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AT 스웨트 : 땀, 힘겨운 노동

2021.07.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by 조 뫼르소

많은 예술의 분야 중 연극을 가장 좋아한다.

다른 어떤 장르보다 실존주의적이다.

지금, 여기, 나.

그 자체가 실현되는 예술은 연극뿐이다.

얼마 전 강명주 배우가 돌아가셨다.

내가 쓰는 이야기에는 언제나 삶에 벼려 날카로운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등장한다.

강명주 배우가 이상형 중 한 명이었다.

짧은 클립을 넘겨보다 폭싹속았수다 속의 강명주 배우를 봤다.

부고 소식을 들은 후였다.

화면 속에는 여전히 살아있는 내 이상형.

내가 손꼽는 연극 중 나의 이상형 두 명이 함께 출연한 작품이 있다.

강명주 배우를 추모하며 그때의 일기를 다시 들춰봤다.

좋은 극을 보고 난 후의 신나는 마음이 글 안에 그대로 녹아 있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신이 난다.


트레이시와 오스카

내 이상형 강명주, 김세환



2021.07.

SWEAT 스웨트 : 땀, 힘겨운 노동

원래의 씀 계획은 재관람까지 하고 난 후였지만

지금의 기억을 하나도 시간에 흘리지 않으려고 재빨리 적어본다.

재관람 후, 필요하다면 또 쓰는 걸로 하고.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공연이었고

언제나 내 1등 공연이었던 ‘성’을 밀어낸 공연이었고

충만한 기분을 오랫동안 느끼게 해준 공연이었다.

분류도 많을 것 같고, 잡담도 많을 것 같고, 의식의 흐름이 가는 대로 쓸 것 같지만

감히 시작해 보는 후기

1.

극에 대한 다른 후기들을 죽 훑어보다가 대사로만 인종을 유추해야 하는 불친절함이 있었다는 글을 보았는데, 나는 그 반대였다. 런타임이 쌓여 갈수록 오스카는 왜 곱슬머리를 가졌는지, 제이슨은 왜 통 넓은 바지를 입었는지, 트레이시는 왜 저런 어휘를 선택했는지에 대한 퍼즐이 맞추어져, 수시로 아! 하는 관객으로서의 희열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맥락으로, 각각의 배우들의 캐스팅 또한 아주 적확했고 엄밀했다고 생각한다. 크리스와 제이슨의 덩치, 트레이시의 벼린 몸, 제시의 뭉근한 푼수끼.. 백 점 만점에 백이십 점. 물론 오스카는 존재 자체가 백삼십 점.

평소에도 너털한 느낌의 바를 좋아해서 극의 전체적인 미장센이 너무너무 마음에 들었다. 단골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면서 울어본 적도, 맥주를 마시며 춤춰 본 적도 있는 나ㅋㅋㅋ로서는 이질감 0. 그들 사이에 껴서 춤추며 놀고 싶다는 생각 100(극의 초반까지만). 무튼 레딩에 스탠의 바가 있었다면 나에겐 합성동에 채플린이 있다. 영원히 있어주세요....사,,,,,사,,랑은 아니고 사는 동안 많이 버세요.

또 다른 후기를 보면 무분별한 욕과 저급한 단어들 때문에 거북했다고들 하는데, 그만큼 적절할 수 있나? 싶게 잘 썼다고 생각했다. 그때 욕을 안 하고, 그때 헛소리를 안 하면 언제 해?

공연에 쓰인 음악들도 내가 좋아하던 그 시절의 음악들이라 공연 전부터 신이 났고, 기대감은 더욱 증폭되었고, 증폭된 기대감은 나를 춤추고 싶게 만들었,,,,,

블랙페이스 퍼포먼스에 대해 받아들이는 자세에서도 안경모 연출가의 의도가 1번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그의 의도로 만든 작품이니까. 적어도 예술에서는 메시지를 갖지 않은 불쾌함은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메시지를 불쾌함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배우고 또 배우자(당연히 쌍방이 선을 넘지 않은 선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뉴스들. 사회와 분리될 수 없는 개인. 사회와 언제라도 분리되고 싶은 나는 끝을 향해갈수록 매우 우울해졌다.

2.

공연 중 특히 감탄했던 부분. young배우 3인방의 표정 연기

모두 얼굴의 불수의근으로도 연기를 하시는 거 같던데,,, 어떻게 한 건지,,? 배우들은 아마 비배우들과 다른 신체구조를 갖고 있나 보다.....

끝나가는 신에서 크리스가 땀을 비 오듯 흘리는 모습이 연출이었는지, 직전의 격한 액션신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땀이 이 극의 제목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도 땀방울 하나하나에 여러 의미를 숨겨둔 것 같아 감탄했다. 그 땀 때문에 이 극이 그 어느 작품보다 보편적이라 생각했다.

여러 이유 때문에 흡연 신은 시늉만 했겠지만,, 진짜 시원하게 한 번 들이마셔주었으면(?) 했다.

3. 예술가와의 대화

런 내내 ’트레이시 쌍년‘을 속으로 외쳤다. 한편으로 이해가 되면서도,, 어쨌든 미운 건 미운 거. 예술가와의 대화에서 트레이시가 그딴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어서 마음이 누그러졌지만 그래도 오스카한테 심했음,,, 오스카한테 왜 그러는데 진짜,, 제이슨의 문신도 아마 트레이시의 영향과 분리할 수 없겠지.

