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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거북 Dec 10. 2015

스트라스부르

in Strasbourg

* Lausanne - Strasbourg

* 20150917


새벽같이 일어나서 기차타는데 성공했다.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하면 열시쯤 될 것이다. 이제 주머니에 남은 20프랑 정도를 써야 한다. 어제밤에 뭐라도 먹었어야 했거늘 이래저래 꼬여서 뭘 먹질 못했다. 일단 빵과 콜라를 하나 사니 10프랑 ㅋㅋ 계속 대충 쓰고 지냈지만 이거 12000원이다. 한국물가 딱 두배쯤 되는 느낌이다. 그거 씹어먹으면서 바젤까지 갔고, 중간에 졸아서 좋았다.


아직 십몇프랑이 남아서 바젤역의 쿱에 들어갔다. 시간도 20여분 있다. 그래서 동전까지 계산해 뭔가 샀는데 거슬러준다. 그래 내가 산수를 잘 못하지 하면서 다시 뭘 샀는데 또 거슬러준다. 어라라 세번째 샀는데 다시 거슬러준다. 그러면서 남은거 몇프랑이라고 알려주네. 알고보니 동전 크기가 0.2 > 0.1 > 1/2 이런 순서였던거다. 즉 0.5프랑짜리를 나는 계속 0.05정도로 계산하고 있었다. 거기 분명 1/2 Fr. 이라고 써있었는데 그걸 눈으로 보면서도 0.05로 계산했다. 지금까지 동전이 얼마짜리인지도 모르고 스위스에서 일주일을 뭉개고 살았네. 사실 0.05짜리 동전은 좀 너무 깨알같은거 아닌가 싶은 생각을 했었다. 그럼 의심도 했어야지 -_- 크기에 완전히 속았다. 직관에 반하는 동전 크기는 각성해라. 스위스 동전은 생긴게 좀 구리다. 지폐는 너무 화려해서 좀 어색했고. 디자인으로 봐서는 유로가 더 나은거 같다.


이런 뻘짓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31번 플랫폼을 찾아가야 하는데 시간은 5분남았고 플랫폼이 안보인다. 물어보고 한참 뛰어가서 기차 겨우 잡았다. 아놔... 나름 국경 넘어간다고 플랫폼이 저 멀리에 있었다. 그래서 지금 프랑스 땅인거 같다. 이 기차는 프랑스 기차인듯 뭔가 때깔이 스위스 기차보다 나쁘다. 아까 한시간이상 졸았더니 더이상은 못자겠다. 그래서 귀에 이어폰을 꼽고 멍하게 있었다. 정말 몰입해서 멍하게 있었던건지 금방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해서 놀랐다. 마치 타임슬립을 한 느낌.


비오는날 뭐라도 먹겠다며 밥집을 찾아나섰다.


내리면 비가 짠하고 멈출줄 알았는데 계속 오고있다. 맞고다니면 충분히 젖을거 같은 가랑비다. 인포 들러서 지도도 하나 사고 24시간 교통카드도 사서 버스를 탔다. 숙소는 금방 찾았다. 요즘 유럽은 호스텔들이 점점 좋아지고 있어서 몇몇 곳은 시설이 아주 좋다. 여기도 그랬다. 여긴 로비에 애들이 놀고 먹을만한 곳을 만들어놨고 이건 어떤 호텔에서도 볼 수 없는 호스텔만의 장점일 것이다. 다른데서는 다 뻥뻥 잡히는 와이파이가 잘 안잡히는게 단점이지만 그것도 괜히 잠안자고 뻘짓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아닐지.



짐을 부려놓고 먼저 선배형이 알려주신 밥집을 찾아가봤다. 대성당 옆이라니 못찾아도 상관없네 싶어서 구글맵이 시키는대로 가봤더니 금방 나온다. 음 이래서 다들 어떻게든 데이터 연결해서 다니려고 하는구나 싶다. 유심사고 뭐하고 귀춘해서 나는 그냥 와이파이 있으면 쓰고 없으면 말자 주의. 르 그뤼베르라는 이 식당은 맛 이전에 일단 이쁘다. 작은 공간을 깨알같이 이용하고 있다. 게다가 오래된 곳 같은 느낌까지 살아있어서 여기서는 꼭 뭘 먹어야겠다는 기분이 든다. 노인들만 바글거리지만 한자리 낑겼다. 


