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
김준한
내 한 폭의 걸음을 따라오기 위해
그 좁은 보폭을 수십 번 내딛는 아롱이와 다롱이
몇 달이 일 년 같을 강아지들의 세월
그 쇠락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 나도 어서 빨리 늙어가면 좋겠다
애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없는 그날이 오면 공기는
손에 잡힐듯한 밀도를 가지고 나를 짓누를 것이다
숨 쉴 때마다 허파를 긁을 것이다
애기들이 꼬리 치며 활보하던 공간들은 팽창하는 우주를 닮아 갈 것이다
내 볼을 핥던 혀를 그리워하면서도 밥은 꾸역꾸역 넘어가겠지
죽고 싶다 하면서도 늙지 않을 내 안의 탐욕들
더는 굵어지지 않는 건 다행일까
가늘어지는 머릿결 따라 쇠하여 끊어지지 않는 미련은 나보다 오래 살 것이다
오늘도 내 수명을 이 가엾은 생명들에게 나누어 달라는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그분이 원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