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처방전, 물망초

전설의 재해석

by 한꽃차이

독일의 전설에 따르면, 한 청년이 도나우강 한가운데 있는 물망초를 연인에게 주기 위해 헤엄쳐갔다고 한다. 그런데 꺾어오던 중 급류에 휩쓸려버렸다. 안타깝게도 그는 꽃을 던져주고 "나를 잊지 마세요"라고 외쳤다고 한다.

닿을 수 없었던 물망초 연인들

전설의 연인은 여자가 꺾어달라고 졸랐을까, 여자가 말렸는데도 남자가 멋져 보이고 싶어서 뛰어들었을까? 둘 중에 한 명은 무모했기에 나타난 결과가 아닐까? 그래도 실화는 아니겠지? 지명이 나오니 괜스레 궁금하다. 로맨스는 후루룩 국에 말아먹고 다큐 찍듯 괜한 아줌마 분석을 해본다. 물망초 줄기는 한지처럼 가볍고 흐늘거린다. 물에 휩쓸려가며 던진다고 제대로 받을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그래, 실화가 아니야 하며 오래 전의 젊은 목숨 하나 구조해본다.


짧은 첫사랑처럼 물망초는 대개 일주일도 함께 하지 못한다. 화분으로 보는 게 제일 오래 보는 방법이다.

화병에 꽂는다면 화이트나 투명 화병을 선택하고, 블루리본을 살짝 묶어 연출해주면 시원스럽다. 단단하지 않은 줄기에 솜털까지 있으니 박테리아가 잘 생긴다. 매일 물을 갈아주면서 화병을 깨끗하게 빡빡 닦아야 한다.


그래도 이렇게 예쁘고 컬러가 유니크하니까 수고스럽지 않다. 꽃이 예쁘면 됐지 무엇이 더 필요할까. 둘째가 뗑깡 부릴 때 내가 종종 하던 말처럼. "예쁘면 다야?.. 그래 예쁘면 다지 이렇게 예쁜데"


아이들을 데리고 꽃시장에 가면 첫째는 노란 꽃을 둘째는 파란 꽃을 고른다. 둘은 성격도 취향도 트럼프와 김정은이다. "옐로 앤 블루라니, 이건 도저히 조합이 안 되잖아. 어떤 플로리스트라도 이런 컬러 매치는 쓰지 않을 거야"라고 속으로 투덜투덜했다. 옐로 앤 오렌지나 블루 앤 퍼플이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그렇잖아도 예산의 한계가 있는데 내 작품에 활용할 수가 없다.


플로리스트가 쓰지 않는다고 자연이라는 화가도 쓰지 않는 건 아니다. 물망초를 처음 본 순간, 자연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리는 듯했다. "그 조합도 예뻐" 마치 시냇물만 알다가 바다를 처음 본 듯한 경외감에 사로잡혔다. 해 질 녘 하늘을 사진에 담아본 적이 있다면 노을이 만들어내는 컬러 매치에 감탄했기 때문일 거다. 사람이 만든 편견의 성벽은 자연이라는 거인에게는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한 번뿐인 삶이니까, 이왕이면 파랗기만 한 하늘보다는 노을이면 어떨까. 평탄한 하루하루를 바라지만, 내 삶이 노을인 것도 괜찮다. 성격이 참 잘 맞는 형제이면 좋겠지만 이따금 생각한다.

우리 집은 물망초다.


꽃으로 작품을 만들 때도 그냥 파스텔톤, 같은 컬러 계열이면 난이도가 쑥 내려간다. 자칫 어색할 수 있는 조합은 도전이다.


여러 컬러를 생크림처럼 버무린 플라워 케이크에 도전했다. 자칫 너무 꽉 채운 느낌이 나오기 쉬운 작품이라 하늘거리는 줄기를 가진 물망초가 없으면 답답하다. 그렇다고 물망초를 많이 넣으면 혼란스럽다. 작품의 컬러가 100이라면 포인트 컬러는 15 이하여야 통일감이 생긴다.


사람 사는 세상도 그렇다. 특별한 사람은 소수이다. 옐로와 블루를 모두 가진 꽃이 물망초뿐이듯 말이다. 체력이 좋은데 잠도 오래 자는 아이, 활동적인데 책도 많이 읽는 아이, 남편 시댁 친정 아이 모두 훌륭한 여자.. 괜히 들은 다른 집 이야기에 심란할 때 물망초 처방전을 추천한다. 복용법은 이렇게 말하고 따끔거리는 귀를 꾹 닫는 것이다.

물망초구나

그저 다른 꽃일 뿐, 당신도 당신의 삶도 이미 충분히 예쁘다. 물망초 가져보겠다고 풍덩 뛰어들지 말자. 발치에도 예쁜 꽃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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