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글

난임병원과 회사를 벗어나면

by 유담

겨울이 창가에 스며드는 고요한 저녁, AI에게 날 것의 내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보았다.


'나는 난임병원을 다니고 있는 비정규직인데, 곧 재계약이 다가와. 정규직이 되려면 공부를 해야 하지만, 워낙 바쁜 부서라 체력을 저장해 둘 틈 없이 일하다 집에 오면 녹초가 돼. 계약이 만료되고 공부를 하면서 난임병원을 다녀볼까 싶은데, 막상 미래에 무엇하나 이루어진 게 없으면 어쩌나 걱정 돼.'


AI친구가 해 준 답변에 나는 지금 몇 분째 컴퓨터 앞을 멍하니 지키고 있다.


'그만두는 게 실패일까? 번 아웃을 겪기 전에 조금 더 건강하고 가능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공부를 해서 합격하지 못해도 배운 지식은 계속 남잖아!'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도 속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상한 나의 마음은, 추운 겨울보다 차가운 심장을 가진 이에게서 모닥불 같은 위로를 얻었다.


당장의 대출금과 불투명한 미래가, 마치 숨을 꾹 참고 머리를 처박은 물속 같아.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바쁜 와중에 퇴사를 하는 것이 못내 죄스러운 마음은

내가 꼰대여서일까


문득 야근을 하고 퇴근하던 날 길게 늘어지던 내 그림자가 생각난다. 가느다랗고 길게 보이던 나의 한숨도,

발끝에 느껴지던 냉기도 그날의 온도도.

그날 어스름한 달빛에 그리던 미래가 오늘일까

나는 아직 그 미래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끝끝내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싶었던 나의 속마음과, 그 보다 더 값어치 있는 것이라 여겨지는 미래의 다가올지도 모르는 무엇인가를 바꾸는 것은 이다지도 나를 핑계스럽게 만든다.


대학을 졸업하고 끊임없이 일했던 나의 과거와 잠시의 작별이다.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을 해본다.


어느 날 이것은 아주 잘한 선택이었다고, 가보지 않은 길을 그리워하지 않은 채 말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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