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와 <데미지>
미키루크도 한 섹시 하지만 치명적이게 섹시한 배우는 역시 제레미 아이언스다.
미키루크가 섹시를 연기 한다면 제레미아이언스는 존재 자체가 섹시하다. 섹스를 어필하지 않는게 미키루크와의 또하나의 차이라면 차이일까...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다. 나의 미키루크에 대한 배신은 세월이 무상함을 원망해야 할것이다. 나를 원망할것이 아니라...
나는 우리나라 영화 <은교>를 좋아한다. <은교>의 서양버젼인 <롤리타> 도 좋아한다. 가질수 없는 치명적인것을 열망하는 남자주인공들의 욕망이라는 공통점을 다룬부분이 전혀다르면서 어느면에선 닮아 있는 그 접점이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은교에선 애둘러말하는 젊음에 대한 동경을 롤리타에서는 까놓고 들이댄다. 이 직설적인 설정을 만일 다른 배우가 연기했다면 아마도 외설적으로만 표현되었을지 모를 배역을 제레미 아이언스는 표정하나만 가지고 외설적이지만은 않게 많은 것을 담아 연기한다. 그래서 그의 표정은 아주 오래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20세기 초에 인간의 수명이 이리 길지 않았을때 누군가 이런 논리를 편적이 있다. 남녀의 결혼적령 나이차가 앞뒤 20년이라고... 그러니까 남자가 20살 여자 보다 더 많을 경우 남자는 이미 경제력을 가졌으니 남자는 돈으로 그녀의 젊음을 사고 20살 어린 여성은 그의 경제력을 20년 동안 이용하고 그녀는 20년후 남편이 먼저 저세상으로 가주면 20살 어린 남자를 얻어 그 남자는 또 그녀에게 힘을 자랑하며 그녀의 재산을 20년 이용하고 ... 뫼비우스 띠처럼 그런 공생의 관계를 유지 하면 그야 말로 누이좋고 매부좋은 가장 이상적인 관계다 라고 했던거 같다. 그의 이론은 언듯 보면 매우 논리적이었다 그당시는, 그러나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그 논리는 엉켜버린다.
자칫하면 신박 할수도 있었는데 그노무 과학이 너무나 발달해 버리는 바람에 이제는 20년차이라도 건강관리만 제대로 하면 젊음의 어드벤티지 정도는 돈주고 사도 수명이 다할때 까지 한쪽만 착취하는 것이 가능해져 버렸다. 더 아쉬운것은 아무도 이착취에 대해 이의가 없다는 것이다. 때로는 이착취를 당하고 싶어하는 젊음이 있다는게 슬프다.
이런 종류의 동경은 영화로 볼때 아름답다. 그것이 자행되는 현장에 있다는 것은 말 할 수 없이 역겹다.
<데미지>에선 또 어떤가? 아들의 여친과 ... 충분히 막장스러울수 있는 설정도 <그>라서 서사가 된다. 들켜버린 치정으로 아들이 죽어버리고 모든것을 잃은 그가 쓸쓸히 몸빼를 입고 사라지는 장면은 차라리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 쪼리도 아닌것이 샌달도 아닌 신발하며 그물로 만들어진 시장바구니가 그렇게 잘 어울릴 일이야? 나이나 적으면 말도 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