유럽에서 맛본 맥주 1등이다.


음식 이름은 뭔지 몰라도 보니까 참 심심한 음식이다. 베이스로 먹는 시큼한 양배추 절임 위에 소세지와 베이컨 등이 올려진 단순한 음식. 먹을만했다. 맥주가 정말 훌륭했는데 시원한 느낌을 온도가 아닌 맛으로 일단 만들고 와인향같은게 아주 살짝 들어있는 에일이었다. 이런 맥주도 있는데 한국의 맥주라는 것들은 정말 ㅠㅠ 일본 생맥주 한잔에 만원씩 주고 먹는건 정말 아까웠지만 요 맥주가 7유로인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천천히 음미하고픈 맛. 지금 기차 안인데 그 맥주가 테이블위에 있으면 딱 좋을것 같은 기분이다.


비온다고 유람선 뚜껑이 덮여있다


나와서 여기 한바퀴 도는 배시간을 알아보러 갔더니 지금이라고. 비도 오는데 배나 타자 싶어 얼른 탔다. 스트라스부르 중심 구시가는 생긴게 여의도같은 느낌이다. 아마 평수도 여의도 정도 되지 싶다. 여의도와의 큰 차이라면 여긴 세계문화유산이라는거. 이 배는 그 섬을 한바퀴 돌아준다. 돌면서 다른 배들처럼 설명이 헤드폰으로 흘러나오는데 한국인 유학생이 녹음해준건지 목소리가 귀엽다. 저 다리는 애원의 다리입니다. 죄지은 사람들이나 간통하다가 결린 여자들을 빠뜨려 죽었다고 해요... 뭐 이런 내용을 밍밍한 톤으로 말한다. 비가 와서 천장을 덮고 다닌지라 경치를 즐길 수는 없었다. 여기 뭔가 양쪽 수위가 다른건지 갑문식 운하다. 물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배가 다닐때 수위를 맞춘다. 배가 다니는 계단이다. 이거 다 돌면 한시간이다. 


대성당, 여기도 한 뽀대 한다.


이 배를 타서 유럽의회 건물까지 볼 수 있었다. 하나의 유럽이라는 발상을 할 수 있는 동네라는게 부럽다. 여긴 다닥다닥 붙어있고 지속적인 교류를 해온 역사가 있다. 하나의 동북아 이런건 생각할 수 없잖은가. 중국은 중화주의로,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으로 생각해보긴 했겠지. 한중일 사이에는 일단 바다가 있고, 나라간 크기 차이가 워낙에 커서 대등한 관계라는건 애시당초 존재하질 않았다. 근대화 과정에서는 서구에게 털리는 와중에 또 서로 털어먹는 사이였고. 일본은 아직도 과거사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 한자문화권이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참 다른 나라들. 동남아는 더하다. 여긴 입지 문제도 복잡하지만 언어 문제가 어마어마하게 복잡해서 서로 같이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것 같다. 유럽대륙의 언어들의 친족관계는 필리핀 내의 언어 상황보다도 훨씬 단순하다. 필리핀만 해도 개별 섬의 언어 - 주변부를 아우르는 언어 (타갈로그어 같은) - 영어의 삼중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 언어상의 복잡도가 결국 신분도 규정하게 되고 서로의 교류를 막는 주요 원인이 되는 상황. 아프리카도 언어간의 복잡도가 매우 높다. 유럽이나 동북아는 그에 비하면 아주 단순. 


유럽은 문화적인 교류의 양과 질에서 어디보다도 수준이 높기 때문에 이런 발상이 가능했던 것이다. 어제까지 있던 스위스의 레만호 근처도 이태리어 프랑스어 독일어가 공존했지만 스트라스부르도 마찬가지다. 독일과 프랑스가 번갈아가며 다섯번 이상 국적이 바뀌었고 프랑스 문화와 독일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신교도와 구교도도 공존해왔다고 한다. EU의 주축이 독일과 프랑스니까 그 사이의 스트라스부르는 유럽의 수도가 될 자격이 충분했다. 


