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글 써보기

저 밑바닥이 아닌 그보다는 윗 공간 마음... 어딘가를 만지기

by 조용해

어쩌다 글을 쓰다 보니 맨 상처에 관한 이야기만 죽 늘어놨네요. 사는 게 그리 힘들지만은 않은데...

그냥 반증이라고 생각하려고요. 삶이 평온하니 상처를 들여다볼 여유도 글 쓸 시간도 있는 거구나. 상처에 허덕이다 보면 글 쓰는 시간이 다 뭐예요. 아파하기도 바쁠 텐데...


볶은 깨를 파는데 굳이 깨를 사다가 씻어서 볶거든요. 젖었던 깨가 말라 가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깨알갱이들 처음에 연한 빛이 갈색빛으로 면해가는 모습도 좋고 거의 볶아졌을 때의 고소 고소한 향도 좋아서 조금씩 사다가 볶어먹어요. 이런 기분 자주 느끼고 싶어서. 신혼을 괜히 깨 볶는다고 하는 게 아니었어. 가슴 떨리는 연인에서 이제는 곰국이 되어버린 남편을 바라보는 것도 애잔하고... 우리에게도 신혼이 있었는데 말이죠.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며 다시 이 사람과 살래? 해도 다시 살겠지만 신혼의 깨소금 맛은 또 그 맛대로 좋았네요.


신혼 때, 제가 깨를 씻고 볶고 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던 아버님이

" 아가, 옛날에는 참기름이 어찌나 고소했는지 볏짚으로 살짝만 떠서 음식에 넣어도 그 향이 집안 내에 진동을 했었는데, 요사이 참기름은 그냥 맹맹하구나" 하시던 때가 떠올라요. 볏잎에 매달린 참기름 그게 얼마나 된다고 그 한 방울이 그런 진한 향을 냈었다는데... 듣는데 전설 같더라고요. 참기름이 향을 잃은 지 이미 오래 전이였거든요. 아무리 엄마가 멀리 시골 가서 짜오셨다던 참기름도 중국깨인지 그냥저냥...


세월을 산다는 게 많은 것들을 잃어 가는 과정일까요 이런 자잘 자잘한 기억들을 되새기는 과정일까요? 둘다겠죠? 박완서 님의 <엄마의 말뚝>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거기에 소녀의 어린 시절이 나오는데 그 시절은 동전에 대한 기억이 남다르더라고요. 돈의 가치가 지금처럼 드높지 않던 시절, 소녀는 삼촌이 쥐어준 동전보다 오빠가 물려준 볼록유리조각 이나 잡동사니를 더 쳐주는 대목이 나오거든요? 그런 시절은 어땟을까 생각해 봤어요. 더 상상할 거리가 많았겠구나. 빨간 머리 앤이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 수 있었던 까닭도 모든 것이 너무 명징해 버리는 세상이 아니어서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봅니다. 세상이 좀 희끄무레한 맛도 있어야 하는데 좀 더디기도 하고...

그나저나 박완서님이 돌아가셔서 그시절 소소한 이야기들을 어디서 들을까나 좀 심란하네요. 그냥 그렇게 묻히는 거겠죠? 소중한 것들이...


나이 든 자의 넋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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