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를 정리하는 법'

미니멀의 번외 편

by 조용해

세상에... 태국영화에 이렇게나 감정 이입하게 될 줄이야??!

비우기를 영화화하다니... 난 왜 그 생각을 진작 못 했을까?


어쨌든, 주인공이 뭔지 리즈시절의 심은하도 생각나고 여리여리했던 과거의 명세빈도 생각나게 하는 빈티와 청순 사이 그 어디쯤의 오묘한 얼굴. <진> 여주의 이름.

쟤네 집도 우리 집만큼 어지간히 끌어모아 놓고 살았었구나

도둑질도 손발도 맞아야 해 먹는다고 뭔가 좀 하려고 하면 꼭 초치는 누군가가 있지. 이 집 엄마처럼. 아무도 안치는 피아노 좀 팔자고 하니 건반하나 띡 누르고는 '봐 내가 치잖아'... 어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이제는 정리계의 바이블처럼 너무 많이 응용돼서 식상할 지경. 역시 여기서도 등장한다. 설레지.. 드립


착착 착착 정리해서 깔끔하게 확 버렸다네 끝! 이면, 그렇구나! 하고 나도 말았을 거다.


그런데 얘 진, 애써 챕터까지 나눠가며 바리바리 버려놓고선, 강냉이 아저씨에게 돈까지 받고 팔아 놓구선, 그걸 또 굳이 쫓아가서 다시 거둬들여 방 한가득 다시 모은다. 심난하게 -아... 이러려고 본 게 아닌데.


클리셰대로 예전 추억 소환해 주시고, 추억 하면-> 사진, 사진하면-> 전남친사진이지!의 역시 클리셰 데로... 흘러가 주시고. 전남친이 뻔히 옆집에 사는거 알면서. 사진기를 굳이 우편으로 보내드니 수취인 거부를 당하고는 그제서야 그걸 들고 직접 찾아간다. 옆집으로. 마지못해.

수취인 거부할 땐 언제고 싫은 기색 하나 없이 말간 얼굴의 전남친은 또 기다렸다는 듯이 집 앞에 나와있어... 예전에 잠수 탄 거 미안했다. 그때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구구절절이 미안 타령하는 중인데. 갠잖아 갠잖아를 연발하던 전남친 왈 '라면 먹고 갈래?'에 버금가는, 아니 한술 더 떠서 '옥수수 수프 끓여 줄래?' 내가 끓여줄게도 아니고 끓여 달래 -어머, 여주인공은 거기까진 아니면 어쩌려고 저래 쟤가? 나의 섣부른 우려를 뒤로 하고 여주인공 심리상태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전남친 집으로 옥수수 수프 끓여주러 입실.

여기까지 보고는 그래서 둘이 잘 먹고 자알 살았다네 하면, 그래 영화니까 그럴 수 있지! 하고 또 잊어주려고 했다. 나는. 그런데 전남친의 현여친 등장해 주시고 '니 얘기 많이 들었어. 어머 옥수수 수프 맛있겠다. 같이 먹자. 듣던 대로 역시 맛있어'... 뭐야 얘네... 태국만 해도 헐리웃 이혼 부부 컨셉이 통해? 우리 정서론 헤어진 전남친 좋은 얼굴로 마주하기 쉽지 않던데... 게다가 현여친이 그걸 또 이해해??!

그래... 영화니까. 그것도 그렇다고 쳐. 욕하면서 끝까지 보는 막장드라마 보는 심정으로 그래! 끝가지 봐주겠어!


근데 이 영화 은근 중독성 있다. 사실은 한꺼번에 후루룩 보기 아까워서 중간에 끊었었다는 거 아니야...


이어달리기처럼 다시 이어보는데- 넷플릭스 다 별론데 이거 하나는 좋다. 끊었다 다시보기.

볼수록 점점 더 점입가경이다. 혹 때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오는 진. 전남친한테 카메라 떠 넘겼더니 두 박스나 지물건이 돌아올줄 누가 알았겠어? 되로 주고 말로 받네 쟤. 전남친 엄마 에피에선 임종할 때 허구많은 음식 놔두고 며느리도 아닌 아들의 여친이 끓여주는 옥수수 스프 먹고 싶다고... 아이구야... 너무 갔네 너무 갔어... 이쯤 되니 그 스프 나도 한번 먹고 싶다. 대체 어떤 맛이길래... 끝내는 전남친 엄마 납골당까지 행차... 오글... 그 와중에 현여친 뒤에서 보고 있어. 이 정도면 쟤 보살이다. 그나저나 이름 어쩔꺼야? 전여친 이름 <진>, 현여친 이름 <미> 뭐야? 진, 선, 미야? 이대목에서 전남친 <진>과 <미> 사이 <선>도 한번 사귀었을 거 같은 이 합리적 의심이 드는 촉은 나만의 촉이겠지?


대박 대박 아빠 살아있었어. 나는 왜 내내 아빠가 죽었다고 생각했을까? 이혼 가정이었어. 아빠는 몸만 홀랑 나간. 정황상 바람나서 나간 것 같은 몸쓸 촉 또 발동, 어쨌든 눈치 없는 나 혼자만의 반전 반전 대반전.


피아노 팔아 보겠다고 엄마랑 대판 붙는 씬. 아직 엄마는 아빠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는지 아니면 어깃장인지. 혹시 돌아오길 기다리는 거야? 말도 못 꺼내게 하는 거 보아하니 본인도 잘 모르는 듯.

나 혼자서 알아서 하고 있는 중인데 왜... 내가 그를 잊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기승.. 결 왜 이래? 갑톡튀 이 문맥 무시한 결론 뭐야?


