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유경 Jan 25. 2023

구정이라 하지 말지어다

유난히 추웠던 탓인지 짧았는지 길었는지 잘 모르겠는 설 연휴가 끝났습니다. 해가 바뀌고 한 달이 다되어 가는 이 시점에 다시 새해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심정적으로는 좀 어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새해 리셋이 가능한 것 같아서 양력설만 있는 것보다는 음력설도 있는 것이 좋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린 아주 오랫동안 음력에 맞춰 생활해왔습니다. 농경사회에서 달의 움직임은 더없이 중요했기 때문이죠. 그런 우리나라에서 태양력을 받아들인 건 1895년 을미개혁 때입니다. 태양력은 이듬해인 1896년 고종에 의해 처음 시행되었지만, 국민의 반발이 심해 수용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설은 지금 우리가 구정이라고 부르는 설만을 말하는 거였으니, ‘신정’ ‘구정’이란 개념은 일본에 의해 도입된 개념입니다. 지금도 양력설보다 음력설의 공휴일을 더 길게 정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음력설은 우리에게 단순히 새해라는 의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 같습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땅에 태양력을 시행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설도 그중 하나입니다. 우리의 고유어 설이라는 말 대신 일본은 양력설을 새로울 신(新)자에 새해를 의미하는 일본어 ‘쇼우가츠(正月)’를 붙여 신정월(新正月), 신정(新正)이라고 하고, 우리의 지내는 설을 ‘옛 구(旧)’에 쇼우가츠(正月)’를 붙여 구정월(旧正月), 구정(旧正)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로 인해 ‘오래되다’라는 의미의 옛 구(旧)를 쓰는 구정은 좀 낡은 것, 오래된 것, 그야말로 한물간 새해 같은 이미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신정이 아닌 구정을 즈렸습니다.  1915년 2월 18일자  『부산일보』에는 평소 흰 한복만 입던 한국인들이 음력설을 맞이하여 화려한 색의 옷을 차려입고 재미있는 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게재되기도 하였습니다. 


1915년 2월 18일자  『부산일보』


하지만 일본이 우리에게 언론의 자유를 일부 인정하면서 창간된   『동아일보』나 『조선일보』 등에는 음력설에 관한 기사는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밑의 사진은 1921년 1월 1일 자 『동아일보』에는 새해를 축하하는 특집호입니다.하지만 정작 그해 설인 1월 28일에는 아무런 기사도 나지 않았습니다. 

1922년 1월 1일


『동아일보』에 음력설에 관한 기사는 1957년이 되어서야 겨우 등장합니다. 『조선일보』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구정에 일어난 뉴스를 단신으로 내보내는 정도입니다. 그나마  『조선시보』에는 별다른 논평 없이 사진 한 장 달랑 올라왔는데, 우리가 얼마나 구정을 즐겼는지를 이 사진 한 장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언론 보도는 통제되었지만, 한국인들은 설을 포기하지 않았던 겁니다. 오랜 관습상 음력설을 지켰던 것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이를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의 목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겁니다.


조선시보 1931년 2월 18일 구정

이는 태평양 전쟁이 본격화되는 1940년 1월 1일자 동아일본 1면을 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습니다.  신년 축하 인사는 일왕 부부의 사진을 신문 1면에 개재함으로 새해가 맞이하게 된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은 음력설입니다. 한 달 가까이 지난 후 다시 설날을 즐기는 것이 어색할 수 있지만, 새해를 두 번 즐기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풍습 설은 우리에게 흐트러진 새해의 다짐을 다잡게 해주는 리셋 새해입니다. 


 한번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기 더욱 어려워진 요즘, 새해라도 리셋되어 새해에 결심했던 것을 다시 결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 다시 시작하고 싶다!!!라는 우리의 절절한 마음이 '재벌집 막내아들'처럼 인생 리셋 드라마를 유행시켰던 것 같습니다. 인생 리셋은 안되지만 다시 1월 1일로 리셋되었다고 생각하고 몇년을 망설이다 하지 못한 운전연수를 작해 보기로 결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반다이에서 들여다보는 일본의 대중목욕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