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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꽃차이 May 16. 2024

책 쓰는데 3년이나 걸렸다

스타벅스에 12만원을 썼다

몇주만 바짝 몰입하면 책이 나온다는데, 나는 왜 그게 안 될까? 아무리 앉아있어도 글이 안 써지는데, 혹시 성인ADHD 아닐까?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


작년 이맘때, 최고 매출을 달성했다. 그러면 짜잔 하고 책이 마무리될 줄 알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하고픈 얘기는 그런 게 아니었다. 문제는 그런 게 아니면 뭔지는 모르겠다는 것! 그즈음 내 자신에게 많이 했던 말은 이것이었다. '징하다 징해'


아니 2년 넘게 붙잡고 있었으면 됐지, 이렇게 노력해서 이만큼 이뤘다고 하면 됐지, 넌 대체 뭘 쓰고 어떤 결론을 내고 싶은 거니?


여름 내내 묻고 또 물었다. 조금은 알 듯 해서 가을부터 다시 썼다. 11월에 투고를 해서 3월초에 나오면 좋겠다, 생각했다. 삶이 슬픔과 그리움에 온통 잠기는 일이 생기면서 도저히 글이 써지지 않았다. 이번 봄을 놓치고 싶지 않은데, 내 책은 봄에 나와야 하는데 - 다시 1년이 미뤄지는 건가 답답했다.


누군가는 내 책이 위로가 될 거고, 누군가는 내 책을 기다리고 있고, 누군가는 내 책 덕분에 시작할 수 있을거야.


그 마음으로 매일 스벅에 앉아있었다. 5시간을 앉아있어도 A4 한 장이 안 써지는 날이 수두룩했다. 지나보니 그달에 스벅에 12만원을 썼다. 내 원고를 읽어주고 좋다고 해주고 조언해준 사람들, 기다린다고 해주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지나보니 많은 시간이 걸려야 했던 책이었다. 3년이 걸린 덕분에 이런 것들이 거르고 걸러 담겼다.

5년동안의 온갖 도전과 스토
겪어봤기에 줄 수 있는 나만의 팁과 노하우
온전히 걸러진, 순화된 감정
내 얘기를 하고픈 글이 아닌 들어주는 글

그 여름의 지독한 고민도, 그 가을의 원고를 온통 뒤집고 다시 쓰는 시간도, 그 겨울의 혹독한 고통과 눈물도

모두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그 시간을 지나온 흔적이 담겨있어서 감사하다.


나는 왜 이리 더딜까? 남들은 뚝딱 하는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지금 이 시간이 필요해서일거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고 꽃 그림자에 숨어 보냈던 시절을 되돌아보았다. 덕분에 누군가 머물러 갈 수 있는 마음 정원이 생겨 있었다. 꽃에게 받는 위로와 응원으로 소소하게 유지되는 자투리땅이다. 그저 버티는 나날이 얼마나 힘든 건지 알기에 정체되어 있는 사람을 보면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가 아니라 ‘저게 제일 힘든 거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거겠지.’ 싶다. 나룻배로 떠내려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게, 모터보트로 거슬러 오르는 것보다 힘든 법이다.
- '지친 날이면 꽃이 말을 걸어왔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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