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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비 Sep 03. 2020

일상의 틀을 바꾼다는 것은 세상을 새로 짓는 일

episode #04

식습관 개선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은 더 힘든 일이었다. 일상의 틀을 바꾼다는 것은 세상을 새로 짓는 일에 다름이 아니었다. 먼저 기본 중의 기본은 '수면 시각'을 지키는 일이었다. 수면시간이 아니다. 몇 시에 취침해야 하느냐가 수면시간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것은 성장호르몬 때문이다. 아이들 키 크는 데에만 성장호르몬이 필요한 게 아니다. 난포의 성장에서 성장호르몬이 중요하다. 이 호르몬이 분비되는 밤 10시에서 새벽 2시까지는 숙면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해야 한다.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시험관 시술하기 전까지 밤 12시 이전에 자 본 적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 밤 10시부터 12시까지 하는 '별이 빛나는 밤에'로 초중고등학생의 하루를 마무리하지 않으면 찝찝했다. 성인이 된 후 취침은 새벽 1~2시를 넘기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내가, 그랬던 내가 밤 10시에 누워야 했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딱히 야행성 체질은 아니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보다는 밤에 늦게 자는 것이 더 쉬운 사람인데 말이다. 


게다가 잠잘 때 무척 예민했다. 조금만 옆사람이 뒤척이거나 소리가 들려도 깼다. 안 그래도 잘 못 자는데, 남편의 귀가가 늦게 되면 더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모든 상황을 시험관 주기에 맞춰놓았다. 특히 생리일부터 난자 채취일 까지는 난자의 양과 질을 향상하려는 목적으로 수면 시각에 주의를 기울였다. 질 좋은 수면을 위해 카페인도 금하고, 자다 깰까 싶어 자기 2시간 전부터는 물도 잘 마시지 않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밤 10시 수면 시각 지키기 프로젝트는 거의 못 지켜졌다. 여러 차례 시도한 결과, 10시에 자도 숙면을 하지 못하고 12~1시쯤 깨서 화장실에 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10시는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고, 지금은 최소 11시는 넘기지 말자가 되었다. 


수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는 '수면양말'이다. 왜 '수면양말'이란 이름이 생겼겠는가. 수면양말은 발을 따뜻하게 해 주어 혈액순환을 잘 되게 하여 신경을 이완시키고 숙면에 도움을 준다. 불면증 환자에게 잠자기 전 따뜻한 족욕이나 목욕을 처방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내 경우, 늘 손발이 찼지만, 굳이 수면양말을 챙겨 신지는 않았었다. 시험관 시술의 길로 들어서면서부터 양말과 한 몸이 되었다. 아니, 한 발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사계절 내내 양말을 신는다. 봄, 가을, 겨울에는 도톰한 수면양말을, 여름에는 얇은 양말을 항상 신는다. 잘 때만 신는 것이 아니다. 하루 종일 양말과 함께 한다. 30도가 넘는 더위에도 웬만하면 양말을 신는다. 우리 집 신발장 안 여름 샌들은 골동품이 되었다. 특히 난자 채취 날이나 이식 날에는 더더욱 양말에 주의한다. 채취, 이식 때는 몇 시간 동안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는 터라 안 그래도 긴장한 손발이 더 차가워지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핫팩을 챙겨간다고도 했다. 





근본적으로 난임에서 중요한 것은 혈액순환이다. 특히 자궁으로 가는 혈액이 잘 순환되어야 질 좋은 난자가 생성되고, 착상도 잘 된다. 혈액순환에 가장 으뜸은 뭐니 뭐니 해도 '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가만히 앉아 혈액순환 개선 알약 한 알 먹는 것보다 토끼뜀이라도 열 번 하는 게 낫다. 


매일의 고정 루틴이 되어버린 것 중 하나가 '운동'이다. 예전에는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을 했다. 지방을 빼고 유산소 운동을 하고, 근육을 늘리기 위해 근육 운동을 했다. 지금은 다이어트 목적이 아니라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운동을 한다. 목적부터가 달라졌다. 그런데 나와 같은 '난소기능저하'의 경우는 과격한 운동을 피해야 한다. 지칠 때까지 하는 과한 운동은 에너지 소비가 많아 난소 기능을 더 떨어뜨린다고 한다. 그래서 난임 의사들이 추천하는 것은 하루 30~40분 정도의 빠른 걷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이다. 그마저도 매일 하기를 권하지는 않는다. 주변 사례에서도 난자 채취 전날 무리하게 움직였더니 다음날 조기 배란되어 채취도 못한 채 집에 돌아온 경우가 있었다. 


