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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덱시 Oct 23. 2020

epilogue. 작고 오래된 집에 살면 가난한 걸까





 제주에서 서울 밑자락 경기도로 이사를 했어도 우리집은 여전히 오래되고 작았다. 근데 이상한 건 여기로 이사 온 후부터 생전 들지 않던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작고 오래된 집에 살면 가난한 걸까
 




  여름이 끝나가고, 해가 지면 열기가 가신 바람이 이따금 불어와 땀을 식혀줄 무렵 제주를 떠나 왔다. 우리로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올해 초부터 극성이었던 코로나는 연이 회사 제주 사무실의 매출을 뚝 떨어뜨렸고 그 여파로 제주 사무실을 그대로 두느냐 없애느냐 하는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결과는 뻔했다. 제주 사무실이 공중분해된 것이다. 우리에게는 둘이서 고생 고생하며 고친 첫 집을 떠나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적어도 2년에서 3년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땀과 돈과 품을 들인 것이었는데 우리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세 달 간 고친 집에서 고작 1년 2개월을 살고 이사를 해야 할 판이라니. 온갖 정성을 쏟아부어서 그런지 나와 연이에게 제주집은 ‘내 새끼’ 같은 존재였는데 그런 집을 두고 가야 했다. 우리 둘은 크게 상심했지만 슬퍼할 시간도 없이 급하게 제주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그곳을 떠나 왔다. 고양이, 강아지와 함께 생활해야 해서 집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어떤 분께 세를 놓고서. 세입자와 동물들이 조금이라도 불편함 없이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 우리가 살 땐 돌부처처럼 참고 살았던 갖가지 문제들을 모조리 해결하고 올라왔다. 그럼에도 걱정되는 건 매한가지였다. 웬만큼 낡은 집이어야 말이지.


  기름보일러는 틀기만 하면 깡깡 거리고, 집으로 올라가는 통로와 층계참의 페인트칠은 여기저기 벗겨지는 중이고, 겨울이 되면 플리스를 하나 껴입고 있어야 할 정도로 추웠지만 그런 집에 1년 넘게 살며 단 한 번도 스스로가 궁색하게 느껴진다거나 우리의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이 원망스럽다거나 한 적이 없었다. 집 하나를 반 쯤은 직접 수리했다는 사실에 도취되어 그랬던 건지, 아니면 그 지붕 밑에서 지지고 볶는 생활이 지나치게 행복해서 그랬던 건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 세계에서 우리답게 사는 게 부끄럽지만 않으면 되었다.








  우리 세 식구(나, 연이, 마농이)가 이사를 한 경기도 집은 신기하게도 제주집과 나이가 비슷했다. 평수도 15평으로 같았다. 주거 형식이 아파트라는 것만 다를  똑같이 작고 오래된 집이었는데 며칠이 지나자 영문 모를 서러움이 밀려왔다. 오래된 집의 문제가 하나둘 밝혀지면서부터다. 현관에 신발장이 없어서 새로 사야 하는 것. 화장실 전등 스위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그중에서도 보일러 온도 조절기가 없는 건 정말이지 충격적이었다. 나에게 보일러 온도 조절기는 너무나 당연한 존재였기 때문에 집을 볼 때는 신경도 안 쓰다가 이사를 끝내고 나서야 화들짝 놀라 집주인과 부동산에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오래된 아파트라 원래 그런 방식이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보일러를 켜려면 벽장문을 열고 바닥에 철퍼덕 앉아 핸드폰 플래시로 안쪽을 비춘 후 밸브를 열어야 했다. 수동으로 밸브를 열어 뜨거운 물을 들여오는 구조였다. 집 전체가 따뜻하길 원한다면 부엌, 거실, 안방, 옷방 이렇게 방별로 나뉘어 있는 밸브를 낑낑거리며 다 열어야 했다. 이런 집에 처음 살아보는 우리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너털웃음을 지으며 다음에 이사를 간다면 어떤 집으로 가고 싶은지, 집에 관한 위시리스트를 공유했다. 나는 보일러 온도 조절기가 있고, 방도 세 개고, 20평이 넘고, 주변에 단골로 삼을 만한 카페와 빵집이 있고, 빌트인 수납장이 넘치도록 많아서 수납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신축 건물로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위시리스트를 모두 충족시키는 집으로 이사를 갈 수 없었던 이유는 오로지 하나 ‘돈’ 때문이었는데,  그 사실을 깨닫자 나는 조금 서러워졌다.




    돈만 많았으면 더 좋은 집으로 갈 수 있을 텐데, 돈이 없어서 보일러 온도 조절기도 없는 낡은 집에 월세를 주고 살고 있어.






