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11월
선생님께
25년 만에 편지를 보내요. 세월 참 빠르죠... 해마다 11월이 되면 생각이 철새처럼 그날로 날아가 갈대섬인 듯 머무르곤 했어요. 어제 같은데, 그토록 생생한데 이제야 마음을 툭 털어보네요.
잘 지냈냐고요. 아니 이런 정갈한 서울말 말고, 정겨운 경상도 사투리로 말씀하시겠죠.
"잘 지냈나 반장. 별일 없었재."
선생님도 참... 25년 내내 무탈한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어요. 그래도 올해 11월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서 기뻐요. 생각해보면, 편지는 힘들 때도 쓸 수 있는 건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요.
"그래 어케 살았노"
너무 긴 세월이라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음.. 11월만 추려볼게요. 제 인생 노트에는 유독 11월마다 태그가 붙어있거든요. 20대 초중반은 휘리릭 넘기고 싶은 페이지예요. 스물한 살 11월에 몰려온 쓰나미로 쭈글쭈글하죠. 인생도 노트도 젖으면 다림질이 안 되고 마르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그래도 그 굴곡 덕분에 꽃을 많이 끼워뒀어요. 사람 친구보다 꽃 친구가 좋았거든요. 사람을 만나려면 돈도 있어야 하고 힘든 얘기도 한두 번이지 어느 정도는 즐거운 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시죠? 꽃은 그렇지 않았어요. 항상 그 자리에서 저를 기다렸고, 내년에 보자는 약속을 반드시 지켰어요.
남편을 알게 된 것도 스물일곱 살 11월이에요. 3년 후 11월에는 용기를 내서 공예를 배우기 시작했고요. 손을 쓰는 게 얼마나 좋았던지 일주일 내내 그날만 기다렸죠. 그다음 11월, 작은 빌라 신혼집에 늘 친구들이 북적거렸고요. 둘째가 뱃속에 있던 11월에는 처음으로 꽃을 배웠어요.
둘째는 아기 때 아팠어요. 아, 지금은 건강해요. 아이 아픈 것만도 충분히 힘든데 그게 엄마 탓이라는 말들이 괴로웠어요. 사람을 피해 동굴로 숨고 싶던 시간, 꽃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저 곁에 있어주었어요. 옮겨 다니며 살았던 집들이 감사하게도 꽃시장에서 가까웠고요.
그저 좋았어요. 면접은 영 가능성이 없고, 과연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 나 참 잘 살아왔다 싶었어요. 다른 활짝 열린 문 없어도 닫힌 문 앞에서 돌아나오는 발걸음은 폴짝모드로 선택하는 제가 혼자 대견했어요. 수능점수가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못하듯 제 삶은 이 합격 여부를 폴짝 뛰어넘을 테니까요. 진짜 남는 건 그걸 어떻게 겪고 다른 내가 되었나 뿐이더라고요. 게다가 제게는 가족에 좋은 사람들에 꽃 친구까지 있잖아요.
올해 11월은 꽃 같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꽃수업도 꽃일도 가득했어요. 인생노트에 조그마한 정원그림을 그려넣은 것 같았죠. 물론 인생이 소설처럼 딱 떨어지진 않아서, 가끔 주머니에서 지나온 사막 모래가 후두두 떨어지기도 해요. 좀 당황스럽지만, 그게 사막에서만 피는 꽃을 아는 사람들과의 연결고리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야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용기도 생겼나봐요.
"많이 늙었네"
라고도 하시려나요. 그럼요, 그때의 선생님보다 열 살이나 더 먹은 걸요. 큰 아이가 열 살이고요. 아직 제 나이도 우리 아이 나이도 낯설어요. 그런데 나이보다 낯설지 않은 게 있어요. 선생님께서 그렇게 가신 후 제 삶에는 죽음이 늘 실재했어요. 꽃이 필 때가 있고 낙엽이 질 때가 있듯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는게 11월마다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죠. 머나먼 얘기 남의 얘기가 아닌 바로 오늘 내게도 올 수 있는 바이러스 같은 것이었어요.
그게 되나
그러게 말이예요. 그래서 어렸을 때가 중요한 건가봐요? 참 신기하죠. 그래서 사는 것도 사람도 더 소중하다는게요. 내년 11월까지, 저는 또 많은 문을 두드릴거예요. 아시죠? 닫혀도 어떻게 돌아나올지. 그리고 좀더 툭툭 털어가며 살게요. 반장을 믿어주셔서 삶에 중추돌을 남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 꼭 드리고 싶었어요.
- 더 잘 늙은 모습으로 연락드릴 수 있길 바라며, 반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