문제는 나는 운동은커녕 움직이는 것조차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데에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할 수 있는 운동은 없을까를 늘 고민한다. 물론 그런 운동은 있긴 하다. 그러나 하체를 움직여야만 하는 난저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결국 강제 요법을 사용할 수밖에. 돈을 지불해야만 움직일 동기가 생긴다. 사람들과 같이 하는 운동도 싫었고, 시끄러운 음악 속에 진행되는 운동은 더더욱 싫었다. 누구의 방해도 없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헬스를 선택해서 하루 1시간을 러닝머신으로 겨우 채운다. 운동을 싫어하는 내가 평균 주 5일 운동한다. 난임이 나를 운동하게 한 것이다.


난임에 등산을 추천하는 사람이 많았다. 의사도 그랬고, 남편의 지인도 그랬고, 블로그나 카페에서도 등산이 좋다는 얘기를 했다. 등산이 좋은 이유가 뭘까. 유산소 운동이면서 경사가 있기 때문에 하체 근육도 단련되고, 특히 자연과 함께 하기 때문이 아닐까. 일반 러닝머신에도 경사도 높여 걷기가 가능하지만, 경사도가 시시각각 변하는 등산과는 차이가 있다. 벨트 바닥이 아닌 숨 쉬는 땅을 밟는다는 것도 다르다. 무엇보다 공짜다. 그러나 접근성에 약점이 있다. 우리 집에서 산까지 가려면 버스정류장까지 가서 버스를 기다려야 하고, 이동해야 한다. 정작 등산하는 시간과 교통시간이 맞먹는다. 사실 뭐든 핑계다. 하려고만 하면 못할 것이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운동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디버든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체내 쌓인 유해물질을 이르는 말로, 화장품, 세제, 플라스틱 용기 등 화학제품을 일상적으로 사용할 때 노출되는 유해물질이다. 보통 환경호르몬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체내에 쌓이면 호르몬 교란을 일으켜 생식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한다. 2017년 생리대 파동이 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당시 생리대에 있는 유해한 화학성분이 생리통, 생리불순을 유발하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바디버든 프로젝트는 일상에서 가능한 한 화학제품 사용 피하는 것이다. 난임부부 중에 이 바디 버든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신체의 어떤 구조적인 혹은 내분비적 문제가 꼭 아니더라도, 원인불명의 난임문제에 이 바디버든 프로젝트는 유용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결혼할 즈음 다니던 교회의 청년부 목사님이 내게 이 바디버든 프로젝트를 조언하셨다. 목사님 부부도 결혼 초기 임신이 어려워 면생리대로 바꾸고, 샴푸니 린스니 화장품이니 모든 피부에 닿는 것들을 바꾸고 나서야 임신이 되었다고 하셨다. 그때 난 난임과 나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였는지 흘려 들었었다. 이제 와서야 그 얘기가 떠오른다. 


어쨌거나 바디버든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러나 단칼에 화학물질을 끊어낼 수는 없다. 그것은 도시 일상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니, 요즘은 시골에서도 힘들 것 같다. 내가 하고 있는 바디버든 프로젝트는 플라스틱 생수 대신 집에서 수돗물을 끓여 먹기, 유기농 식재료로 요리하기, 베이킹 소다나 과탄산소다와 같은 천연세제 사용하기, 안전한 화장품과 샴푸 구매하기 등이다. 아차, 가장 중요한 면생리대 사용하기도 포함된다. 매번 빨고 널어야 하는 귀찮음은 있지만, 내 몸은 소중하니까.


일상은 보다 정제된 모습으로 바뀌었다. 잘 자고, 좋은 것 먹고,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고, 땀을 흘리고, 안 좋은 것들과 멀어지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따금씩 차가운 카페라테가, 달달한 케이크가 당기고, 늦은 밤에 방영하는 '부부의 세계'를 보느라 12시를 넘겨 잠이 들 때도 있지만, 애써 지켜온 좋은 생활습관을 이내 다시 부여잡는다. 나에게는 목표가 있으니까. 혹 그 목표가 흐려진다 해도 앞날을 생각해서라도 좋은 생활습관은 계속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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