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13부

by 김준한

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13부



“아롱아 여기 와봐. 와! 엄청난데 여기”


전보다 흥분한 다롱 오빠의 코가 소나무 밑동에 닳아 없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어요.


“어라 이건 처음 맡아보는 냄새인데.”

“냄새가 어떻게 달라?”

“이건 너무나 신선한 메시지들이야.”

“나는 잘 모르겠는데, 이것도 오빠는 해석 가능한 거야?”

“음 뭐랄까? 좀 어렵긴 해. 뭐라 표현할 수 없어. 내 마음속에서만 빙빙 돌아. 구체적으로 설명을 못 하겠어.”

“좋은 거야?”

“좋다고도 할 수 없고 나쁘다고도 할 수 없어. 음 그냥 표현할 수 없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여럿 감정들이라고나 할까?”

“와 오빤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거야?”

“본능이지. 넌 배고픈 걸 배워서 아니? 넌 아빠가 그렇게 좋다며 왜 좋은데? 너도 이유를 설명 못 하잖아.”

“응. 그냥 좋아.”

“그래 그런 거야. 뭐라 설명할 수 없이 나도 모르게 느껴지는 그런 것.”


저는 오빠의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 아빠의 말보다 오빠의 말이 더 어려운 걸까요?


“어험 녀석들 귀엽군”

“아롱아 방금 뭐라고 했니?”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주 맹랑한 녀석들이군. 다롱이라고 했느냐 간지럽다. 거기 그만 핥아라.”

“엇!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거야?”

“아무도 안 불렀는데.”

“아롱이 넌 못 들었어?”

“응.”

“아롱이 다롱이라 저기 아직 술도 안 깨서 얼굴 벌건 저 초라한 녀석이 너희들 아빠냐? 녀석들 이름하곤 참 촌스럽게 지었군.”


“헛! 어디서 나는 소리지?”


다롱 오빠가 오른쪽 다리를 높이 들고는 소나무 밑동에 오줌을 갈기며 말했어요. 오빠는 저런 것도 어떻게 잘할까요. 저도 이다음에 제 다리에 안 묻히고 오빠처럼 한쪽 다리를 들고 저렇게 할 수 있을까요?





“이 졸업식이 끝나고 앞으로 3년만 더 참으면 되는 거야.”


한영은 중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태한의 폭력을 죽은 듯 더 견뎌야 한다고 다짐했다. 강당은 따로 있지 않았다. 조립식 벽을 뜯어내자 교실 두 개가 경계를 허문 하나의 넓은 공간이 되었다.


막 졸업식 노래를 다 부른 아이들이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자음과 모음의 경계를 잃은 또 다른 졸업식 노래가 비틀거리며 강당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한영은 순간 6살 처음 아가리를 벌린 뱀이 개구리를 머리부터 삼키던 모습을 보았을 때처럼 머리끝이 뾰족이 섰다. 제발 꿈이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이내 문을 박차고 들어온 건 틀림없는 태한이었다. 한영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몸통이 뱀의 아가리 속으로 반 들어간 개구리처럼 사력을 다해 발버둥 쳤지만, 그 발이 척추의 힘을 받아 일어설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저 아저씨 누구니?”

“한영이네 아빠 같은데.”

“완전 맛이 갔네.”


아이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창유리를 투과한 봄 햇살 위로 번졌다. 그 소리는 마치 강력한 포식자의 어금니처럼 한영을 잘근잘근 씹는 듯했다. 한영은 육즙이 흐르는 살코기처럼 형체를 잃어 가고 있었다. 곧이어 한영의 눈앞에 맺힌 눈물 너머로 덩치 큰 사회 선생님의 손아귀에 질질 끌려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졸업식이 끝나자 아이들은 꽃다발을 한 아름 안은 채 부모님들과 기념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한영아 너 우리 소연이 좋아한다면서, 함께 사진 한 장 찍자.”


소연이네 엄마가 그렇게 말했지만, 이미 숨을 곳을 잃은 벌레가 된 한영은 도저히 소연이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소연이는 언젠가 한영에게 시험 잘 보라며 초콜릿을 처음 건네주던 친구였다. 한영은 그녀에게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한영은 도망치고 싶었다. 끝내 숨을 곳을 찾지 못한 한영은 능력치를 초월한 빠르기로 섬진강을 향해 내 달리기 시작했다.


술 취한 아버지가 발로 차서 죽인 누렁이를 묻었던 대나무 숲에 이르자 금방이라도 누렁이가 무덤을 파헤치고 나와 꼬리 치며 눈물을 핥아 줄 건만 같았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야구를 하느라 다른 날보다 조금 늦게 집으로 돌아왔던 그날, 누렁이는 피를 토한 채 마당에 누워 있었다.


“누렁아, 왜 그래. 늦게 와서 미안해. 얼른 일어나. 강가에 놀러 가자.”


한영이 흔들었지만, 돌처럼 굳은 누렁이의 차가운 체온만 느껴질 뿐 누렁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누렁아, 이번 여름에 수영도 함께 하기로 했잖아. 너 약속 어길 거야?”


목이 아플 텐데도 늘, 제 목에 채워진 목줄을 온몸으로 당기며 한영의 품에 안기려던 누렁이였다. 그런 누렁이가 단단히 삐친 것인지 그날 한영이를 처음으로 외면했다.


“오빠, 그만해. 누렁이 죽었잖아.”

“누렁이가 왜 죽어?”


한영은 엄마가 피 묻은 옷가지를 대야에 던져 놓고 떠났던 그날처럼 누렁이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다. 몹쓸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빠 그만해 아빠가 발로 찼단 말이야.”


