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화경 Jan 18. 2022

"냉장고 정리 좀 하자."초등딸이 말했다

베이킹을 잘하는 초등 딸과 함께 살면 맛있는 디저트를 많이 먹어 좋겠다고 부러워한다. 맞다. 그건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씩 피곤할 때도 있다. 


https://brunch.co.kr/@dew-0927/174


처음에는 치우는 것이 서툴러 내가 뒷정리를 한 번 더 해야 했지만 이제는 능숙해져서 딸이 치우고 나면 내가 손을 델 곳이 별로 없다. 그럼 왜 피곤하지? 하고 생각할 것이다. 


바로 잔. 소. 리 때문이다.

"엄마, 우리 날 잡아서 냉장고 정리 좀 하자. 나 베이킹 재료들 이렇게 정리 안 되게 놔두기 싫어. 다이소나 쿠팡으로 보면 정리 통 많으니까 이렇게 놔두지 말고 정리하자." 

음....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가 할 법한 소리를 겨우 초등 6학년밖에 안 된 딸에게 듣다니... 

"이거 정리한 거야."

"이게 어디가 정리한 거야? 내가 도와줄 테니까 이번 주에 하자~~ 가루들도 그렇고 정신없잖아."


딸의 잔소리에 나는 친정엄마에게 전화해 딸이 이렇게 말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런데 엄마의 반응은 대환영이었다. 

"아이고. 내가 하고 싶은 소리를 우리 손녀가 다 해주네. 그래 니는 친정살이, 시집살이 이런 거 없으니 딸 살이 좀 해봐라.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손녀가 다 해주고. 요리 잘하니까 주방에 관심이 많아 좋네."

 

친정엄마도 내 편을 안 들어주다니. 하는 수없이 전화를 끊고 딸에게 어떤 정리 통을 사면 되냐고 물으니 딸은 그동안 여러 유튜브 채널에서 본 다양한 통들을 말해주었다. 가루를 넣기 좋은 통, 양념을 정리하기 좋은 통, 일반적으로 재료를 넣기 좋은 통 등등.



결국 이렇게 본 정리 통을 다 구매했고, 배송이 오자마자 깨끗이 씻고 말려서 주말에 냉장고 정리에 들어갔다.


인정하기 싫지만 딸의 말이 맞았다. 

평소 정리를 한다고 했는데도 항상 냉장고가 정리 안 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물건들이 다 널려져 있어서였다. 밀가루나 부침가루, 찹쌀가루 이런 것들을 봉지채로 잘라서 쓰고 입구만 봉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것으로 봉하고 놔두다 보니 냉장고 상단은 여러 가지 가루들 봉지로 널브러져 있었다. 


유통기한 지난 양념들, 구석에 박혀있던 오래된 장아찌. 이런 것들은 왜 냉장고에 그대로 있는 건지. 정리를 하며 역한 냄새를 계속 맡았다. 딸은 그런 것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딸은 재료들을 통에 예쁘게 담고 견출지에 내용물 이름을 적었다. 자신의 베이킹 재료들도 그렇게 정리했다.

냉장고를 다 정리하고 난 뒤 딸은 너무 행복해하며 이제야 빵 만들 맛이 난다 했다.

  

베이킹 가루
베이킹 가루
냉장고 정리
냉장고 정리
냉장고 정리

이렇게 냉장고 두 개의 냉장실을 정리하고 나니 버린 음식물 냄새 때문에 계속 머리가 띵했다. 이제 좀 쉬어야겠다 생각하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엄마, 이제 냉동실."

"뭐?? 냉동실?"

"그럼 냉동실은 안 할 거야??"

"저기... 엄마가 머리가 너무 어지러워. 진짜 오늘 더 했다가는 나 쓰러질 것 같아."

"그래? 그럼 다음에 할까?"

"그래. 그래. 그게 좋겠다. 다음에 하자."


그리고.... 냉동실은 한 달째 아직까지 그대로이다. 하하하하

언제 정리하지??

매거진의 이전글 초등학생 혼자 10시간 만든 케이크 비주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