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4살인 딸(곧 초등학교를 졸업한다)은 2020년 10월 22일(5학년) 처음으로 베이킹이라는 것을 집에서 시도했다. 코로나로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며 유튜브와 급격히 친하게 된 아이는 하루 종일 베이킹 영상을 보았고,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영상만 보는 것보다는 직접 만드는 게 좋겠다 싶기도 했고, 힘들어 얼마 못 가 그만두겠지 하는 생각에 전제조건을 내걸며 허락했다.
1. 재료 찾기부터 재료 주문(장바구니에 담으면 결제는 엄마가 해주기로 했다. 물론 재료는 본인의 용돈으로) 재료 보관 알아서 하기.
2. 엄마의 도움 없이 만들기(엄마는 재택근무로 바쁘니까.)
3. 설거지하고 뒷정리 하기.
아이는 1년 동안 상상 이상으로 실력이 향상되었고 웬만큼 유명한 디저트 가게처럼 맛있게 만들어냈다. 덕분에 딸은 이제 나에게서 재료값을 50%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재료도 자기가 사고, 만들기도 자기가 하고 설거지도 하는데 왜 엄마는 그냥 먹냐고 발끈했었다. 물론 만드는 장소 제공과 전기세, 물 세 기타 등등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말하는 동안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했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제안한 것은 재료값 50%를 내는 것이었다. 딸은 흔쾌히 수락했다.
딸의 베이킹에 관한 글은 초반에만 몇 번 적었지, 작년 2월부터는 글을 올리지 않았다. 그동안 만든 것은 어마어마하지만 대표적인 것 몇 개만 사진을 올리면 이런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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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베이킹 / 레몬파운드
아이는 베이킹하시는 분들의 영상은 거의 다 보는 듯했다. 그중 가장 맛있어 보이는 레시피를 보고 재료를 주문하고 따라 하는데 비주얼만큼이나 맛도 예술이다.
그. 러. 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번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아이가 만들겠다고 한 달 전부터 선언한 케이크는 아니었다. 딱 봐도 이건 아니야...라고 혀를 내두를 만한 케이크. 어른도 만들기 힘든 비주얼.
말린다고 말려지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에 실패하고 난 뒤 토닥여주어야지 생각을 하고 재료 구매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유튜버 '아리 키친'님께 말했다. '이렇게 어려운 것을 왜 만드셔서 아이를 시험에 드시게 하시나이까???'
케이크는 이름도 어려웠다. '부쉬 드 노엘'. 아이가 보고 따라한 '아리 키친' 님의 부쉬 드 노엘 영상 썸네일이다. 아이는 한 달 동안 나에게 저 케이크를 만들 것이라며 노래를 불렀다. 아이는 아마 저 영상을 수십 번도 넘게 보았을 테다.
아리키친 부쉬 드노엘
이 썸네일을 보면 "이건 아니야."라고 어느 엄마나 말하지 않았을까??
그. 러. 나 아이는 재료를 주문했고, 재료가 왔고, 크리스마스가 되었다.
케이크가 완성되기까지 10시간이 걸렸다. 오후 2시에 시작하여 밤 12시에 완성했으니.. 그 긴 시간을 혼자 서서 크리스마스에 이렇게 만든 것이었다.
먼저 롤시트를 8장 만들어서 안에 크림을 바르고 돌돌 말았다. 무슨 크림인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초등베이킹 / 초등케이크 / 부쉬 드 노엘
롤케이크를 랩으로 감싼 뒤 냉장고에 잠시 넣어두고 그 시간 동안 이끼와 버섯을 만들었다.
초등베이킹 / 초등케이크
버섯은 머랭 쿠키라고 했다. 먹어보니 머랭 쿠키가 맞았다.
초등베이킹 /초등케이크
버섯 지붕에 녹인 초콜릿을 발라서 버섯 밑부분을 붙여서 굳게 놔두면 버섯이 완성되었다. 신기하다.
초등베이킹 /초등케이크
그리고 이끼. 사실 이끼는 어떻게 만든 건지 못 봐서 잘 모르겠지만... 폭신 폭신한 빵 같았다. 맛도 빵이었다.
초등베이킹 / 초등케이크
그리고 윗부분에 크림을 바르고 옆면은 초코크림을 짤주머니에 넣고 짜준다. 이때부터 그만두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이의 끈기는 대단했다.
초등베이킹 /크리스마스케이크
나무 밑에 풀은 4가지 색의 버터크림 이랬던가?? 그걸 짤주머니에 섞어서 넣어 짜면 이렇게 된다고. 옆에서 지켜보는데 감탄사를 몇 번이나 뱉었던지.
이제 꾸미기만 남은 상태였다. 버섯을 예쁘게 올리고 이끼를 잘게 뜯어서 군데군데 놓아 꾸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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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10시간 동안 오롯이 아이 혼자 만든 부쉬 드 노엘.
우리 가족은 혀를 내둘렀고 아이는 진이 빠졌다. 케이크를 만들며 설거지만 혼자 3번을 넘게 한 아이. 나도 설거지를 그날 거들어주었는데도 다 끝나고 주방을 보니 ㅎㅎㅎ 역대급이었다는 것!!
덕분에 돈 주고도 못 사 먹을 케이크를 우리 가족은 눈앞에서 보았고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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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 아까웠으나 사진을 다 찍고 바로 딸은 케이크를 잘랐다. 안을 자르면 단면이 이렇게 된다. 맛은 초코 크레이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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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다시는 부쉬 드 노엘을 이렇게 거창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라 했다. 10시간을 만들었지만 그냥 롤케이크이나 크레이프 먹는 느낌이라며 말이다.
사실 인터넷에 찾아보면 그냥 통나무 케이크 하나 덩그러니 놔두고 7~8만 원 하던데. 이렇게 꾸민 거 사 먹으려면 10만 원이 넘겠지? 딸 덕분에 입이 호강했다.
10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얼마나 그만두고 싶었을까? 사실 나라면 중간에 포기했을 것 같다.
아이는 베이킹을 할 때 다른 사람이 손대는 걸 싫어한다. 베이킹 처음 시작할 때 나의 전제조건이기도 했지만. 그래서 나도 신랑도 그저 바라만 봐야 했다. 이것은 그냥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고 완성을 해냈다. 나는 그 부분이 대단했고, 딸이기 이전에 사람으로서 존경한다.
그날 방학 운동일지에 '10시간 팔운동'이라고 적어놓은 걸 봤다. 담임 선생님이 보시고 무슨 말이지? 하며 궁금해하실 것 같다고 했더니 부쉬 드 노엘 사진을 붙여야겠다 했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오늘도 딸은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만들었다. 덕분에 밖에서 케이크를 안 사 먹은 지 1년이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