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게 끝냈어."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이 존재하나요?
"우린 모두 여러 존재로 살아간다.
감정이 상하는 이유는 내 감정에 올인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올인해서 상한 감정은 회복도 어려울뿐더러 위험 부담이 크다."
- 저자 김은주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살에게>> 中 -
무엇이든 균형을 잃을 정도로 하나에 관심이 치우칠 경우, 그 한 가지를 잃었을 때 타격감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열과 성을 다했던 무언가 신기루처럼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일상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나는 27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8개월이 채 되지 않은 짧은 연애를 통해서 뼈저리게 느꼈다.
이성 친구와의 관계에서 안도감을 느끼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살면 안 된다고. 자기 계발 보다는 잠깐의 휴식이 좋았고, 직장에서는 욕심 없이 주어진 일만 묵묵히 해냈다. 연애 기간 동안 나의 유일한 낙은 연인 관계에서 오는 쾌락이었다. 직장 내에서 업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감싸 매는 게 아니라 이성 친구에게 전화를 하며 위로받으려 하기 급급했다.
이별 후 여자친구라는 직위를 박탈당했을 때는 내 삶을 송두리째 잃은 기분이었다. 나는 그 남성의 여자친구 역할에 심취하여 그 본분만 다 할 뿐, 다른 역할은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밸런스가 틀려먹은 것이다.
그의 이별 통보 하나에 나의 일상은 무너지고 말았다. 매일 밤 자책과 후회에 잠 이루지 못 했고, 9일 동안 끼니를 거르면서 스스로를 갉아 먹고, 또 갉아 먹었다.
하지만, 이별 통보는 앞서 말한 것처럼 내게 부정적인 영향만 끼친 것은 아니다. 폭풍우는 예고도 없이 날 찾아왔지만, 그 폭풍우는 나태함까지 휩쓸어 갔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아성찰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지만, 이번 연애는 달랐다. 이 남자와 연애를 하면서 상처를 받지 않았다.
이 남자의 이름 석자를 떠올려보면, 좋았던 기억들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많은 사람들 속 말 한마디 없이 과묵했지만, 홀로 빛났던 첫 만남부터 이별 후 같이 관람한 전시회까지.
불타는 뜨거운 사랑을 했던 것은 아니다. 연인들이라면 습관처럼 말하는 '사랑해' 한마디조차 우리는 안 했으니까 말이다. 서로에 대한 감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딱' 그 정도까지 좋아한다고. 서로 계산적으로 사랑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 연애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헌신'이라는 단어는 이번 연애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관계에서 큰 상처를 안 받았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관계가 내 일상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는 점이겠지.
당연하게 여겼던 존재가 곁을 떠나면서 내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되었다. 머릿속 많은 서랍 중 한 감정 서랍이 요란스럽게 들썩였다. 그러더니 자책이란 감정이 툭 떨어지며, 바닥에서 꾸물거렸다. 꾸물거리다 못해 요동쳤다. 마음이 쓰여 자책을 계속해서 들여다봤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자책은 이때다 싶어 나를 잡아먹었다. 스스로를 연민했다. 며칠이 지난 후 꾸물거리는 자책 뒤로 좋은 추억이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그 추억들이 내 머릿속뿐만 아니라 그 남자의 머릿속에도 있다는 것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뒤죽박죽된 머릿속을 하나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서랍을 열어 추억을 고이 넣어두었고, 그다음 자책을 안아주었다. 자책은 그제야 꾸물거림을 멈추고 알았다는 듯이 스스로 서랍으로 돌아갔다.
'일상을 되찾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연애의 끝이 슬프지만은 않았다.
그가 없었더라면 나는 현재에 만족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이별을 했는데 이리 큰 가르침을 줄 남자가 과연 어디 있을까? 나는 진정으로 그의 앞길이 창창하길 응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진흙 길을 걷는다면 자갈 포대를 지고 가서 그의 앞길에 깔아줄 것이다. 내가 이성적으로 좋아하기 전부터 인간적으로 좋아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 남자의 기억 한켠에 나와 '우리'였던 시절이 남아있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 만족한다.
아름다운 이별은 없을 거라고 장담했지만, 세상은 장담할 수 없는 일들이 허다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