이 순간... 사람이 살면서 저런 피아노 한대쯤은 맘속에 갖고 살지 누구나. 나에게 피아노는 무엇일까? 내가 지금 혼자서 알아서 하고 있는 중인 것은 무엇일까... 그러느라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 나에게 잊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해준다면... 나도 저 엄마처럼 파르르 하려나? 나도 누군가는 잊고 싶어 하는 기억을 내욕심으로 붙잡고 있으면서 기억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가만, 그런 와중에 이 영화 카메라 앵글 미쳤다. 이 식탁 씬 줌인 아웃이 어딘가 남달라. 예전 중경삼림의 카메라 기법 봤을 때의 그 신선함. 그거보다 더 티 안 나게 훌륭함 뭐지? 이 영화!


마지막에 현여친 등장 안 해줬다면, 현실성 제로일 뻔했어. 현실성 완전 없는 캐릭터로 남을 뻔. 영화 문맥 상 때맞춰 싱가포르로 떠나 주시는 전남친. 원래 거기 따라가기로 했던 현여친. 그런데 둘(전여친, 현여친)이 처음 만나는 씬에서 현여친이 입었던 옷이 전여친꺼였다는거? 진이 과거를 들추는 바람에 외장하드에 있는 사진들 보다가 이번 기회에 알아버렸네? 그런데 <미> 너도 디게 눈치 없다 나만큼. 남자 집에 여자 옷 왜 있겠니? 뻔하지. 어쨌든 거기까지 알고 나면 싱가폴 못 따라가지. 안 따라가지. 지구 상에 그 남자 말고 남자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사이 드러나는 또 한 번의 작은 반전. 현여친 얘가 수취인 거부한 거였어!! 그냥 혼자 알아서 처리해도 될걸 그 티셔츠 들고 찾아와서 굳이 울며불며 '니잘못은 아니야 그런데 우리 깨졌어 너땜에'를 알리고 홀연히 돌아서는 현여친.

진. 얘는 뭐든 미안해로 때우는 구나. 병이다 너도. 미안해 병. 저런 애들은 모르더라 지가 얼마나 암을 유발하는지.젠장 무책임한 그놈의 미안해타령은... 니 미안해에는 영혼이 없어. 그게 문제야.


진때문에 졸지에 전여친들 물건 정리하기가 루틴이 되어버린 전남친. 저번엔 전전여친의 물건 정리. 이번엔 최근 헤어진 전여친 물건 정리. 덕분에 바뻐.

한 번은 그래, 너를 이해해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다시 찾아가서 현여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건 못 참지. 이제야 진실을 말하는군. 착한 척 그만해. 나한네 내 물건 돌려준 것도, 나한테 사과한 것도 다 너를 위해서 했던 일들이잖아. 녀석 뒤끝 작렬이네 알고 보니. 그래도 맞는 말이기는 하네. 지금까지 일련의 행동들 다 나를 죄책 감 없이 버리기 위한 너의 큰 그림이잖아 안 그래? 솔직히 접대 와서 사과했을 때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어. 솔까 저번에 찾아와서 사과한 것도 니 최책감 나한테 버리러 온 거잖아. 오진 팩폭. 도망가지 말고 죄책감은 니 몫이야 감당해. 조곤조곤 좃아주시는 센스. 이어지는 팩폭에 정신 못 차리는 이제는 전전 여친 진. 말 밀리니까 미안해 미안하다고 미안하다니까? 그럼 된 거 아냐? 오히려 적반하장. 사과는 그렇게 하는게 아니지.


그 두시럭을 떨더니 끝내는 지가싼 똥 지가 못 치우고 정리고 나발이고 나가 떨어져서는 오빠한테 뒤처리를 맡기고 홀연히 그림처럼 떠나심. 현실남매 였다면 택도 없는 소리. 그러나 영화니깐 ... 하긴, 그렇지 가족은 그러라고 있는 거지. 서로의 똥을 치워주느라... 가만있어봐. 그러고 보니 나도 친정 가서 처녀적 내 짐들 싸 갖고 와야 하는데 내 가 싼 똥들을 처리해야 하는데. 그걸 남의 손에 맡길 수는 없는 일인데.


천신 망고 끝에 그 노무 <미니멀>을 끝내는 이루긴 했네. <미니멀 > 상상으로만 그럴 듯 하지 막상 치워 놓으니 별 감흥이 없는데? 어라? 나간 집 갔네? 물건이 꽉 차 있을 때는 폭탄 맞은 집 같더니.

뭐야...역시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거 아니었어. 그냥 첨부터 미니멀로 지어진 집이 때깔이 나지. 어쩐지... 내가 아무리 부엌의 살림살이들을 다 비워내도 꿈에 그리는 <콘도 같은 집>은 안돼더라니. 이거였어. 콘도는 첨부터 콘도로 태어났던 거야. 콘도로 키워진 것이 아니라.


마지막 장면 여주의 혼신의 연기. 너도 나랑 같은 생각을 했구나? 다 버리고 나면 후련할 줄 알았는데. 후련함 대신 밀려오는 복잡 미묘함. 가만있어봐. 니 표정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인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마지막 장면 로보트 드니로 표정이잖아? 이 감독 그 영화 봤네 봤어. 앤딩 표절이네. 그러나 요즈음 같은 표절의 시대에 그정도는 애교로 봐주마.


그런데 말이야 언젠가 부터 어쩌면 우리는 <미니멀>을 나도 모르게 강요당하고 있는건 아니니? 다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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