극을 하나 올리는데 얼마나 많은 질문들을 하고 그에 대한 답을 매만질 시간이 필요한지 알았고,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더 고된 작업이며 더 귀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예술과 추상, 관념, 부재한 것들에 대한 갈급이 너무나 큰 사람으로서 그저 이 정도의 값으로 그 귀한 시간들을 취할 수 있음에 감사, 또 감사합니다.

핫 미디어. 직접 돈과 시간을 지불해야만 얻을 수 있는 콘텐츠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좋아한다. 기대로 한껏 부푼 마음과 감동으로 일렁이는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좋아한다. 공연 후의 대화에서 ’나 오늘 정말 잘 왔다. 행복하다.’라고 생각했다.

4.

너무나 보편적이면서도(정서, 문화 제외)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 관객 천만 명(사회 지배층 제외)이 보아도 평균 이상이 공감을 할 좋은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보편의 부분에서는 정이삭의 영화 <미나리>가 생각났고, 인종에서는 림킴(@limkim12121)노래 <Yellow>, 피켓라인에 대해서는 이란희의 영화 <휴가>가 생각났다(한국형 스웨트를 원하는 관객들은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 무주영화제에서 보고 제목이 너무 잔인한 영화라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있다. 씀으로 꺼내야 하는 미뤄둔 숙제 중 하나. 정동진영화제의 상영작으로 선정됐던데 기회가 닿는다면 또 관람하고 더 좋은 씀으로 꺼낼 수 있으면 좋겠다.).

린 노티지는 흑인, 여성의 삶은 본질적으로 정치와 경제체제 전체에 의해 규정된다고 했다. 한 인간의 본질이 인간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닌 사회적 의미에서 규정지어지다니. 나는 정말 싫다. 진짜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임.!!

5.

영어 자막이 함께 제공되는 날에 관람했다. 순간 대사를 놓치는 부분에서 재빨리 스크린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영어 잘 못함). 어쨌든(?) 놓친 대사가 거의 없었던 공연. 간직하고 싶은 주옥같은 대사들이 너무 많아 원작을 샀다. 예상대로 인덱스 엄청 붙였고 엄청 울었음,, 표현이 참신한 부분, 마음을 울리는 부분, 새로운 발견에 대한 부분을 나눠 각각 다른 색의 인덱스를 붙였다. 역시 마음을 울리는 색이 제일 많이 붙었다. 특히 스탠의 말들이 너무 따뜻해서 계속 눈물,, 스카팽도 그렇고 스씨들은 어디에서나 해결사인가 봄,,,, 스랑스럽네,,, 안녕? 난 스리야.

6. 나의 이야기

강명주 배우가 하신 말씀에 공감한다. 내 생각, 내 신념에 재질문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나도 늘 편협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을 공부한다. 그 부작용(?)으로 어느 순간부터 느껴지는 것들이 너무 많아, 작품 하나를 보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겨울 때가 있다. 이 공연이 이토록 큰 무게를 가지고 내게 온 이유 또한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등장인물 개개인이 처한 상황과 그 상황을 대처하는 기질들이 이해됐고 받아들여졌다. 많지 않은 인물의 수에도 굉장히 풍성한 공연이었다고 느꼈다.

늘 사는 게 숨차다. 체력을 더 길러야겠다.

낮 공연을 좋아한다. 특히 이맘때쯤엔 공연이 끝나도 해가 지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낮 공연을 본다. 오감이 다 열린 상태에서 극장을 나오면 저무는 해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나 생생하게 비친다. 각각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채로운 표정과 오묘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그걸 보는 재미가 있는데... 이번엔 거의 하늘이 깨진 듯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사람들의 눈을 우산이 다 가렸다. 어쨌든 으레의 수순으로 바에 갔는데, 만족감 100%의 공연을 보고 난 후의 각성 때문인지 술이 안 취해서 돈 엄청 씀. 흠흠.

7. 그리고 오스카

다른 역할들이 힘겨운 노동의 에너지를 말로써, 춤으로써, 술을 마심으로써 발산했다면 오스카는 그 에너지를 내내 자신의 속으로 품었다. 유일하게 결이 다른 인물. 아주 작은 에너지도 밖으로 흘리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

오스카의 첫 대사

- 나요?

그리고 오스카가 품던 에너지가 처음 터질 때의 대사 중

- 아무도 “안녕, 오스카”라고 말하지 않아요.

아무도 “안녕, 오스카.” 해주지 않아서 오스카는 오스카를 부르는 목소리에 눈이 굴러 나올 듯 “나요?”라고 반문했을까.

맥주병이 주는 지루한 에너지

껌딱지가 주는 끈덕진 에너지

토사물이 주는 역겨운 에너지

를 벗어낸 오스카가 시원하게 술 한잔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

tmi

왜소하고 조용한 오스카가 바 뒤에서 트레이시와 대화하는 장면을 볼 때 순간 내 주변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움츠린 채 조용히 말하고 있는 오스카가 갑자기 웅장해 보였다. 아마 그때 웅장해 보인 것은 오스카가 아니라 김세환 배우였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반한다는 것이 이런 건가..? 내가 이제껏 느꼈던 것보다 훨씬 큰 배우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채로 오래오래 연기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마지막

글은 걷어낼수록 좋다고 하던데 나는 멀고도 멀었다

나는 언제쯤 심플해질 수 있나?

어휴



이전 후기에서도 언급했듯 당시 관객과의 대화에서 ‘트레이시’가 아닌 ‘강명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 말을 떠올린다.

"내 생각, 내 신념에 재질문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나에게 울림을 준 한 인간이 이곳을 떠났다는 것이 슬프다.

어디에 있든 평화와 함께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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