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방
김준한
볼록한 그녀의 모성이
앙상한 무늬가 새겨진 가슴골을 채우며 미끄러져 내려오자
젖 먹던 힘이 유두를 타고 흘러내린다
안면부지, 입은 말 하지 않아도
숨결과 숨결이 나눈 육체의 대화를 기억한다
마른 근육과 풍만한 지방의 서툰 대화
나는 밑에 누워 그녀가 주저리는 언어를 경청하는 쪽이다
그녀의 독백에 짧게 대답한 손이
그녀의 깊은 곳을 묻는다
그리 어려운 질문도 아닐진데
답을 찾지 못한 그녀의 침묵이 내 비밀을 알아 채는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수포처럼 갈라진다
백열등에 갓 피어난 어둠을 힘겹게 밀어내는 붉은 꽃잎,
몸보다 먼저 달아오르는 건 울컥 복받친 서러움이다
애당초 내겐 허락되지 않은 알맹이
빈 껍데기를 먹고사는 존재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녀의 눈 감은 얼굴을 익히자
나는 시들시들 죽는다
가장 아름다운 일이 누군가에겐 가장 큰 슬픔이란 것
그녀가 나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려놓고 나가자
뚝뚝, 지난 세월 한참 흘리던 나는
수도꼭지 꽉 잠그고 붉은 방을 나온다
2024. 한국문학 철근공 외 2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