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25부

by 김준한

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25부



한영은 큰 칠면조 뼈다귀를 앞발로 잡고 잘근잘근 씹는 다롱이를 보며 이빨이 빠지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아롱아 넌 이거 먹어”


마른 한치 조각을 내밀자 다롱이에게 뺏길까 으러렁 거리며 낚아챈 아롱이는 조심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질긴 개껌을 주면 다롱이는 10초도 안되어 삼키는 반면 아롱이는 몇 분이 지나야 다 먹었다. 다롱이보다 연약한 아롱이의 이빨을 보며 한영은 어린 날 처음 씹었던 공포가 떠올랐다. 스무 살 시절 완고한 고집으로 똘똘 뭉쳤던 이빨로 세상과 타인을 잘도 씹었다. 이제는 젊은 이빨에게 물릴까 두려워진 한영의 이빨은 딱딱한 것과 맞서지 못했다.


“한영아 이거 아까 내가 먹다 남은 건데. 가져가.”


한영은 투다리에서 미화가 챙겨준 오징어 회를 놓고 소주잔을 들었다.


“안돼! 이건 아빠 거야 넌 뼈다귀나 씹어.”


오징어 회가 탐이 났는지 뼈다귀를 놓고 곁으로 온 다롱이를 한영이 쓰다듬었다. 밥상 귀퉁이에 턱을 괴고 한영과 회를 번갈아 보는 다롱이의 눈동자가 허공을 가로 졌는 꼬리보다 바빴다.


“녀석들 안된다니깐.”


어느새 한치를 다 먹은 아롱이도 곁으로 와서 꼬리를 흔들었다.


엄마가 떠나고 아버지와 갔던 바다에서 아버지는 나무젓가락으로 회를 집어 한영의 입에 넣었지만 한영은 그 회 맛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물론 엄마가 피 묻은 옷을 부엌에 던져두고 사라졌을 때도 이별의 맛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날 아버지가 곯아떨어진 사이 동생과 손을 잡고 오른 옥상에서 과자를 먹고 있었다. 한영은 낯선 슬픔에 우는 것도, 동생을 위로하는 것도 아닌 단 하나 공포를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와작, 와작 이빨에 잘근잘근 으깨지던 과자처럼, 그동안 아버지에게서 자주 맛보았던 공포를 입에 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동생은 과자를 입에 넣고 오빠 참 맛있다고 했다. 과자처럼 으깨진 공포는 침과 섞여 위 속에 들어차고 있었다. 처음의 것들, 첫 이별, 첫맛, 첫 고통, 첫 환희, 첫 슬픔, 첫 분노, 첫 절망은 그 순간 느낌을 주지 않았다. 당연히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첫 경험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들은 시간이 흐른 후 잊었다고 착각하는 순간 되살아났다.


“다롱아 건배.”


소주 한 잔을 삼키자 파도가 철썩이며 때리는 방파제 표면처럼 위벽이 차갑게 긁혔다. 으깨지고, 쪼개진 청춘. 다행히 한영은 끈질긴 욕망의 뿌리를 뽑지 못한 몇 개의 이빨로 회를 씹었다. 그러자 그날 알 수 없었던 회 맛이 느껴졌다. 잊었던 삶의 순간들 또한 미각을 키운 한영의 가슴속에서 전엔 느끼지 못했던 맛을 더하며 되살아났다. 슬펐던 이별은 곱씹을수록 허무의 맛이 났다. 분노했던 순간을 다시 씹으면 부끄러움이 더해졌다. 과오를 생각하면 그 속에서 눈물이 육즙처럼 흘렀다.


“안된다니깐! 이 녀석들이.”


결국 회 한 점씩 든 손이 녀석들의 입속으로 향했다. 하지만 어린 날 아버지가 들이밀던 그 거칠던 젓가락과는 다르게 행여 녀석들의 입안이 상할까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한영의 젓가락질이었다.


토,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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