구시가 전반에 멋이 있었다.


한바퀴 돌고나와 성당도 들어가보고 옆의 구텐베르크 광장도 보고 이동네 교보문고인 클레베 서점에도 갔다. 성당은 AFC이긴 하지만 여기도 나름 대성당이라서 멋있다. 150년 이상 지었다고. 여기 말고도 이 작은 지역에 다른 성당이 눈에 보이는 것만 두개 더 있었다. 나름 종교적 사연들이 있다고 들었다. 구텐베르크야 뭐. 여기서 인쇄술을 완성했다고 한다. 구글과 함께 텍스트를 다루는 장인들... 음 재미없나. ㅋㅋ 클레베 서점은 큰 곳이었는데도 아까 먹은 식당과 같은 아기자기한 면이 있었다. 층마다 장르도 다르고 인테리어도 장르에 맞춰 다르게 꾸며놨다.


품위있던 클레베 서점


서점 하니 대만에서 봤던 성품서점이 생각난다. 거긴 24시간 오픈이고 주저앉아 책 읽을 곳이 많았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들렀던 많은 중고책방들. 다시 말해 서점은 지역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오프라인 서점 태반이 이미 망했고. 동네마다 알라딘 중고서점 체인이 생기고는 있는데 거기서 무슨 문화가 생겨날지는 과연 두고 볼 일이다. 잘 되어봐야 일본의 북오프 정도 이상은 어렵지 싶다. 지금까지 느낌으로는 다들 집에 안보는 책들을 없애서 과자도 사먹고 공간도 만들자... 이런 수요를 해결해주는 곳 아닐런지.


생각보다 외국어사전 코너가 형편없었다. 반면에 불어사전의 종류는 매우 많았다.


여기 사전을 살펴보다가 좀 놀랐다. 불어에 관한 사전은 다양했다. 어원사전 시소러스 라틴어사전 등. 그런데 불영, 불독, 불이, 불서 사전들이 양과 질 모두 형편없었다. 강한 언어를 가졌기 때문인가. 꼭 여기 뿐 아니라 유럽애들은 이중언어사전을 잘 안보는거 같다. 독어 공부하면 독일 사전을 보는거 아닌가... 이정도의 느낌인듯. 언어간의 유사성이 높아서 쉽게 유추가 되니까 덜보는 것일수도 있다. 이미 있는지 모르겠으나 유럽 공동의 사전같은게 있으면 좋을 것도 같다. 기본어휘들 간의 유사관계도 정리하고, 국가들간에 교양으로 알면 좋을법한 내용들로 예문을 삼는거다. 공통점을 강조하는 사전. 공통 어근을 찾고.


어딘가 판가게


이제 음반점을 볼 차례인데 여기 음반점은 로잔에 비하면 실망스러웠다. 구색도 가격도. 나름 프랑스 록 음반들을 한쪽에 모아두긴 했지만 충분한 양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정작 귀한건 옛날 가요 음반인 것처럼 어떤 음반점에 가도 자국 음반들이 별로 없다. 죄 영미쪽 뿐이다. 그래도 판 넘겨보는 재미로 슬슬 한번 훑었다.


대성당쪽으로 가겠답시고 좀 걸었으나 길을 잃어 지도를 한참 봤더니 반대쪽인 근현대미술관쪽으로 왔다. 미술관은 포기한 상태였지만 건물이나 한번 구경할까 하고 조금 살폈고 그 옆이 쁘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는 성병, 아마 매독을 프랑스에서 왔다고 믿었다 한다. 그래서 매독을 쁘띠 프랑스라고 불렀는데 이 지역에서 매독환자들을 몰아두고 치료(?)를 했다고 하여 지금도 쁘띠 프랑스라 불린다고 한다. 작고 이뻐서 쁘띠가 아니다. -_- 작고 이쁜건 맞지만 여기 건물들은 어떻게 봐도 독일이지 프랑스가 아니다. 여러가지로 모순된 이름.


