주려 한다면 너무 머리 아픈 일이 된다.
상대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으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해주는 게 마음 편하다. 그래서일까? 바라는 것 없이 그저 내가 해주고 싶어서 하는 거면 그것으로 만족되었다.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았고, 상대가 고맙다고 성의를 표해주면, 배로 감동을 받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런 바람은 내려놓았다. 한국 드라마에 보면 단골 대사가 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네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
당연히 부모 마음에서 무언가를 바라고 자식을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과거에는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워놓으면 아이가 커서 효도하겠지 하는 보상심리를 많이 가졌다.
하지만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라고 말하면 자식 또한 이렇게 되묻는다.
"엄마, 아빠가 나한테 뭘 해줬는데?"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 때문에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희생하며 키웠기에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이 나오지만 자식은 '누가 그렇게 희생하라고 했어? 그렇다고 다른 집 애들보다 나한테 뭘 더 풍족하게 해 줬다고 그러는 거야?'라는 식으로 반박할 수 있다. 무언가를 바라고 해주는 것은 안 해주는 것만 못하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이가 아프지만 않기를 바란다. 그러다가 점점 아이가 커갈수록 예의도 바르면 좋겠고,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고, 운동 한 두 개도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아이가 자라면 좋은 대학을 가길 바라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길 바란다. 배우자도 멋진 사람이길 원한다.
당신의 어릴 적을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어떤 아이 었는지. 예의도 바르고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만능 학생이었던가?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고, 배우자도 멋진가? 그 어려운 것을 우리는 아이들에게 바란다.
아이에게 교육을 할 때도 그렇다. 학원을 이곳, 저곳 보내지만 성적이 제대로 안 나오면 아이를 혼낸다. 왜 혼낼까? 부모가 비싼 돈을 주고 아이를 학원에 보내니 그만큼 효과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보상심리가 느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원을 가기 때문에 내 아이만 특별히 많이 공부를 한다고 볼 수 없다. 아이는 나름 공부를 했지만 성적이 안 나올 수도 있다. 그중에서 분명 일등과 꼴등은 존재할 테니까.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는 스스로 마음먹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안에서 해주자고. 해 줄 수 없는 것을 위해 내가 희생하며 아이에게 보상심리를 느끼지 않도록. 아이도 부모가 희생하는 것을 바라지 않을 테니까.
그럼 아이의 바람은 무엇일까? 부모가 아이의 행복을 바라듯 아이도 부모의 행복을 바란다. 어떤 아이가 부모가 자신 때문에 희생하며 살기를 바라겠는가? 아이의 바람은 부모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일테다.
우리는 자신의 바람만 생각하고 요구하기에 바쁘다. 분명 다른 사람들도 바람이 있을 것인데 말이다. 오늘은 나의 바람말고, 상대의 바람이 무엇인지 한 번 들여다 보길 바란다. 우리의 행복은 어쩌면 이런 작은 관심에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