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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졸린거북 Dec 13. 2015

앙제

in Angers

* Strasbourg - Angers

* 20150918~20


알람을 잘못맞춰놨지만 귀신같이 기차시간에 늦지않게 일어났다. 여행의 긴장감이란~ 머리도 못감고 나와서 역쪽으로 열심히 걸었다. 앙제까지 바로가는 차가 많지 않아서 꼭 이걸 타고싶었다. 보통은 파리를 거쳐가는 차다. 사람들이 알자스는 콜마르라며 가보라고 알려줬지만 내 프랑스 여행은 공연이지 관광이 아니므로 과감하게 스킵하고 예정대로 이동. 오늘 숙소는 오랜만의 에어비엔비다.


이 공연을 보겠다며 여기까지 온 것. 세계적인 인디밴드들이다.


오자마자 늦게오래고 헤매고 난리다. 비도 오고. 요새 방향감각에 문제가 생겼나 자꾸 엉뚱한 곳으로 간다. 이상한 곳에서 케밥이나 먹고. 주택가에는 로또가게나 보이고. 쇠한 지방도시같은 느낌이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확인해보니 반대로 왔길래 다시 기차역쪽으로 간다. 내가 노선표 보고 고민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프랑스 처자 뭔가 안되어 보인건가 길 가르쳐줄까 하면서 호의를 보인다. 얘는 영어도 잘 못하면서 용감하게 말을 건 것. 내가 잘못왔고 거꾸로 가려 한댔더니 저기 보이는 트램을 타랜다. 잘못온건 표지판 하나의 방향이 이상했기 때문. 내 잘못만은 아니지만 자꾸 헤매는건 어쨌거나 나, ㅎㅎ


Émile Signol / Réveil du Juste, Réveil du Méchant


이러구러해서 비도 오고 하니까 안되겠길래 미술관에 들어갔다. 좀 지겨워서 안가려고 했지만 가보니 또 볼게 있다. 큰 미술관은 큰대로 작은곳은 작은대로 볼게 있는게 신기하다. 작은곳에는 나름 동네 화가들 작품이 있다. 유명하지 않은 작가들 작품에는 가끔 묘한 개성이 드러나곤 한다.


Auguste Couder (1789-1873) : Scène de Roméo et Juliette.


그 외에 어떤 그림들이 있는지는 여기를 가보시라. http://notesdemusees.blogspot.kr/2009/03/angers.html


시간이 되어 숙소로 찾아가는데 버스를 거꾸로 탔다. 기사 아저씨는 영어를 전혀 못하시고... 나는 꽤 가다가 거꾸로 탄걸 알고는 내려서 다시 돌아갔다. 이렇게 비맞으면서 고생고생 했지만 가보니 집은 넓진 않아도 편안하게 있을만한 곳이었다. 오래간만에 혼자 자게 생겼다. 아주머니에게 설명듣고 바로 공연장으로 이동. 이걸로 앙제 첫날 종료.


음 전혀 본 기억이 안난다. ㅎㅎ





일어나니 아침 먹으라고 토스트와 시리얼을 꺼내주신다. 채식주의인지 우유가 아니라 두유다. 계란이 없어 아쉬웠지만 맛나게 먹었다. 이 집에는 고양이가 한마리 사는데 이놈이 아주 애교있다. 새침떨고 그러지 않고 방방 뛰어다니는 기운찬 놈이다. 얘 하는 짓을 보면 웃음이 나왔다. 혼자서도 잘 노는 것 같고.



시내로 나가서 시티 센터 구경을 했다. 어제 좀 헤매서 이제 자연스럽게 버스비도 내고 그랬다. 이동네의 중심지는 요새. 성이라고 할 수도 없고 강변에 세워진 요새가 있다. 별로 크지도 않고 딱히 볼것도 없는. 


요새의 해자. 앙제 사람들에게 이 요새는 사랑받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안에 태피스트리가 있다. 그리 수준높진 않아도 시골냄새가 나는 태피스트리로 내용은 요한계시록인 모양인데 그걸 30장 정도 되는 태피스트리로 수놓았다. 그리스 로마신화나 바이블의 내용이란건 교양인가 아닌가. 내겐 둘다 썩 교양이라고 할만한 내용은 아니지만 서구인들의 과거는 그것들이 지배했고 미술이나 건축을 이해하려면 그것들을 알 필요가 있긴 하다. 그림을 봐도 내가 아는 소재를 다뤘다면 그 그림이 다른 그림과 어떤 차이가 있나를 생각해보게 되지만 전혀 모르는 내용이라면 그냥 넘어갈 뿐이다. 특히 중세 그림들은 그 스타일만 눈에 들어올 뿐 내용은 까막눈. 몰라도 좋지만 알면 좀 더 좋은 것들이겠지.


이게 말이여 사자여. 중세 동물 그림은 어처구니없기로 유명하다.

