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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현 Dec 29. 2020

누군가의 황금시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고

   파리의 한 골목. 자정이 되면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길 펜더는 자신이 동경하던 환상의 시대로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과거와의 꿈 결 같은 키스. 그는 현재와 과거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낭만을 갈구한다. 과연 그 나날들이 그의 낭만을 충족시켰으며, 현재는 오로지 불안정한 요소들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일까. 그의 시각에서의 과거.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의 시각에서의 현재. 두 시각이 공존하는 1920년대의 파리를 상상해보자.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이유로 황금시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황금시대라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며 <미드나잇 인 파리>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Ⅰ. 길 펜더의 약혼자 ‘이네즈’와 그의 낭만성의 관계      

 

    원초적으로, 그가 낭만을 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실의 상황 속에서 그 누구도 그의 생각과 가치관에 공감해주지도, 인정해주지도 않는다. 그러한 그는 항상 1920년대의 파리를 꿈꿔왔다. 그가 그렇게 바라 왔던 그 시대의 파리로 돌아갔을 때, 그제 서야 그는 자신과 비슷한 감성과 정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 현실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세계 속에서 써 내려간 글을 보여줘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의 낭만성은 자신이 늘 동경해왔던 1920년대의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관과 글을 알아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해 시작된 것이 아닐까.      

 

   "당신은 환상에 빠졌어.”     


    영화 속 길 펜더의 약혼자인 ‘이네즈’는 그 누구보다도 세속적이며 현실적이다. 그녀는 낭만이 가득한 도시인 파리보다도, 쉴 틈 없이 바쁘고 복잡한 미국에서의 삶을 추구한다. 조용히 파리의 거리를 거닐고 싶어 하는 길과 다르게 사교적인 파티를 사랑하고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진정한 사랑에 대한 의심도 없이 함께하고 있는 길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여행을 함께 하게 된 폴 또한 심한 잘난 체와 함께 ‘현실도피적인 성인의 콤플렉스’라 그를 비웃고 무시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이네즈는 폴의 말과 행동을 저지하기는커녕 폴의 편을 들어주곤 한다. 이러한 대립 속에서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이네즈와 아드리아나의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여기서 감독이 영화 속 표현하고자 했던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단순히 판타지적인 요소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현실의 ‘이네즈’ 그리고 과거의 ‘아드리아나’를 계속해서 대비하는 것 또한 그의 장치 중 하나였을 것이다. 길과 상반되는 것들 투성이인 이네즈, 그리고 폴과의 바람. 이네즈란 인물 또한 그의 낭만성과 극도로 대비시켜 부각하게끔 만드는 하나의 장치로 사용된 것이다.


    Ⅱ. 영화 속 예술가들, 그리고 그의 글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요소를 꼽으라면 바로 위대한 예술가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된다는 설정이라고 말할 것이다. 1920년대의 파리, 그리고 수많은 예술가들. 그는 꿈같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하며 자신만의 세계에서 동경해오던 예술가들을 실제로 만나게 된다. 소설가를 꿈꾸던 그의 입장에서 ‘스콧 피츠제럴드’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만나게 된 것은 엄청난 영광이자 자신이 갈구하던 낭만이 충족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는 처음 헤밍웨이에게 자신의 글을 읽어 달라 부탁하지만 거절당하고 그 대신 그가 유일하게 믿는 비평가인 ‘거르투드 스타인’을 소개받게 된다. 자신이 동경하던 시대 속에서 누군가 자신의 소설을 평가해준다는 사실에 그는 엄청난 기쁨과 희열감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스타인의 존재는 그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그녀는 그의 소설을 다 읽은 후 그의 작품을 평가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을뿐더러 그의 작품성을 인정해준다. 현실에서의 길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많은 예술가들과의 만남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길이 자신이 쓴 소설인 ‘골동품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 대해 헤밍웨이에게 설명하며 ‘소재가 영 아닌가요?’라고 물었을 때의 그의 대답이다.     


   "영 아닌 소재는 없소 내용만 진실되다면

   문장이 간결하고 꾸밈없다면

   그리고 역경 속에서도 용기와 품위를 잃지 않는다면"

     

   비록 그에게 자신의 소설을 평가받진 못했지만, 그의 예술관이 담긴 조언과 충고를 받을 수 있다는 건 그가 소설가가 되고자 하는 자신의 꿈에 한 걸음 나아가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영화 속 예술가들은 길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존재의 허망함에 치료약을 주는, 오롯이 자신만의 글을 쓰기를.      


   Ⅲ. 황금시대에서 그가 놓친 것     

  

  분명히 영화 속의 길은 현재를 부정하고, 황금시대로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드리아나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그의 동경의 시대인 1920년대는 그녀에게는 현재에 그칠 뿐 동경의 시대, 즉 황금시대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황금시대보다도 더 과거인 ‘벨 에포크’에 머물기를 원한다.

   길은 그제 서야 깨닫는다. 과거의 사람들에겐 곧 그곳이 현재이고, 현재의 사람들은 그 과거를 동경하고 있다는 것을. 찰나의 순간마저도 머지않아 과거가 되어버리는 세상 속에 그는 오로지 과거에만 얽매여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모두가 자신의 불안정한 현재를 부정하고 이미 지나간 시대를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후, 길은 아드리아나와 작별을 하고 현실로 돌아왔지만, 이네즈와의 결혼도 취소된다.

   여기서 다시 한번 감독의 의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감독인 우디 앨런은 영화가 극적인 요소에 빠져 허무맹랑하게 끝나지 않길 바란 것이 아닐까. 또, 그저 과거를 연모하는 현실 부적응자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등장한 인물이 ‘가브리엘’이다. 가브리엘은 곧 현실의 아드리아나로 간주할 수 있다. 길은 종소리가 파리의 거리를 가득 메워도 더 이상 자신을 데리러 오길 기다리지 않는다. 그저 걷던 와중 가브리엘을 마주치게 된 것이다. 그들의 첫 만남은 영화 속 짧은 장면이었지만, 그녀와 길은 콜 포터의 레코드판을 통해 서로에게 공감대를 이룬 것이다.      


  “파리는 비가 올 때 가장 아름답죠.”    


  결국 영화의 결말은 초반부에 보였던 이네즈의 모습과는 상반되게 비 맞는 걸 개의치 하지 않아 하는 가브리엘과 그녀의 말에 기뻐하는 길이 함께 걸어가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그 모습이 현재에서 자신과 맞는 사람을 찾아 안정을 되찾아가는 길의 노력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장면은 우디 앨런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잘 녹여낸 엔딩이 아닐까.

  물론 무에서 유로 태어나 다시 무로 돌아가듯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당연한 것이다. 누구나 환상을 가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의 삶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제대로 된 사랑을 찾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즉, 나 자신에게 먼저 솔직해져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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