태한은 큰 방에서 코를 골며 잠들어 있었다. 너무나 잔인한 현실, 엄마를 앗아간 것도 모자라 이젠 하나뿐인 누렁이마저 앗아간 아버지가 한영은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어쩌면 목사님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이 있다는 말, 그분은 인간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말, 그런 분이 어찌하여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정녕 하나님이 존재하는지는 의심이 갔지만, 사탄이 존재하는 건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았다. 방에서 코를 골며 잠들어 있는 저 사탄. 저 사탄만 사라진다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고, 할머니가 더 고생하지 않으실 것 같고,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한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한영은 그 무엇에 홀린 듯 부엌으로 향했다.


“내 오늘 저 인간 죽이고 말 거야!”

“오빠야 그게 무슨 말이고?”


등을 당기는 동생의 목소리가 현실감 없이 어렴풋하게 들렸다. 어두침침한 부엌에 들어서자 찬장 옆에 나무 도마가 세워져 있었다. 나무 도마 위에 얹힌 식칼이 한영의 시야에 들어와 박혔다. 한영은 식칼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어둡던 곳에서 갑자기 밝은 곳으로 나온 탓인지 칼날에 부딪힌 햇빛이 튕기듯 바닥에 떨어졌다.


“오빠야!”


미선이 한영의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라!”


한영의 목소리는 돌처럼 굳은 누렁이처럼 뻣뻣했다.


“오빠야 그러면 안 된다. 그럼 지옥 간다.”

“그럼 지금 여기는 어디니?”


갑자기 들이닥친 햇살 때문에 한영의 팔을 잡은 미선은 더욱더 울상이었다.


“여기가 지옥 아니니? 이미 지옥인데 무슨 지옥이 또 있다는 거니?”


한영의 말뜻을 알아들은 건지 모를 미선이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정신을 차린 한영이 동생에게 말했다.


“미선아, 누렁이 묻으러 가자. 누렁이가 좋아했던 저기 대나무 숲에.”



숨이 가빠 멈춘 한영이 바라본 곳, 그곳에서 누렁이가 꼬리 치며 자신에게 달려올 리 없었다. 휑하니 지나는 바람만이 대나무들을 흔들고 있었다. 대나무의 몸통에 새겨진 매듭이 마치 한 시절, 한 시절을 갈무리한 삶의 흔적처럼 보였다. 언덕을 올라 허공 너머를 바라보자 거기 그렇게 햇살이 너울거리는 강은 한영이 지나온 시간과 다시 흘러가야 할 세월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강가로 걸어간 한영이 커다란 돌멩이 하나를 집어서 던지자 유년만큼이나 얕은 강이 첨벙하고 튀어 올랐다. 가슴에서 찢어진, 여린 살결이 물결과 함께 햇빛을 안고 반짝였다.


“그래 어쩌면, 내 난중은 아이들보다 더 클지도 몰라. 책에서 읽었잖아. 위대한 사람들은 대개 불우했잖아. 놀림도 많이 당하고 말이야. 왜 조나단 리빙스턴도, 다른 갈매기들에게 놀림을 받았잖아. 그러나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되었잖아. 그래 나는 힘들지만,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고 있잖아. 그래서 책도 열심히 읽고 있잖아. 그래 나는 반드시 꿈을 이룰 거야.”


양말을 벗고 강물에 발을 담그자 불현듯 9살 적 짝꿍이 생각났다. 항상 같은 옷을 입고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해 몇 개의 모음과 자음으로 잘못된 조립을 일삼던, 글도 쓸 줄 모르고 아이들이 때리고 놀려도 그저 웃기만 하던 짝꿍. 아이들의 주먹이 분명 아팠을 텐데, 아이들이 던진 뾰족한 말의 날이 따갑고 시렸을 텐데, 늘 웃기만 하던 그가, 한영은 사무치도록 보고 싶어졌다. 그 짝꿍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웃을 수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인상 찌푸리는 법을 몰라 늘 웃기만 하던 짝꿍. 늘 인상 찌푸리며, 이게 좋니? 저게 좋니? 이 방법이 좋을까? 저 방법이 좋을까? 그렇게 갈팡질팡하던 아이들과 다르게 불평 한번 하지 않던 그는 분명 바보가 아니라 자신과 다른 경지에 있을 거라고 한영은 생각했다.


“강물은 뭐가 그리 급해서 저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흘러가는 것일까? 그 바다에 무엇이 있기에 저렇게, 바다에 이르면 편해지는 것일까? 아니야 거긴 망망하기만 했던걸. 너무너무 넓고 커서 가도 가도 끝이 없는걸. 하지만 그 바다에 던져 보았던 돌은 어떻게 되었는지 내가 알 수 없었잖아. 그래 바다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그것에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몰라. 이 얕은 강을 봐. 돌 하나 던지니 첨벙하고 튀어 오르잖아. 아버지의 폭력과 폭언, 아이들의 비아냥거리던 놀림들, 그것들은 내 바닥에 너무나 쉽게 내려앉아 나는 참을 수 없는 내 살결을 튀어 올려야 했잖아. 그래 바다가 된다면, 사람들이 그 어떤 무거운 돌을 던져도 나는 출렁이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 이렇게 흘러 바다에 이른다는 건, 그렇게 큰 사람이 되기 위함일지도 몰라. 그래 나는 흘러가는 거야. 내겐 꿈이 있잖아. 그러니 아이들이 철없는 소리로 내게 상처를 주어도 참아내자. 이미 내 것이 아닌 아이들의 행복도 부러워하지 말자. 대신 나에겐 꿈이 있잖아. 하나님은 내 꿈을 이루게 도와주실 거야. 삶은 공평한 거라 했잖아. 목사님도 말씀하셨잖아.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한다고 하셨잖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용서하신다고 했잖아. 그래 목사님이 내게 거짓말할 리 없잖아.;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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