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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밤 Aug 28. 2023

두 교황, 두 사람

23/04/11


종종 유튜브 추천 목록에 여태껏 관심을 가져본 적 없는 분야의 영상이 뜰 때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스크롤을 내리며 지나치지만, 아주 가끔은 홀린 듯 썸네일을 누르고 끝까지 영상을 보기도 한다. 내겐 KBS스페셜 ‘150년 만의 공개, 가톨릭 신학교-영원과 하루’가 그런 영상이었다.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간 학생들의 모습을 그린 다큐멘터리였는데, 배속도 누르지 않고 끝까지 보았다.


https://youtu.be/ibsKD8qWXBo


미사는 딱 한 번, 외할머니를 따라 드려본 적이 있다. 추석날 제사 대신 성당을 찾은 성도들을 위해 먼저 떠난 가족들을 추모하는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미사를 드리는 동안 단조로운 송가가 배경음악처럼 끝없이 이어졌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평화로웠던 기억이 난다.



가톨릭교회에 대한 내 경험은 여기까지다. 그러니까 <두 교황>이라는 영화의 제목이 왜 어색한 말인지 깨닫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금세 휘발되는 영상들에 흥미가 떨어진 어느 저녁, 넷플릭스에 찜해둔 콘텐츠를 넘기다 시작 버튼을 눌렀고, ‘호르헤 베르고글리오’라는 이름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수식어가 있었다. 역사상 첫 남미 출신 교황이라고 했던가.



영화의 줄거리는 그리 다이내믹하지 않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추기경 베르고글리오(현 교황 프란치스코)를 만나 함께 사흘을 보내는 과정을 따라간다. 원칙적이고 보수적인 베네딕토 16세와 보다 개혁적이고 유머러스한 베르고글리오.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벽을 허무는지 천천히, 여유 있게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 <두 교황> 스틸컷


다소 평평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는 섬세한 연출에 의해 윤기를 얻는다. 두 인물의 다른 성향을 드러내는 장면들을 언급하고 싶은데, 피자를 앞에 두고 진지하고 길게 기도하는 베네딕토 16세와 문장이 끝날 때마다 피자를 집어 들려는 베르고글리오의 모습이 귀엽고 재밌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고해성사 내용을 묵음으로 처리한다든지, 사이사이 과거를 담으며 화면비에 변화를 주는 구성도 꽤 말쑥하다.


취미도 사고방식도, 세상을 대하는 방식도 다른 두 사람이지만, 그들 모두 ‘주님의 음성’을 구하는 인간이라는 점에서 같다. ‘하느님과 가까이 있지만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에’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며 다시 신을 바라본다. 앤서니 홉킨스와 조너선 프라이스는 매끄럽고 적확한 연기로, 교회의 수장인 동시에 작고 늙은 한 인간으로서의 인물들을 그려낸다.





음악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애초에 이렇게까지 감상을 기록하게 된 계기도, 두 사람이 헤어지는 순간 흐른 Black bird의 한 소절 때문이었으니까. 다소 지루하거나 반대로 날카로울 수 있는 장면들이 피아노 선율과 세련된 선곡 덕에 경건하면서도 산뜻하게 다가온다.



주님이 항상 움직인다면 어디에서 찾아야 하냐는 베네딕토 16세에게 베르고글리오는 말한다. 

“이동하면서요.”


두 시간을 함께 ‘이동’했기 때문일까. 여운이 길었다. 담백하면서도 풍부하고, 경쾌한 이야기. 마음에 물기가 필요할 때 찾게 될 영화가 또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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