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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Aug 07. 2024

혼자가 좋아, 리아츄(リア充)는 거부한다



2010년 1월 31일 NHK에서 방영한 ‘무연사회, 무연고사망(無縁社会~無縁死)’이라는 방송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무연사회(無縁社会)라는 방송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가족, 직장, 잘 알던 지역에서 연이 끊어져 버린 사람들이 어느새 잊혀져, ‘신원 미상의 자살, 행려사망, 아사, 동사’ 등의 무연고사망(無緣死)자로 처리되는 경우가 연간 3만2천명에 육박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버블경제 붕괴 이후 가족, 사회, 공동체의 해체가 본격화되기 시작하였지만 이 조짐은 고도성장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70년대가 그러하였듯이, 정해진 사회의 룰에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낙오자 취급을 받아야 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사회는 이들을 오타쿠, 히키코모리 등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2010년, 일본의 무연고사망자가 3만을 넘어섰는데. 노년층만이 아니라 30, 40대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 당시 일본 사회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우리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 연(緣), 츠나가리(繋がり, 관계)를 중시하는 일본은 한번 그 연(緣)이 만들어낸 무리에서 벗어나게 되면 되돌아가기 어렵습니다. 한 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으로 어디를 가도 추천장을 가져오라고 하고, 누군가의 추천이 나의 이미지 형성에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 이야기는 한번 찍히면 그 세계에서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걸 의미하겠죠. 



2022년 기준 일본 평생 독신율은 남성 28.3%, 여성 17.8%로 집계되었는데, 그 숫자는 점점 늘어 2030년에는 남성이 30%, 여성이 25%를 넘을 거라고 예측됩니다. 이런 숫자들이 말해주는 건 뭘까요? 정말 우리는 혼자가 좋은 걸까요?



노무라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인의 65%가 집단행동보다 단독 행동을 더 선호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혼자서 취미생활을 즐기는 일본인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혼자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20~30대 남성과 30~40대 여성에게 특히 많았습니다. 이러한 경향의 원인을 전문가들은 스마트폰이나 SNS에 의한 과도한 연결이 낳은 피로라고 분석합니다.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연결되는 세상인데도 우리는 외로움을 토로합니다. 외로운데 누군가 함께인 건 더 피곤합니다. SNS로 상대방의 일상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어서 알고 싶지 않은 걸까요? 아이러니하죠?


2005년경부터 일본에서는 ‘오히토리사마(おひとりさま, 혼자인 손님)’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이 무렵부터 ‘무리하게 커플을 만들고, 다른 많은 사람과 함께하지 않아도 좋다’는 문화가 퍼지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 각오를 하는 사람들도 늘어납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한 2010년대 중후반, 일본에서는 SNS상의 친구가 많으면 현실성 있게 충실한 삶을 영유한다는 의미에서 ‘리어츄(リア充. 리얼+충실)’로, SNS상의 친구가 없으면 히도리봇치(独りぼっち, 외톨이)를 줄여 ‘봇치(ぼっち: 외톨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많은 사람과 사귀는 게 다 좋은 건 아니다’, ‘친한 사람하고만 교류하고 싶어’라는 쪽으로 가치관이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코시다카 홀딩스는 혼자 노래방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위한 ‘혼자 노래방, 원가라(ワンカラ)’를 출시하여 인기를 끌었고, ‘여성 1인 여행용 숙박시설, FIRST CABIN’, ‘1인용 캠프 용품 렌탈 서비스, 솔로 캠프’, ‘실내에서 철저하게 혼자가 되기 위한 독특한 컨셉 텐트, 보치텐토’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일본의 거의 모든 음식은 1인분부터 가능하지만, 코스 요리나 나베 요리는 ‘최소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했는데, 요즘에는 ‘1인 나베(一人鍋)’라는 것도 등장합니다. 처음에 고급식당에서부터 시작된 1인분 주문은 점차 일반식당으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나베에 더해 야끼니꾸도 1인분이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여럿이 왁자지껄 먹는 게 당연했던 고기도 최근에는 여성들 사이에 ‘혼자 즐기는 고기’라는 문화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도쿄에서는 여성 혼자 들어가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바가 인기라고 합니다, 취할 만큼 마시지 않고 두 세 잔 정도 마시는 여성 손님들을 마스터가 말 상대가 되어 주는 것이 판매 전략이라고 합니다. 

이런 가게는 거의 전체가 금연으로 되어 있어 여성 고객들에게는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아저씨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서서 마시는 술집 중에도 혼자 오는 여성을 환영한다는 가게가 등장했습니다.



홀로 문화는 주변 공기를 살피고 숨죽이며 분위기에 맞추며 영차영차 해야 하는 사회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최소한 내 시간 만큼은 오로지 나에게 충실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생겨난 문화입니다. 일본의 변화된 여성상은 일본에서 히트한 TV드라마 ‘오늘은 회사 쉬겠습니다’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주인공 아야세 하루카 씨가 연기한 30세의 ‘독신 OL’은 회사 동료와의 번거로운 교류보다는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취미인 모태솔로 여성으로 설정되었습니다. 결국, 연하의 남자와 사랑을 하는 좀 식상한 결말이 아쉽기는 했지만, 어쨌든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공감하는 여성들이 많았다는 의미겠죠.



‘오히토리사마(おひとりさま)’로 즐기는 혼술, 혼밥 문화는 평생 독신으로 살겠다, 가족도 친구도 필요 없다, 그런 거와는 다를 겁니다. 만약 많은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가족이나 우정, 사랑을 담은 영화나 드라마가 그렇게 인기를 끌 수 없을 테니 말이죠. 싱글인 사람에게 왜 싱글이냐고 물으면 “인연을 못 만나서”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반수 넘게 차지한다고 합니다. 



인연을 못 만났을 수도 있고, 만났는데 인연으로 못 느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혼자가 정말 좋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연이 굳이 남자, 여자가 아니면 어떻습니까? 친구일 수도 있고, 좋은 이웃일 수도 있고, 우리 사회가 너무 틀에 박힌 형태의 인간관계만 강요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사회적 편견의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다시 우리의 연(縁)으로 끌어안는다면, 무연(無縁)을 유연(有縁)으로 바꿔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어짜피 우린 다 다릅니다. 생각도 취향도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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