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다시 찾아온 겨울)

by 김준한

아롱이 다롱이 만만세 <다시 찾아온 겨울>

“소장님 내일도 일이 없나요?”


“잡힌 건 없어. 그래도 제일 먼저 나와야 일이 생기면 순번을 줄 것 아니냐.”


내일을 위해 일찍 자려했으나 역시 술 없인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롱아 다롱아 배고프지 조금만 참고 있어.”


녀석들을 바라보는 한영의 눈빛이 옥탑방 계단을 오른 어둠처럼 짙어졌다. 어둠보다 허기가 먼저 찾아온 지 오래였지만 지난 순간들이 내벽을 허물어 놓은 세월만 할까? 한 번도 굶긴 적 없는 녀석들이었건만 빈 그릇을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영의 가슴은 방금 버린 사료 봉지처럼 구겨졌다.


“이러자고 5년 동안 단단하게 바닥을 다졌던 아시바를 때려치우고 고시원으로 갔었나. 차라리 내 삶에 아시바 파이프를 세울걸. 그러면 거기에 지나던 바람이라도 내려앉을 수 있었겠지.”


마지막 담배를 비벼 끈 지도 벌써 몇 시간이 지났다. 어둠이 조금 더 짙어지기를 기다려 밖으로 나왔지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발각될까 착잡한 마음으로 길을 걸었다. 아직 폐점 전인 로또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당장 다음날 끼니가 없었어도 로또 같은 건 바란 적이 없었다. 한영은 다만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다. 어릴 적 산불에 검게 탄 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배운 건 무엇이었을까? 다 가져도 다 못 사는 인생인데, 왜 이렇게 삶이 곤한지, 한영의 그런 사유는 결코 세상에 대한 원망이 아니었다. 한영은 여느 사람들처럼 돈을 많이 벌어 부유한 삶을 사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수의 사람이 추구하는 성공은 빛 같은 것이라 여겼다. 그 빛이 자신을 비춘다 해도 그것은 잡을 수 없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그 빛의 반대편에 화석처럼 드리운 그림자를 알지 못했다. 한영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삶에 드리운 그림자를 견뎠다. 그것은 허상 같은 빛과는 반대로 마치 손에 잡힐 듯 밀도를 가지고 가슴을 눌렀다. 그래서 그 무게를 견뎌야 했다. 성공한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에게 찬사를 받으며 환하게 웃는다고 해도 그 빛은 반드시 꺼지고 말 허상일 뿐 누구 하나 가슴에 드리운 그림자를 나눌 수 없다면 저 하늘의 달이 야위어 가는 고통을 소통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영은 자신의 시를 인정받고 싶었다. 어쩌면 유년의 불우했던 삶을 보상받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줌마 여기요.”


녀석들 줄 통조림 두 개와 소주 한 병을 사고 마지막 남은 만 원짜리 한 장을 마지못해 내밀었다. 담배를 사지 못하고 가게 밖으로 나온 한영은 골목 귀퉁이를 비볐다. 조그마한 술집 앞을 서성이며 눈을 씻고 바닥을 훑었다. 하지만 버려진 담배꽁초는 없었다. 그 누구의 입술도 없이 홀로 타다 버려진 자신의 청춘처럼.


다음날도 일은 없었다.


“소장님 죄송한데 이만 원만 빌려 주세요.”


소장이 정리를 하고 정문을 잠그기 전 겨울바람에 부르르 떨고 있던 마지막 잎새처럼 뱉은 말이었다. 소주를 들고 집에 돌아온 한영은 아롱이 다롱이의 재롱을 안주 삼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자 한영의 짧았던 인연처럼 해를 떠나보낸 하늘이 우울한 먹구름을 드리우며 흐려졌다. 채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각자의 에고로 빛나던 사람들, 밤이 되면 그들은 수많은 별이 되어 한영의 가슴에 떠올랐다. 너무나 많은 이별 때문에 하늘처럼 팽창한 한영의 가슴. 그리움 하나로 그 수많은 별을 품지 않으면 밤은 더욱 적막해서 견딜 수 없었다. 반나절이면 오래 참은 것일까? 하늘은 결국 견딜 수 없는 먹구름의 무게를 쏟았다. 한영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다롱아 아롱아 고마워. 너희들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빠는 얼마나 감사하지 몰라.”


녀석들이 한영의 볼을 핥기 시작했다.


토, 일 연재
이전 26화냉장고 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