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이방인들

별반 다르지도 않구만...

by 조용해

옛날에는 어느 동네나 한두 명쯤 바보가 살았었다. 그때야 다운증후군이나 정신지체자 등 의학적 분류로 사람을 분류하던 시대가 아니었기에 그냥 좀 모자라면 바보라고 에둘러 말했었다. 그 바보라는 말에는 모자란 것에 대한 조롱보다는 암암리에 암묵적인 연민과 묵시적인 측은함이 배어있었다. 우리 동네에도 그런 이들이 살았다.


술집들이 즐비한 거리와 주택가로 이어지는 공터에 놀이터가 하나 있었는데 그 놀이터에는 항상 우리 동네 바보 형아가 놀고 있었다. 멜빵 반바지에 손목시계를 멋지게 차고 있던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던 아이였다. 색소 결핍으로 창백한 피부에 머리와 눈썹은 노랗고 갈색 눈동자에 키는 껑충하게 큰 배배 말랐던 아이. 목욕탕 집 아들 대식이는 이 형아가 불란서에서 왔을 거라고 했다. 자기 고모가 불란서 사람들은 노란 머리에 살결이 희고 키가 크다고 했단다. 그래서 우린 모두 한동안 이아이가 우리가 모르는 나라에서 온 우리랑은 다른 불란서 종족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랑 말이 안 통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머리도 저렇게 노란 거라고들 믿고 있었다.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할 말이 있으면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말을 걸던 아이. 항상 땅을 열심히 파대던 아이. 동네 조무래기들이 호기심에 차서 “형아 지금 뭐해? 왜 땅을 파?”라고 물어보면 자신의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뭐라 뭐라 설명하듯 암호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하늘을 한번 가리키고는 계속해서 땅을 파던 그 아이는 놀이터 맞은편에 있는 양장점 집 아들이었다. 양장점은 놀이터가 잘 보이는 맞은편에 덩그마니 홀로 외롭게 서있었다. 양장점 집 아줌마는 일을 하며 늘 시선만은 아들에게 꽂혀 있었다. 아들이 시소 옆에서 땅을 파고 있으면 손님과 이야기하면서도 그쪽을 바라보았고 아들이 모래밭으로 이동하면 미싱을 돌리던 엄마의 시선도 그곳을 쫒았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심하게 자신의 아들을 놀리는가 싶으면 어느새 쫓아 나와 놀리던 아이들을 꾸짖는 대신 입술을 피가 날 듯 베어물고는 표정이 일그러져서 아들의 손을 잡고 말없이 양장점으로 사라져 버리곤 하였다. 아빠는 없었는지 늘 엄마만 아이 옆에 맴맴 돌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여인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측은한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 엄마의 가슴에는 아들이 놀이터에 파놓은 구멍만큼이나 많은 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지는 않았을까...



***

우리 집 아래층의 상가, 경희네 중국집엔 지능이 약간 모자란 퉁퉁하고 머리가 하얀 경희네 고모가 매일 양파를 한 다라이 씩 까며 앉아 있었다. 고모에게선 항상 시큼한 양파 냄새가 났다. 얼굴은 아줌마 얼굴이었지만 몸은 초등학교 3,4 학년 정도의 키에 포동포동한 몸집으로 멀리서 보아도 가까이서 보아도 어른인지 아이인지 도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어릴 때 한약을 잘 못 먹고는 그때부터 기절해서 몇 해가 지나서야 깨어난 후 그렇게 되었다고 고모가 직접 동네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그즈음 엄마가 저녁마다 녹용을 달인 한약을 주셨었는데 그것을 먹을 때마다 내일이면 그 고모처럼 한참을 깨어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상상을 하며 아찔해하던 기억이 난다. 고모는 양파만 하루 종일 까려니 심심했는지 문을 열고 문지방에 걸터앉아 있다가 그 앞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유난히 잘 발육된 가슴을 출렁이며 고무줄 시범을 보여주기도 하고 숨바꼭질 하는 술래에게 누가 어디 숨었는지를 눈짓으로 알려주기도 하며 온 동네 참견은 다 하고 있는 참이었다. 고모가 출몰하는 중국집이 슬슬 개시를 준비하는 오후가 되면 동네 어귀부터 양파 냄새가 솔솔 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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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는 언제부터인가 처녀 하나가 나타나 동네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짧은 커트머리는 누가 맘먹고 커트머리로 다듬어 준 것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잘린 흡사 쥐가 파먹은 모양새였다. 질질 끌고 다니던 쓰레빠 사이로 얼마 동안 씻지 않은 건지 가늠도 되지 않는 새까만 발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몸에서는 쓰레기 썩는 악취를 풍겼으며 항상 고개를 숙인 채로 채 머리를 떨며 뭐라 뭐라 궁시렁 궁시렁 혼잣말을 하며 거리를 쏘다녔다. 남자아이들은 그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면 “김순경 XX는 박하 XX 김순경 XX는 박하 XX...”라고 중얼거린다고 했다. 한참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호기심이 왕성한 짓궂은 남자아이들은 김순경이 이 처녀를 따먹으려고 그곳에 안티프라민을 바르고 일을 치렀을 거라고 낄낄대며 없는 얘기를 지어냈고 처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자기들이 만들어낸 얘기를 노래로 지어 떼창을 해가며 다니기도 했다.


이 처녀는 어쩌다 먹을 것이라도 길에 버려져 있으면 가리지 않고 먹어댔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 처녀를 땅 그지라고 놀렸다. 먹다 버린 캔에 남아있는 며칠 되어서 꺼룩한 빗물 섞인 국물이라든지 담배꽁초에 남아있는 타다만 담뱃잎이라던지 우리 눈엔 못 먹을거리조차 먹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맛이 없다고 '너는 먹지 말라'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손 사례를 쳐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정말 아이들의 노래가 들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처녀는 어느새부턴가가 배가 불러오는가 싶더니 겨울이 되자 제법 배가 불룩하여 돌아다녔다. 한겨울에도 여름 원피스를 입고 돌아다니는 바람에 동네 어른들은 저러다 동사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며 걱정스레 쯧쯔 거렸다. 이듬해 봄에는 그 처녀가 드디어 애를 낳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동네의 ‘세컨드 할머니’가 처녀를 거두어 아이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처녀를 씻겨 한동안 할머니 집에서 머물며 애를 돌보게 했다고도 했다. 다행히 아이는 건강한 사내아이 었다고 한다. 할머니네 집 앞 평상에 나와 앉아 봄볕에서 아이에게 젓을 물리던 처녀는 더 이상 채 머리를 떨지도 혼자 중얼거리지도 않았다. 후에 아이가 좋은 집에 입양되었다는 소문이 나기도 하고 아기 엄마도 같이 시설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문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처녀는 또다시, 이번에는 때 국물이 꼬질꼬질한 빈 포대기에 쓰레기를 아기처럼 안고 나타나 거리를 배회하고 다녔다. 그마저도 언제인지 모르지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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