더 많은 중세동물 그림 개그를 보고싶다면 http://mashable.com/2014/06/24/weird-medieval-animals


나같은 비종교인에게도 이런 성물들이 주는 짠함은 느껴진다.


https://ko.wikipedia.org/wiki/INRI


그리고 성당이 두어개 있어서 그것들에도 잠시 들렀다. 성당들도 나름 분위기가 다 다르므로 예전엔 그냥 AFC니까 넘어갔으나 요샌 조금이라도 앉아있다가 온다. 가끔 양초도 켜고 나온다. 심심한 공간에서 편안한 공간으로 느낌이 조금 바뀌었다. 조금 늙은 것이다. ㅎㅎ


AFC


중간에 판가게가 보여 잠시 들렀는데 여긴 공간을 펑펑 낭비하며 조금 클럽느낌을 주었고 맥주도 파는 곳이었다. 그 분위기가 참 좋았다. 이정도 되는 곳이라면 가끔 와서 아지트삼아 있다가 가도 좋겠다. 판이 많진 않았으나 주인이 장르별로 조금씩 셀렉션한 취향이 느껴졌다.


내가 사갈만한 판은 없거나 비싸서 판 대신 맥주를 하나 달라고 했다. 여기는 힙하게도 페스티발 관련 음반을 따로 모아뒀길래 그걸 뒤적거렸드만 나에게 말을 건다.


힙한 음악만 골라서 파는 패기넘치는 판가게, 엑싯 뮤직.


: 페스티발 보러온거야?

:: 응 어제 본 것들 중에서는 멜빈스가 제일 잘하더라고.

: 멜빈스 아쉬웠어. 더 강했어야지... 옛날엔 더 잘했던거 같은데...

:: 아니 그정도면 정말 파워풀한거 아니야? 나는 정말 뻑갔는데.

: 아냐아냐. 그걸론 부족해. 다음엔 어디로 가?

:: 파리로 가. 가서 킹 크림슨을 보려고.

: 킹 크림슨? 그 옛날밴드? 안죽었어?

:: 응 잘 살아서 라이브도 하고 라이브 앨범도 내는걸.

: 와 대단하다. 나는 언제부터 안들었는지 기억도 안나.

참 패기 넘치는 아줌마다. 주인이라면 컬렉션으로 보아 취향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공간 낭비가 무쵸 심하다.


공연장으로 가는 길은 버스를 탈수도 있었지만 강가를 따라 걸어왔다. 역시 여행은 날씨가 좌우한다. 나름 긴 거리였으나 즐겁게 걸어갈 수 있었다. 가는 길에 프랑스의 동춘서커스가 개장한 모양인데 시간도 없고 해서 그냥 지나왔고, 장 물랭이라는 레지스탕스의 동상이 하나 있었으며 그 뒤에 있는 대학도 물랭, 내가 건너온 다리도 물랭이었다. 이동네 체 게바라인듯. 찾아보니 여기 출신은 아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Jean_Moulin


한국에서 망해나간 까르푸가 여기에서는 롯데마트쯤 되는 위상인듯 어딜 가나 있었다. 쁘랭땅 백화점도 스트라스부르에서 봤다. 이렇게 공연장에 가서 둘째날도 종료.

강변 걷는건 그냥 옳다.




세째날에는 일어나보니 일요일이라고 근처에 장이 섰다. 그래서 짬을 내어 잠시 들렀는데 시장은 언제가도 재미가 있다. 도저히 어떻게 먹는건지 모르겠는 야채들과 음식들을 잔뜩 판다. 2-30%는 한국에서 못본 것들인듯. 그리고 맛좀 보자고 하면 다들 조금씩 잘라줘서 즐겁다.


역으로 가는 버스가 일요일에는 별로 없다면서 주인 아주머니가 역까지 태워주셨다. 적당히 자상해서 부담스럽지도 않고 편안한 공간을 내주신 분이다. 자기는 프랑스가 좋댄다. 날씨도 좋고 사람들도 좋고 먹을것도 좋고.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을것 같다. 구린 프랑스 음악/영화 때문에 이미지가 썩 좋진 않았는데 이들의 다정함 때문에 프랑스가 좀 좋아졌다.


그런데 얼마전에 파리에서 테러가 있었지. 아줌마의 똘레랑스에는 어떤 영향을 줬을까. 지금 전 유럽에서 극우파 지지도가 올라가는 중이라 한다. 프랑스는 테러 직후 곧바로 시리아에 보복폭격을 가했고, 그 과정에서 민간인에 대한 배려 이런게 별로 없었다고 읽은 것 갈다. 관용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https://ko.wikipedia.org/wiki/2015%EB%85%84_11%EC%9B%94_%ED%8C%8C%EB%A6%AC_%ED%85%8C%EB%9F%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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