쁘띠 프랑스, 그새 날이 갰다.


저녁에 공연도 봐야하니 배를 채울겸 추천받은 호프집인 오 브라쇠르 au brasseur에 갔다. 역시 대성당 옆이다. 여기도 꽤 분위기있는 펍이었다. 일찍가서 나름 해피 아워다. 맥주 300 시키면 500을 준다. 아까 먹은 맥주만은 못했으나 먹을만 해서 홀짝거리고 있는 차 옆테이블에 경상도 사투리가 막 들려온다. 이번 여행에서는 자꾸 대구쪽 사람들을 보게 된다. 스위스에서도 대구 커플을 만나서 처음에 일본인인가 하고 잠시 귀를 기울이게 했었는데 그래도 이 친구들은  말은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다. 유학생들로 한명은 건축, 한명은 디자인. 말로 때우는게 아니라 뭔가 보여주면 되는 것이라 그래도 좀 낫댄다. 선배형이 프랑스철학으로 박사를 했다고 했더니 자기들은 불어로 그런거 하라면 죽어버릴거라고. ㅋㅋ 이 친구들의 고민은 벌써 뭐먹고 살 것인가이다. 한국 사정을 모르는게 아니니까. 윗세대가 너무 기회를 안준다고 생각중이었다. 디자인하는 친구는 억압적인 한국 미술교육에 질린데다가 어린 나이에 이미 갑질의 피곤함도 경험했나보다. 이래저래 그들의 현실인식은 비교적 정확해보여서 유학온거 잘했다, 눌러앉아라 정도의 얘기를 나누었다.


시간이 이르므로 손님도 없다.


하늘 참 그림같구만 -_-


이제 좀 익숙해졌기때문에 버스와 트램정도는 잘 탄다. 공연장까지 트램을 타고 갔다. 오늘은 스웨덴 데스메탈 밴드 샤이닝이 공연하는 날이라 밖에 메탈틱한 옷차림의 젊은이들이 쪼로록 줄을 서있었다. 오렌지색의 등산용 바람막이를 입고간 아시아 남자는 참 그 사이에서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나두 메탈 좋아한단다 얘두라...


메탈청년들


공연은 쏘쏘. 오프닝을 한 프랑스의 그레잇 올드원즈 The Great Old Ones는 너무 전형적인 데스메탈이고 템포가 느렸다. 샤이닝이 힘과 연주면에서 훨씬 나았지만 그들도 작곡이 너무 단조롭다고 할까. 공연장은 좀 인상적이었다. 꽉 채워봐야 200석도 안나올 좁은 공간이다. 홍대로 치면 프리즘홀 정도나 될듯. 그런데 그런 곳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밴드들이 나와 공연한다. 칠드런 오브 보덤, 피어 팩토리, 크래들 오프 필스 같은 메탈밴드들 공연이 9월 10월 일정도 쭉 잡혀있었다. 비메탈로는 존 메이올, 텐 이어즈 애프터, 낫위스트, 미야비, 패트릭 왓슨 등의 이름이 보였다. 그런 뮤지션들 공연을 15~30유로만 내면 볼 수 있다. 유럽에서 물가대비 제일 싼게 공연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는 7만원부터 시작인듯. 내가 점심식사로 먹은게 맥주포함 25유로였다. 


뭐 이런 분위기의 블랙메탈 공연이었다.


이제 홍대는 나름 세계적인 수준의 음악문화를 가지고 있다 봐도 좋다. 공연장도 많고 공연도 많고 잘하는 밴드들도 많다. 바세린이나 크래쉬 정도만 있었어도 오늘 했던 샤이닝 정도는 발라버릴 수 있었다. 공연장을 다들 많이 찾아서 훌륭한 공연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 일본 오는 밴드들 잘 잡으면 서울에서도 수준높은 공연들을 만들 수도 있으니까. 아직 서울의 공연 레퍼토리는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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