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네가 있었던 그 자리
꼴랑 11살, 나 홍 미조는 오늘도 집창촌 골목을 지나 학교로 간다.
저녁에는 술주정뱅이들의 토사물과 포악한 포주들의 욕 짓거리와 앙칼진 작부들의 아귀다툼으로 범벅이 되는 이 거리가 이른 아침 학교 갈 때 즈음에는 지난 저녁의 난장판과는 다른 고요한 세상이 된다. 비틀거리던 주정뱅이들도 포악을 떨던 포주들도 하룻밤 몇만 원이라도 손에 쥐자고 목이 쉴 정도로 호객행위를 하던 작부들도 다들 지쳐 잠이든 시간이기 때문이다.
단지, 거리에 낭자한 토사물과 거리에 나뒹구는 깨진 소주병들만이 지난밤의 치열했던 누군가의 흔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이런 끔찍한 곳에도 아이가 크고 이곳의 아이들도 나름의 꿈을 꾸며 세상을 살아간다. 이걸 두고 세상 사람들은 세상은 공평하다고 하는 것일까? 세상은 빌어먹을... 불공평하다고 하는 것일까? 이것이 예전부터 정말 헛갈렸다. 누구 이걸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내 처녀성이라도 바칠 텐데…
매일매일 이 길을 오가는 나는 이 거리의 작부들의 얼굴을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낯선 얼굴이 나타나면 ‘신참이 들어왔군’ 하고는 알아챌 정도였다.
어느 때부터인가 이 거리에 나타난 한 여인이 있다. 아니 그녀는 태초부터 여기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작부로 태어난 운명적인 작부라고나 할까... 그녀에게는 어쩐지 그런 오리지널리티가 있었다. 적어도, 나도 예전엔… 이러며 다른 작부들처럼 자신이 원래 순결했던 시절을 미화하며 애써 떠벌릴 것 같지는 않았다. 과산화수소로 감은 듯한 푸석한 갈색머리를 허리까지 길렀던 그녀. 앞머리에 후까시를 잔뜩 넣어 한껏 띄워 동그랗게 말아 올려서 핀으로 고정한 헤어스타일을 매일 같이 고수했던 그녀. 그녀의 피부는 흔히 말하는 말갛다거나 투명하다거나 하는 종류의 그것이 아니었다. 어딘지 모를 마모된 흰색이랄까 탈색된 무색이랄까... 어쨌든 생기 없는 허연 쌀뜨물 빛깔이었다. 얼굴은 뭉크의 절규에 나오는 그림 속의 남자를 닮았던 그녀. 내가 미술시간에 뭉크의 ‘절규’를 보면서 어딘지 낯익던 이유는 그녀와의 놀라운 싱크로율 때문이었다. 그녀가 목욕탕에 가는 모습을, 머리를 하기 위해 미용실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아는 사람처럼 반갑기까지 했다. 그러나 왠지 어린 나에게도 그녀는 한없이 가여워 보였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그랬다. 그녀의 힘없는 푸석한 머리가, 그녀의 탄력 없이 늘어진 가슴이, 소대 나시 위로 드러난 앙상한 팔뚝이 ‘나 너무 가엽지 않니?’라고 덜그럭거리며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느 날부터인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집창촌의 영업이 슬슬 시작되는 오후가 되면 그녀가 오늘도 무사히 출근(?)을 했는지 나도 모르게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서 술집 앞에 차려진 빛바랜 플라스틱 의자에 무표정한 표정으로 가부끼 화장을 하고 다른 작부들과 함께 다리를 꼰 채 밀랍인형처럼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왠지 안심이 되곤 했다.
***
우리 집은 집창촌을 조금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군데군데 여인숙과 찻집(일반 다방이 아닌 밤에만 여는 양주바)이 주택들 사이에 생뚱맞게 끼어있었다. 우리 집은 골목이 시작되는 초입 코너에 있는 이층 집으로 아래는 상가가 있고 위층은 살림집이 있는 특이한 형태의 이층 집이었다.
