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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거북 Nov 17. 2015

쉬니게 플라테 / 골든패스

in Schynige Platte

* 20150915


아침에 일찍 일어난다고 일어나서 쉬니게 플라터로 이동했다. 뭐 잘 움직이고 좋았는데 그 와중에 올라가다가 엉뚱한데서 내리는 일이... 이제 매일 벌어진다. 오늘은 노인네들이 다 내리는걸 보고 젊은이들도 따라 내렸던건데 알고보니 노인들끼리 무슨 와인파티를 하려고 한정거장 먼저 내린 것. 낚인 한국인들은 다음 차를 타고 올라갔다.


모두 함께 엉뚱한 역에서 내려 시간 죽이는 중인 한국인 커플들.


여긴 초기 융프라우 등산열차의 흔적이 남은건지 경사도 안높고 기차도 옛날거다. 그리고 아주 느릿느릿 올라간다. 이래저래 딱 노인정 기차인데... 끝까지 올라가니 꽤 경치도 좋고 고지대 못지 않다. 솔직히 딱 한코스만 갈 수 있다면 내 생각엔 이 쉬니게 플라터를 가장 추천하고 싶다. 케이블카라면 피르스트. 정작 융프라우 정상은 중간에 터널뿐이라 감흥이 덜하다.


꼬마기관차가


꼬마 객차를 달고 올라간다.


넌 누구냐 -_-


올라가니 이동네 악사들이 아방가르드 뮤직을 선사.


쉬니게 플라터는 소박한 볼거리가 두가지 있다. 하나는 인터라켄 양 옆의 호수가 한번에 보인다는거. 또 하나는 쉬니게 플라터 역 바로 옆에 조성된 이상한 화원. 인터라켄은 이름부터가 inter lake니까 호수 사이의 지역이다. 여기서 보면 나라도 저 지역에 집짓고 살겠다 싶은 곳이다. 두 호수는 물 색깔이 다르다. 미네랄 차이겠거니 싶다. 


오른쪽 호수


왼쪽 호수. 그 사이가 인터라켄.


이상한 화원에는 여기가 나름 희귀식물이 자라기 좋은 곳인지 역 바로 옆에 애매하게 이런저런 식물들을 심어놓았다. 봄되면 더 보기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좀 부실. 그래도 정말 특이하게 생긴 꽃들이 좀 있었다. 이름도 모르지만 꽃들은 가끔 보게 된다.


이름모를 괴 플라워


중간에 개를 데려오신 노부부가 계셨다. 심지어 개도 눈썹이 하얘서 형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나이를 여쭤보니 7살이라고. 역시 칠순이셨... 그런데 할머니 말씀이 충격적이다. "먹는거 아니에요. 호호" 농담이었지만 아 이게 참 웃을 수만은 없는 농담이다.


칠순견.


기차가 예상외로 너무 느린데다가 여기서 좀 빈둥거리니 시간이 꽤 지났다. 그래서 결국 하더 쿨름에는 못갔는데 뭐 별게 있겠나 싶긴 하다. 그래서 그 좋다는 골든패스를 타러 역으로 이동. 저녁먹을 시간이 없어서 쿱에 들더 닭다리 하나 사서 뜯었는데 고기를 기차역에서 뜯자니 좀 처량하기도 했다. 그래도 빵 고기 과일 3종세트로 배를 채우고 움직였다.



먼저 쯔바이짐멘까지 이동. 스위스 시골은 마치 전역이 골프장인 느낌이다. 잔디가 너무 이쁘게 잘 깔려있고 끝이 없다. 이동하는 세시간여 내내 그랬다. 그리고 차를 갈아탄 뒤 몽트뢰까지 이동. 쯔바이짐멘 지나고부터 불어로 방송이 나온다. 나중에 몽트뢰 도착하고 나서는 다른 기차를 탔는데 거기서는 이태리어 방송까지 나왔다. 독불이영 4개국어가 난무하는 지역이 요 근방 분위기다. 그 무국적의 느낌이 마음에 든다.


잔디가 어디나 뽀얗다.


골든패스라는 자부심 가득한 이름을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천혜의 지역에 살면 그정도 자부심은 안생기기도 힘들거 같다. 가장 중요한건 조화다. 일단 녹지의 아름다움도 꽤 인공이 많이 들어간 느낌이지만 뭐 이건 자연을 받은거라고 치고 넘어가자.


일단 집. 집들이 빠글빠글 모여있지 않고 비교적 점점이 뿌려져있으며 일단 높은 집 자체가 없다. 그리고 집들이 갈색이나 고동색 계열로 무채색의 느낌이 나기 때문에 자연에 비해 튀지 않는다. 원색은 녹색과 꽃들에게 양보했다. 한국의 허접한 네온사인 따위는 아예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소박한 조화의 일관성이라는게 상당히 훌륭하다.


마찬가지로 기차도 우리처럼 삶과 격리된 형태가 아니다. 녹지와 철길 사이에는 소가 돌아다니지 못하게 쳐둔 철조망 하나가 다이고, 사람들은 쉽게 철길을 건너다니곤 한다. 기차가 지나가면 길에 잠깐 차단기가 내려올 뿐인데 이놈도 아파트 주차장 차단기보다 작다. 그래서 기차가 삶을 단절해놓지 않는다. 우리의 철길을 살펴보면 철길 양쪽은 심한 단절감이 있다. 내가 오래 살던 상계동은 옆에 창동이 있고 창동은 국철구간이다. 그러니까 기차역이고 지상에 깔려있다. 이 동네를 다녀보면 이 철길 좌우로 생활권이 거의 완전히 구분된다. 난 어릴때 창동 지나서 어디 가본 일이 거의 없다. 그건 그동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수유리쪽으로 가거나 그 동네 애들이 노원역에 올 때는 모두 지하철을 타고 왔다 거리상으로는 자전거로도 충분히 올 수 있는 곳인데도 말이다. 이건 국철구간이 일제때부터 있던 것이고 그 이후 지속적으로 그 동네 사람들의 생활을 단절시켜왔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여긴 그런게 없다.


기차와 자연이 공존한다. 


집과 기차 말고도 많은 것들이 자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형태로 이루어졌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오래도록 쌓인 것 아닐까. 나는 이런게 정말 부럽다. 꼭 스위스같지 않아도 좋으니 그들 삶의 현명함을 배우고 싶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훨씬 고된 시간들을 보냈고 그동안 얘들이 쌓아둔 것이 있잖은가. 산업화에서 따라갔다면 이 '오래된 미래'를 좀 더 배웠으면 좋겠다. 그런데 현실은 제2의 새마을 운동 타령... 정말 민도가 낮은 나라는 분명 아닌데 집합적으로는 왜 이리 교양없는 나라인건지... 도통 알수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해지는 몽트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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