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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덱시 Dec 06. 2022

스스로에게 잔혹해질 때면






  할머니 집에 가는 걸 싫어했다. 우리 할머니는 나를 강아지처럼 마냥 귀여워해 주지 않았다.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제주에 내려가면 공항에 마중 나와 있던 할머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탐탁지 않다는 듯 툭 내뱉었다.





 “네가 아들이었어야 했는데.”





  나는 그 한 마디에 몇 번이고 상처받았다. 사춘기 10대 소녀가 서른이 훌쩍 넘은 어른이 될 때까지 이 말이 유령처럼 따라다니리라는 사실을, 할머니는 꿈에도 몰랐을 거다. 할머니는 어쩌다 나와 내 동생들에게 도미노 피자를 사줄 때면 세상에 이런 할머니가 어디 있냐며 틈만 나면 생색을 냈다. 제주에서 귤 장사로 성공해 부자 축에 끼는 그녀였다. 하지만 나는 도미노 피자를 사주며 위세 좋게 떵떵거리는 할머니보다 손녀를 흐뭇하고 포근한 눈길로 바라봐 주는 보통 할머니를 원했다. 할머니는 여자를 그저 남자 뒷바라지하는 존재로 여겼고, 주위 사람들이 자기 기준에 조금이라도 미치지 못하면 악담을 퍼부어 상처를 입혔다.


  소녀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뭐라도 하나 잘 해내지 못하면 할머니에게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뭐든 1등을 해야 한다는 내 집착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할머니에게 인정받으려면 공부라도 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나는 할머니에 대한 반항심으로 엇나가는 대신, 다니던 중학교에서 전교 1등이 되는 편을 택했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어 스스로를 보호하기. 그건 내 선에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어수단이었다.


  할머니는 첫째 손녀가 전교 1등이라는 사실을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내가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걸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네가 아들이었어야 했는데.”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계속 잘해야 했다. 나는 점점 ‘무언가를 잘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규정짓는 사람이 되어갔다. 할머니와 만나는 빈도가 줄어들었을 즈음에는 이미, 제일 잘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시작조차 하지 않는 이상한 습성까지 생겨났다. 제일 잘하지 못하면 내가 쪼그라드는 것 같았고, 두려웠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을 견딜 수 없었다.




✦✦✦





  요즘의 나는 잘하지 못하는 것투성이다. 아니, 못하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번역도, 유튜브도, 배운 지 두 달 된 수영도, 잘하지 못하지만 그냥 한다. 최근 나의 최대 고민은 ‘어떻게 하면 평영 할 때 가라앉지 않을 수 있을까’. 개구리처럼 다리를 구부렸다가 뒤로 힘껏 차는 발 동작을 정확히 두 번 하고 나면 야속하게도 몸이 가라앉는다. 선생님이 아무리 자세를 고쳐줘도 나아질 기미가 없어서 이제는 유튜브에 ‘평영 할 때 가라앉지 않는 법’을 검색하기에 이르렀다. 연이는 그런 게 고민이라니 행복한 거라고 했지만 나에겐 꽤나 중대한 스트레스다. 나만 못하는 것 같은 기분 때문이다. 자유영과 배영을 배울 때는 나보다 한참 뒤처지던 한 아저씨조차도 나보다 평영은 잘한다. 근데 더 좌절스러운 건 나랑 같이 초급반을 시작한 여자애 한 명이 수영을 너무 잘해서 바로 옆 중급반 레인으로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두 달 전만 해도 나랑 같이 숨쉬기 연습을 하던 그 여자애는 이제 접영을 배운다. 걔가 중급반 레인에서 인어처럼 우아하게 웨이브를 하고 있으면 나는 초급반 레인에서 마음처럼 안 되는 평영을 해보려고 개구리처럼 발버둥 치면서 부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나는 뒤처진 것이다….


  또 하나. 한 달에 한 번씩 줌으로 만나 번역 공부도 하고 상황을 공유하던 스터디 멤버 중 한 명이 첫 역서를 계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가장 먼저 샘플 번역 의뢰를 받아서 조금 우쭐했던 게 어제 같은데, 나는 샘플 번역에 떨어졌고 그분은 합격한 것이다. 순간 조급하고 우울해졌다. 스터디하는 사람들 중 내가 제일 마지막에 데뷔하면 어떡하지 하는 유치하고 일차원적인 걱정도 함께.




‘나만’, ‘나보다’, ‘가장 먼저’, ‘제일 마지막에’.




비교의 언어들이다. 요즘 하고 있는 일들은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해서 남들이 얼마나 빠르게 가든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형성된 나의 잔혹한 습성이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하지만 노력으로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렸을 때나 가능했다. 진짜 세상에서는 어떤 한 가지 분야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조차도 마음처럼 쉽지 않다. 나는 번역도, 유튜브도, 수영도 제일 잘하지 않는다. 그 사실이 가끔은, 아니 꽤나 자주 나를 힘들게 한다. 꼭 그런 것들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의 우울감은 대부분 비교에서 오는 것 같다. 잔혹하게도.




✦✦✦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 우울감의 끝은 고작 ‘인스타그램 지워버리기’였다. 하지만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었다.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니까. 종종 인스타그램을 하더라도 사각형 이미지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내가 되고 싶었다. 요즘엔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아, 나 지금 남과 나를 비교하고 있구나.

그러니까 우울하지.

근데 뭐하러 쟤랑 비교해?

왜 쟤랑 나를 비교해서 굳이 우울해지기까지 하는 거야?

쟤가 잘하는 게 있고 내가 잘하는 게 있잖아.

쟤는 그만큼 더 열심히 했으니까 잘하는 걸 수도 있어.

사람이 어떻게 다 잘하냐고.

아니, 그리고 제일 잘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한테 이렇게 잔인하게 굴 건 또 뭔데.



  굳이 비교를 하지 않으려 하기보다는 비교하고 있다면 왜 하고 있는지, 그래서 지금 내 감정 상태가 어떤지 살핀다. 마치 나에게 고민 상담하는 친구를 바라보는 것처럼. 그리고 친구에게 말해주듯 ‘야, 너 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라고 말해준다. 틈날 때마다 스스로를 남과 비교하며 못 살게 굴던 나에게 이건 매우 큰 변화다. 아마 이 변화는 그럴싸한 타이틀들(전교 1등, 공무원 같은)을 전부 벗어던지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시작된 듯하다. 아이러니하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기 싫어서 그토록 발버둥 쳤었는데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는데도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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