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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Feb 16. 2024

음력설도 끝, 진짜 2024년이다

세츠분으로 봄의 기운을 만끽하는 일본

우리와 같이 음력 설을 쇠는 나라는 중국 등 12개 나라라고 합니다. 이제 음력 설도 지났으니 완전한 2024년입니다.   리턴한 새해... 이제 와세 새해복을 말하는게 좀 뜬금없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길거리에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도 없고, 귀성 러시 보도도 설 특집 방송도 예전만 못하니 설의 느낌이 좀 덜해지는 것 같습니다. 구정은 일제 강점기 우리의 설날을 부정하기 위해 사용된 말이니 구정이라는 말대신 음력설이라는 말이 좋겠습니다. 


생각해보면 2024년이 시작되고도 한 달하고도 열흘이 지난 이 시점에 지인들에게 다시 새해 인사를 할 수 있어 좋고, 새해에 다짐했지만 지키지 못했던 걸 다시 다짐할 수 있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본은 음력 설을 지내지는 않지만, 입춘(立春) 전날을 세츠분(節分)으로 지냅니다. 동지 때처럼 대두를 신단 위에 올려놔 신이 깃들도록 합니다. 이 콩을 복콩(福豆)이라고 하는데 신이 깃든 복콩은 「오니(おに)」를 몰아내는 힘을 갖게 됩니다. 복콩을 현관 밖으로 던져 「오니(おに)」가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데 이걸 「마메마키(豆まき) 」라고 합니다.







세츠분(節分)에는 왜 「오니(おに)」가 찾아오는 걸까요? 계절이 바뀌는 마디(節)라서 그렇습니다. 마디라는 건 틈새가 있다는 거고, 삶의 틈새가 생기면 마음이 병이 드는 것처럼 계절의 틈새로 스며든 나쁜 기운은 우리 몸의 상태를 무너뜨려 감기몸살, 장염, 배탈 등을 일으키는 겁니다. 원래 「오니(おに)」는 「음(陰)(おん)」이라는 한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기(気), 주로 나쁜 기운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일본의 오니는 우리의 도깨비와 달리 머리에 뿔이 있고 빨간 피부에 호피 무늬 팬티를 입고 있는데. 그건 오니가 사는 「귀문(鬼門)」이 축인(丑寅)에 있어 「소(丑)의 뿔」과 「호랑이 송곳니」 즉, 호랑이 옷을 입은 모습으로 묘사되는 겁니다. 「마메마키(豆まき)」는 늦은 밤에 해야 하는데 죽음을 의미하는 불운한 기운은 북에서 그리고 밤에 오기 때문입니다.



동지 때에는 주로 집에서 「마메마키(豆まき)」를 하지만 세츠분은 거대 신사에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건 세츠분이 민간신앙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봄 신이 잊지 않고 찾아온 걸 감사하는 의미도 들어있는 세츠분 행사에 많은 사람이 신사를 참배하는데 특별한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예로부터 일본은 봄은 거져 오는 것이 아니라 봄신이 찾아와 줘야 봄을 맞이할 수 있다고 믿어왔기에 봄의 도래는 감사하고 기쁜 일인 거죠. 


전국에 10만곳이 넘는 신사는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도의 신들을 모시는 시설입니다. 신사에는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등장하는 일본 고유의 신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왕가의 조상신, 다른 나라 신, 원령, 신이 된 인간, 그 외에도 후지산 등과 같은 영산, 숲, 폭포, 바위 등도 신격화하여 모시는 신사도 있습니다. 하지만 울창한 자연과 나무로 둘러싸인 신사는 일종의 파워 스폿이지만  정작, 참배하는 많은 일본인은 실제로 어떤 신이 모셔져 있고 어떤 기능을 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의 어느 동네에도 있는 신사. 신사는 아무데나 세워도 되는 걸까요. 아님 신사(神社)를 세우는 곳은 달리 있는 걸까요? 신사를 세우면 거기에 신이 오는 걸까요? 


신사는 신이 계신 곳으로 대자연의 「기(氣)」 즉, 에너지가 모여있는 곳이고 여기에 신사를 세우는 겁니다. 그런 곳을 「용맥(龍脈)」, 「용혈(龍穴)」이라고 하는데 주로 그런 곳은 신들이 산다고 알려진, 녹음이 무성한 곳들입니다. 그런 곳에 신사를 세워 나쁜 기운(액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결계(結界)를 치는 것이지요. 혹여 불순한 것들이 들어왔다손치더라도 그곳에 들어가면 힘을 잃고 정결해지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본 애니에 자주 나오는 결계(結界)란 불교 용어로 수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비구의 의식주(衣食住)를 제한하는 걸 의미하지만, 밀교가 융성한 일본에서 결계는 일정 지역을 정해서 장벽을 치는 걸 의미합니다. 일종의 방어막 같은 개념으로 공격, 이동을 차단하여 상대방을 가두거나 혹은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걸 의미합니다. 신사는 그야말로 결계가 쳐진 곳으로 일본 애니를 보다 보면 오니에 쫓기는 사람이 신사로 도망하는 장면들이 그려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신사, 거기에 신사참배. 우리에게는 듣는 것으로도 거부감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일본이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조선인들에게 참배를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고초를 겪게 하였던 상흔이 여전히 깊게 남아 있기때문입니다. 게다가 메이지유신 직후 국가를 위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모실 목적으로 건립된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에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국가유공자로 합사되어 있는데 그곳을 보수 정치인들이 참배하는 모습을 본 저희로서는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신사참배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신사를 둘러볼 기회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참배가 내키지 않는다면 간 김에 올해의 운수를 뽑아보든지, 아님, 안전, 합격, 인연, 건강 등 원하는 소원의 부적(오마모리,お守り)이라도 재미 삼아 사보시면 어떨까요, 그 자체가 특별한 종교적 의미를 지니지 않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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