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아니 꽤 신이 났다. 상상력이 몽글몽글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작가들이 책을 쓸 때 구체적인 독자를 떠올리면 글이 잘 써진다고 하듯, 나도 꽃 작품을 만들 때 누군가 들고 있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러다 오늘 보낼까 내일 보낼까 잠시 고민스럽다. 문화센터에서 리스 수업을 하고 왔고 밤에 할 온라인 강의 교안도 체크해야 한다. 하지만 상상력이 나를 등 떠민다. 얼른 만들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하다. 그래, 빨리 하자. 아마도 지키기 어려울 약속을 해본다.
고수동굴에는 아무래도 나이 조금 있는 분들이 많이 오실텐데.. 아, 얼마 전 자라섬에서 만난 세 쌍의 중년 부부. 그래 그분들이 딱 좋겠다. 코로나 때문에 사진 찍어달라는 부탁도 어려운 요즘. 먼저 찍어주겠다고 하신 고마운 분들이었다. 게다가 다음 포토존에서 다시 마주치자 반가워하며 또 찍어주셨다. 연신 하하호호 즐거워하셨던 그분들이 고수동굴에 가시면?
아내 1 : 지선 엄마, 여기 서서 꽃 들고 찍어봐~
아내 2 : 아유 뭘~~
남편 2 : 이런 때 아님 언제 꽃 들어 본다고 그래~ 얼른 들어~
아내 3 : 찰칵! 예쁘구먼~ 새색시 됐네!
아내 2 : 그래? 이거 파는 건가?
남편 1 : 팔긴 뭘 팔아~ 지선 아빠 아무래도 가다가 지선 엄마 꽃 좀 사줘야겠구먼?
이런 상상에 혼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장미도 몇 송이 튀지 않게 넣었다. 크기가 너무 큰가? 작은가? 몇 번을 거울에 비춰본다. 이왕이면 원피스를 입고 찍어볼까? (점점 일이 커진다) 음.. 동굴에 연인은 잘 안 오겠지만 곧 크리스마스니까 빨간 원피스를 입고 올까? 이래서 갑자기 꺼내 입은 원피스. 귀찮아하는 아드님을 꼬드겨서 사진을 찍어봤다.
구두는 설마 안 신고 오겠지? 얼마 안 된 연인이면 여리여리 생머리 그녀는 뾰족구두 신고 발 아픈 티도 못 낼 것 같긴 하다. 센스 있는 남자 친구이어서 조금만 돌아보고 커피 마시며 쉬자고 했으면 좋겠다. 어쩌면 뽀얀 피부에 부케가 잘 어울리는 그녀 사진을 보고 살며시 웨딩드레스를 떠올릴까. 이런 조합이면 진짜 부케로 이어질 듯, 괜스레 덩달아 설레인다.
여러 사람이 다루면 분명 리본도 삐뚤어지고 포인세티아도 빠질 거야. 글루건을 티 안 나게 살살 묻혀 고정한다. 보관할만한 상자가 없겠지 하고 부케 박스에 고이 담았다. 이 모든 게 다 있다니, 디테일 장인이란 역시 맥시멈 라이프의 또 다른표현이다.
이만치 정성을 들이면 조금 부풀려 말해서 입양 보내는 기분이다.
예쁘네, 잘 가서 사진을 빛내주렴
택배 상자에 취급주의 스티커를 붙여 내어놓고 현관문을 닫으니 현실로 돌아온 앨리스가 된 듯 하다.
그나저나 부케 손잡이 부분과 리본이 포인트인데.. 그 사진을 못 찍었다. 혹시고수동굴에 가면 잘 쓰이고 있는지,살짝 제보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