  어휴 못났다. 이사를 하고 두 달쯤 지난 지금 생각하면 저런 못난 생각을 한 과거의 나 자신에게 잔소리를 잔뜩 퍼부어 준 후 꿀밤을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초반에는 정말로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광교에 있는 연이의 대학 친구 집에 놀러 갈 일이 있었다. 그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의 5년 차 직장인이자, 궁한 대학생 시절에는 돈을 아끼려고 삼시세끼 빵만 먹고 산 적도 있다고 하는 독한 남자다. 그런 그가 5년 간 회사를 다니며 모았을 돈이 얼마나 될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열심히 모은 돈으로 어떤 집에 살고 있을지도 궁금했다.



  그가 사는 광교는 신도시라 그런지 모든 게 깔끔했다. 낡은 구석이라고는 없었다. 김(편의상 김이라고 하겠다)의 집도 도시의 이미지와 다를 바 없었다. 김의 집에 들어선 나는 우와우와를 연발하고 여기저기 훌렁훌렁 열어 보면서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빌트인 수납장이야!’를 외쳤다. 신축 오피스텔인 김의 집은 우리집이랑 평수는 비슷했지만 훨씬 더 넓어 보였고 화장실도 두 개인 데다가, 파우더룸, 옷장, 팬트리까지 빌트인으로 구비되어 있어 없는 게 없었다. 팬트리 문을 여니 조명이 자동으로 들어오며(와우!) 안쪽을 밝혔고 그 안에는 빅토리아 탄산수, 하리보 젤리, 밤양갱 같은 김의 귀여운 기호 식품들이 대량으로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집 구경을 대충 끝마친 후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 김이 준 비타민 물을 마시며, 나는 ‘이건 빼박 성공한 싱글남의 집이다’라는 평을 남겼다. 요즘 지어지는 집과 30년 전 지어진 집의 간극을 체험한 후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


  연이와 나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너네 집 진짜 좋다’, ‘이게 딱 우리가 살고 싶었던 스타일의 집이야’ 같은 말들을 계속 반복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진짜로 그렇게 느껴서 하는 소리였다. 우리가 아닌 ‘김’이 사는 김의 집에는 김의 취향과 생활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방 하나는 김이 열광해 마지않는 레고로 가득 차 있었는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 경기장 레고 세트는 레고 세트보다 값이 더 나간다던 진열장 안에 소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침실에는 비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계와 컴퓨터도 보였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고 하기에는 모든 게 잘 정리되어 있고 깔끔했다. 김의 성격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우리가 이 집에 살았다면 또 달라질 모습이겠지. 어떻게 달라질까. 이쪽에는 책꽂이가 있을 거고, 저쪽에는 주방도구들을 보기 좋게 진열해 놓은 큰 선반이 있을 거고, 저기에는 큰 화분, 가장 중요한 다이닝 테이블은 여기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왜 김의 집에서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우리의 삶은 광교에서 20분쯤 떨어진 낡은 아파트의 14층에 있는데. 남의 집이 얼마나 좋은지, 얼마나 새것인지가 무슨 상관이냐는 말이다. 우리집은 비록 쭈그려 앉아 보일러를 틀어야 하고, 30년이나 되었고, 구조가 개떡 같아서 같은 평수의 오피스텔보다 좁아 보이지만, 그곳에는 우리 털뭉치 마농이가 있고, 칵테일 리큐르들이 가득한 빈티지 트롤리가 있고, 몇 번을 고민하고 산 빈티지 조명이 올라가 있는 책상이 있고, 욕실 앞에는 내가 종종 쇼핑을 하는 빈티지 옷가게 사장님께 선물 받은 러그가 깔려 있다. 그런 집은 온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다.









 나는 내가 작고 오래된 집에 살아도 내 나름대로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제주에서 연이와 오래된 집을 고치고 그 집에서 살게 되면서부터 나는 서서히 그런 사람이 되어 갔는데 환경이 급격하게 바뀌며 그 사실을 잠시 깜박한 거였다. 그놈의 보일러 온도 조절기가 안 보이는 바람에. 중요한 건  어떤 집에 사느냐가 아니라 그 지붕 아래에서 어떤 삶을 이어 나가느냐인데. 어떻게 사느냐인데. 창문과 보일러가 덜컹거리는 집에 살면서도 편안하고 고요했던 그때의 마음을 생각한다. 때로는 사랑으로, 때로는 익숙함으로, 때로는 새로운 다짐들로 충만했던 그때를 떠올린다. 여기서도 그렇게 살면 되는 거지 뭐. 내 기쁨은 이 작고 오래된 집에 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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