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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경 Feb 06. 2023

성차별을 고착화하는 일본어 속 여성과 남성 언어


TBS에서 2016년에 방영한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逃げるは恥だが役に立つ,  にげるははじだがやくにたつ)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갑자기 일본 유학 당시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남성어 여성어(男ことば,女ことば) 서적


일본의 한 시민강좌에서 한국어 선생을 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 교실에는 저와 나이가 같은 일본인 남자 학생이 있었는데, 친해지면서 사석에서는 상(さん)을 붙이지 않고 그냥 제 이름만 부르더라고요.



그런데 이름만 부르는 것이 어색해서 “다나카”(田中, たなか)하고 그 친구의 성만 불렀죠. 그랬더니 그 교실에서 한국어를 배우던 중년남성이 일본에서 남성은 여성에게 이름 혹은 성만 부르기도 하지만, 여성은 남성에게 친구라도 이름에 상(さん) 혹은 군(君, くん)을 붙여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남성의 성만 부르는 여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야말로 센 언니 느낌을 주는 거죠.



TBS 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의 주인공 미쿠리(みくり)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졸업하였으나 취업에 실패하자 대학원에 진학합니다.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여전히 취업은 안 되고 하는 수 없이 계약직으로 일을 하는데, 그 일 또한 젊고 예쁜 여자에게 밀려 재계약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던 중 아르바이트로 가사도우미를 하는데, 그녀는 의외로 자신이 가사 일에 재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던 중 가족이 시골로 이사를 하면서 살 곳이 없어진 미쿠리는 그녀를 고용한 모태 솔로인 공대남 히라마사에게 계약 결혼을 제안합니다.



그 남자는 미쿠리가 살림도 잘하고 감기에 걸린 자신을 살갑게 돌봐주는 모습에 호감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두 사이에 신뢰 관계와 연애 감정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 미쿠리와 달리 화장품 회사의 간부로 일하는 그녀의 이모는 남자 경험도 없이 늙어가는 쓸쓸한 여인으로 묘사되는 등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그대로 노출된 설정으로 저는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여 결국 중간에 시청을 포기했었습니다.



코미디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이런 설정의 드라마가 있고 또 인기가 있었다는 것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일본어에는 남성이 사용하는 말과 여성이 사용하는 말이 다른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남자의 말(男ことば), 여성의 말(女ことば)’이라고 하는데, 일본어는 목소리를 듣지 않고도 표현만으로도 남녀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성차별이 두드러진 언어입니다. 불어처럼 아예 단어에 성별이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관습적으로 여성과 남성이 다른 단어, 다른 표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여성은 상스럽거나 거친 표현, 단호한 표현을 자제하고 부드럽고 완곡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서두에 여성은 ‘어머나’의 의미로 아라(あら), 마아(まあ) 등을 사용하고 어미에 와(わ), 와요(わよ), 와네(わね), 노(の), 노요(のよ), 고토요(ことよ) 등을 붙여 표현을 부드럽게 합니다. 이에 비해 남성은 다제(だぜ), 나(なぁ), 요나(よなぁ), 카나(かぁ), 요오(よお), 죠(ぞ) 등 비교적 단호하고 강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여성 언어의 기원은 무로마치시대 궁궐에서 일하는 궁녀, 혹은 궐에 있는 여성들을 훈육하는 녀보(女房)라고 불리는 여성들이 사용한 말로 이런 말이 에도시대에 상류 여성의 언어로 정착한 것입니다. 대신 남성들은 한자어를 남성 언어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일부 여성들이 사용하던 이 말들을 명치유신 이후 부상한 신흥 상류층 여성들이 교양있고 우아(優雅)하고 기품있는(上品さ) 언어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일본에 대중문화가 정착하는 1920년대 이후 일본의 호주제도 속에서 여성성의 덕목을 갖춘 현모양처가 가장 이상적 여성으로 규정되면서, 일반 여성들도 이 여성 언어를 교양 언어로 사용하면서 대중화되었습니다.



문헌에 의하면 일본 근대 이전에는 일반인들과 하층민들은 남녀언어구별이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남성전유물인 오래(おれ)나 문장 어미에 사용하는 제(ぜ) 등은 여성이 사용했습니다. 만약 지금 여성이 그런 표현을 사용하면 경멸하는 시선(白い目で見られる)을 한 몸에 받게 되겠죠.



남녀 역할 분담과 여성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표상하는 것은 일본 왕실입니다. 여전히 여왕을 인정하는 않는 일본 왕실의 여인들은 아들을 낳을 것을 강요받고, 각종 귀금속을 몸에 걸치고는 조심스럽고 기품 있는 언행으로 이상적 여성상을 몸소 보여줍니다.



물론 직업선택이나 취업차별 등 통계적 차원의 차별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여전히 여성을 묘사하는 방식은 ‘참고 인내하는 착한 여자’, 혹은 ‘가정적인 여성’, ‘남성을 보좌하는 여성’ 등 보수적 이미지가 지배적입니다. 아마 K드라마가 일본의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는 끄는 것은 우리 드라마 속 여성들의 주체적인 모습이 매력적이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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