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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꽃차이 May 17. 2024

카페 운영의 쓴맛을 본 덕분에, 산수유

2가지 잃고 2가지 얻었어도 흑자

숨길 것까지야 없지만 굳이 먼저 밝히지도 않는, 반그늘 같은 이력이 하나 있다. 카페 위탁 운영 3개월. 나지막하고 오래된 건물이 다닥다닥 모여 있는 청파동, 그중에서도 낡고 작은 건물 2층이었다. 한 명만 지나갈 수 있는 가파른 나무계단을 오르면 좁다랗고 긴 창문이 4개, 테이블이 4개쯤 있고 4명쯤 복닥거리며 앉아서 모임을 하기 좋은 온돌방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서 보낸 가을, 2가지가 없어졌다. 하나는 하고 싶은 일에 쓰려고 모아 둔 귀여운 액수의 비자금. 하나는 작은 공간을 갖는 로망.


고정비와 오픈 시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월세, 재료비, 전기세, 냉난방비 등 다달이 나가는 돈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각각은 얼마 안 되는 듯한데, 훅훅 커지는 앞자리 숫자가 아무래도 잘못 계산한 듯 느껴졌다.

‘어디 보자…. 한 달 운영일 25로 나누면 ○만원, 그럼 하루에 커피 ○잔은 팔아야 인건비는 빼더라도 적자라도 면하는 거네?’

이런 계산을 어림잡아 휘리릭 하고 시작하다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니 끼니를 챙겨 먹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편하지 않았다. 막연하게나마 마음을 먹었다. 가만히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대신에 누군가가 불러 주는 일을 해야겠다고.


대신 2가지가 생겼다.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력 그리고 공간 운영 비용 계산력. 누군가의 공간에 갔을 때 나는 그곳을 유지하기 위해 감내하고 있을 수고가 먼저 보인다. 밥은 제때 먹을까, 마음을 어렵게 하는 손님이 오지는 않을까, 잠시 쉴 곳은 있을까. 비용 계산도 저절로 된다.


시도의 결과는 성공과 실패로 나뉘는 게 아니라 성공과 배움으로 나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 경험이 생각났다. 로망도 좌절과 실현이라는 두 갈래 길로만 향하는 게 아니다. 현실적인 소망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인테리어와 보증금 등 초기 비용, 매달 고정 비용,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은 시간을 생각하면 아직은 공간 없이 버티고 싶다. 그 다짐이 결핍이 아닌 선택으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자리 잡은 건 지난날의 시도 덕분이다. ‘나는 공간이 없어서 못 해.’ 대신에 ‘공간이 없어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방법을 찾게 됐다. 집 안에 꽃 냉장고와 개수대를 들였다.


비슷한 배움이 쌓이다 보니 이 탐색로가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공간이 없는 덕분에 더 장점이 있을 거야.’라고. 지키고 앉아 있어야 할 시간도 공간도 없어서 나는 어디든 갔고 천여 명에게 꽃을 나눴다. 아이들이 할 일을 하는 옆에서 한석봉 어머니처럼 내 일을 한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도 수업 준비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불확실한 고객을 기다리는 대신 불러 주는 수업을 하러 가는 게 좋다.


꽃을 물에 꽂아 두어 줄기가 물을 빨아올려 싱싱하게 만드는 것을 ‘꽃에 물을 올린다.’라고 한다. 그 전에 줄기와 잎을 손질해야 하는데, 이것을 컨디셔닝(conditioning)이라고 한다. 물을 올리기 좋은 최상의 컨디션을 만드는 것이다. 잎과 꽃은 물을 나눠 갖는 사이이기 때문에 잎은 일부러 두는 몇 개(꽃 종류에 따라 0~3개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제거해야 한다. 특히 물속에 잠기는 부분에 잎이나 가시가 있으면 물이 부패한다.


꽃 수업 때 이렇게 알려 드리면 “잎도 예쁜데!”, “아까운데~.” 하시곤 한다. 하지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인생처럼. 좋아하는 일은 일단 시작하라고들 한다. 일단 공간을 열면 어떻게든 월세를 감당하게 되어 있다고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모두에게 맞는 말도 아니다. 고려 요인의 가중치는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이다. 걱정, 다른 소중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뇌의 일정 부분을 차지해 버리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기쁨이 움츠러들 수 있다.


그러니 나는 왜 시작을 못 할까 자책하지 않아도 괜찮다. 누구나 가는 길 대신 다르게 고민한 덕분에 더 나다운 길을 가게 될 수 있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소심하게 시작해도 충분하다. 아직 꽃샘바람이 패딩을 넣지 못하게 하는 초봄, 가장 먼저 피는 산수유의 지혜처럼 말이다.

꽃샘바람은 손이 거칠고 크다. 산수유꽃은 면적이랄 것이 없이 아지랑이 같다. 꽃샘바람의 손에 잡힐 게 없다. 눈에 확 띄는 대신 ‘일단 시작! 살아남기부터!’를 택했다. 작은 것이 큰 것을 이기는 현장이다.


“왜 공간 안 오픈하세요?”, “꽃집 안 하세요?”라고 많이들 묻는다. “저는 수업이 더 좋아서요.”, “수업이 많아서 운영을 못 해요.”라고 대답한다. 사실은 더 하고 싶은 말, 주고 싶은 격려가 이렇게 많았다. 공간이라는 한 가지 요인을 ‘덕분에 탐색로’에 올려놓으니 다른 요인들도 같은 탐색로를 따라 움직였다. 이제 생각하니, 그 3개월은 평생 남는 장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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