우리 집을 지나 삼백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는 작은 극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 극장의 사장은 남자처럼 하고 다니는 여자였다. 그 시절엔 레즈비언들을 상상할 수 없었기에 그 사장의 모습은 어쩐지 부자연스럽다고만 느껴졌었다. 어느 날인가 맞은편 연립주택에 사는 나와 동갑인 아이의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셨다. 아빠가 없었던 그 아이를 극장 사장이 수양딸로 입양했다는 소문과, 그게 아니라 식모로 들였다는 소문이 동시에 떠돌았다. 그 소문과 함께 아이의 입성이 잠깐 동안 티 나게 좋아졌던 것도 같다. 나중에 내가 그 아이와 친구가 되면서 가까이서 본 그녀의 일상은 극장 주인이 그 아이를 딸로 입양 한 건지 식모로 들인 건지에 대한 의심을 더욱 가중시켰다.
나는 그 극장에서 일곱 살 때 처음으로 남동생과 ‘마루치 아라치’를 봤다, 같은 날 성룡의 무술영화를 동시 상영으로 했지만 여서 일곱 살의 아이들이 극장에 두 시간 이상 있기란 쉽지 않았었기에 그날 성룡의 영화는 보지 못했다.
극장 앞에는 그 주에 상영하는 영화 포스터가 그려진 큰 캔버스가 걸려 있었는데 캔버스에 그려진 영화 포스터는 어린아이인 내가 보기에도 조야하기 이를 데 없었다. 누구를 그려 놓았는지 아리송한 그림들이 매주 새롭게 캔버스를 채우고 있었다. 매표소 옆에는 그 주에 상영되는 영화의 포스터와 함께 흑백 사진들이 몇 컷 붙어 있는 게시판이 있었다. 그 사진들을 조합해 보면 얼추 스토리가 예상되기도 했다. 야한 영화가 상영되는 주에는 민망한 사진들이 왕왕 붙여져 있기도 했다. 그럴 때면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 남학생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한참을 사진을 들여다보고 가곤 했다.
'보디 히트'라는 외국 영화 포스터가 붙어있던 담벼락에 붙어 누군가 ‘디’ 자를 ‘지’로 고치고 있었다. 목욕탕집 대식이였다. 그 녀석은 천재였다.
조그만 극장이지만 가끔은 리사이틀이 열린 적도 있었다. 그런 날이면 극장 밖까지 사람들이 차고 넘쳤다. 언젠가 <청실홍실>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 무렵. 거기 출연했던 K배우와 G배우가 극장에 출연차 동네에 온 적이 있다. 명색이 리사이틀이었는데 K는 드라마에서의 여주인공 이름인 지선아∼∼∼! 를 극장이 떠나가라 야호 하듯 크게 한번 외치고 무대를 내려왔고, G는 그녀 특유의 전매특허 웃음소리인 안녕하세요 호호호호호호를 연속해서 두 번 보여준 거 그게 다였다. 달랑 그 두 마디에 아무도 불평 없이 열광하던 착한(?) 청중들이 있었던 시대였다. 그 와 중에 예나 지금이나 연예인들은 참 돈을 쉽게 벌고 있었다.
우리 집 골목과 극장 사이에는 그나마 술집들과 여인숙이 끼어있지 않은 완전히 가정집들로만 이루어진 주택가로 이어진 골목이 있었다. 이 골목은 길고 가로등도 없어서 밤에는 왠지 공포체험을 각오해야 지나갈 수 있는 으슥한 골목이었다. 밤도 밤이지만 낮에도 항상 골목 중간에 사는 한 아저씨가 늘 술에 취해 지나가는 사람들을 해코지할 듯 서 있어서 지나다니기가 영 편치 않았다. 눈밑 주머니가 심하게 늘어져 있는 아저씨의 눈동자는 명태 눈깔처럼 초점이 없었다. 머리는 아무렇게나 뻗쳐있고 러닝 바람으로 맨발에 파자마만 입고 있어서 겨울엔 보는 것만으로 한기가 들 것만 같았다. 그는 술기운에 휘청거리며 달달 떨리는 다리를 벽에 겨우 기대 지탱하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까먹은 사람처럼 대문 앞에 우물쭈물 서있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술 마시는 것이 창피해서 계속해서 술을 마신다는 술주정뱅이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는 이미 아저씨는 딴 세상 사람이 되어있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