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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샘문학상 본상 부문 우수상3편

by 김준한

2025샘문학상 본상부문 우수상 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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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전동드릴


김준한


자식들은 회전력을 먹고 자랐다

갓 태어났을 땐 공구 없는 맨손이었으나

걷기 시작할 무렵 손 드라이버 하나면 너끈히 조이던 새벽

봄 되자 여린 쑥이 말아 올린 햇살 사각복스알이 풀어냈다


하루를 조이는 악력 위에 치솟던 심줄

헐거워진 가정 돌리기 위해 육각복스로 바꿔 끼우자 쇠와 쇠가 잇닿은 자리마다 벌건 군살 더했다

녹슨 자존심 벗겨 팔각복스까지 더한 세월

굳게 잠긴 이 세계를 풀어내려면

몇 개의 꼭짓점이면 될까


마모 되어 뭉툭해진 나날

두꺼운 볼트 세운 계획과 좁은 너트 구멍

현실은 늘 아귀가 맞지 않아

땀 주름 깊은 골 내며 찾아다닌 규격


자식들은 오른쪽으로 돌며 세상에 조립되었고

아버지는 왼쪽으로 풀려나기 시작했다


수리가 안 되겠습니다

애프터서비스 기간이 한참이나 남아 보이는 의사가 방전된 배터리를 그의 몸에서 분리하자 마지막 공회전,

희미하게 남은 기억을 갉아

끝내 아귀를 맞출 수 없는 숨결이

뭉툭하게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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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것에 대한 단상


김준한


옷장을 주워왔다

한 가정의 웃음과 소박한 꿈이

나무 결에 그대로 스며 있어 혼자 메기 무거웠다


자동차와 침대는 새것을 고집하던 시절이 있었다

헌 침대가 기억하는 제 주인의 숨결에 살결을 포개는 것은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내겐 허락지 않은 청춘이

다른 남성을 안고 달리다 폐경이 된 몸,

고단했던 하루를 수리비로 지불하는 것 또한 억울할 것 같았다


애인은 헌 것이 좋을까

갈수록 여성관이 바뀌었다

나를 보듬고 우시던 엄마의 눈도 수도꼭지가 닳은 헌 것이었고

나를 안아주시던 할머니 또한

살결이 녹슨 고물이었으니깐


발 뒤꿈치 생살을 아프게 하던 새 신발

끊어져 본 적 없는 고무줄은 언제나 도도한 탄성을 믿었다


한 어미가 구멍을 넓히며 자식을 낳듯

모서리가 뭉툭해진 여자는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인가 내벽을 허물며 깊이 들어올 때

뜨거운 마찰을 느껴보지 못한 구멍은

내 묵직한 아집을 받아 주지 못할 것이다

닳고 닳아 넓어진 너는

내 생긴 모양 그대로 받아 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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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 터진 나날


김준한


겉돌던 시절

가장자리부터 시든 시금치처럼

온전히 태워 시들어 버린 하루의 끝에 던져졌다

북적이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중심에서 주목받는 맛이 젓가락 세운다


찰지게 눌어붙은 가난

허락된 자리는 귀퉁이뿐이었을까

투박한 손아귀에 짓눌려 돌돌 말린 세월

냉정한 세상 국물도 없이 쩍쩍 갈라진 가슴 씹었다


고명에 숨긴 방향 다른 취향

한 수저 뜨면 금방 탄로 나는 속내 뒤에

짜디짠 인상 구기며 돌아서는 사람들


두 눈 크게 뜨는데도

자꾸만 캄캄해지는 풍경 서러움 과하게 채워 옆구리 터진 나날


김밥이 많이 올랐어

이제 김치찌개를 능가하겠는걸


한때 바람 파고드는 호주머니 대변했던 가격

세상은 비명 지르지만,

이제 너는 횡보하던 바닥 딛고 반등할 수 있을까


분주하던 좌판 상인들

백열들이 자른 어둠의 단면 사이로

오색 빛깔 환한 웃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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